2020년은 내가 마흔 살이 되는 해다. 30대 후반에 결혼이라는 제도권 속으로 들어간 나는 그 전까지 내가 결혼하지 않는 것, 아이를 낳지 않는 것에 대해 타인들의 삶에 비추어 미묘한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반드시 결혼을 통해 출산과 양육을 하는 가족을 만들어야만 제대로 된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은 명확하게 하고 있었다.
자신이 속한 국가의 법과 제도를 따름으로써 국가가 제공하는 보상과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 그렇게 함으로써 국가의 보상과 혜택을 실제로 누리는 사람들은 이 사회의 주축이 될 수 있다. 국가는 그들에게 시민의 자격을 부여하고 국가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으로 삼는다.
한편, 전통적 관습을 따르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삶을 꾸려가는 이들은 다수의 사람들이 완고하게 믿고 있는 관습이 요구하는 의무를 이행하고 그에 따르는 보상을 얻길 원하지 않는다. 다만 자신이 노력한 만큼, 자기 삶에 필요한 요소를 스스로 얻고 그 요소들과 함께 생활을 꾸려나갈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하지만 문제는 관습과 제도로부터 자유로운 인간에게서 이 사회는 그 사람이 자유를 누리는 만큼 대가를 반드시 가져간다는 것이다. 자유로운 인간은 자유를 얻기 위해 시민에게 주어지는 여러 가지 대가를 포기함으로써 자신이 누리는 자유에 대한 대가를 지불해야만 한다.
결혼이라는 제도권으로 들어가지 않고 함께 삶을 보살피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당장 병원에 가서도 서로의 보호자가 되지 못한다. 우리는 삶이라는 추상적인 범주의 의미를 생활이라는 일상적 활동의 영역으로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 함께 밥을 먹는 것, 살면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문제를 함께 해결해나가는 것, 경제활동을 통해 함께 생활비를 지출하는 것, 아플 때 함께 보살펴주는 것, 그리하여 아픈 사람의 보호자가 되는 것, 큰 수술이 필요할 때 보호자란에 동의 서명을 하고 속히 치료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 그러니까 생활의 소소한 일이 결혼이라는 제도가 아니어도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주어져야 한다는 것.
나는 지금 내가 일상적으로 누리는 것을 타인 역시 동일하게 누리고 있는지 돌아보는 사람들이 앞으로 더 많아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쓰고 있다. 삶을 살아가는 데, 그러니까 생활을 꾸려나가는 데 있어 내가 무심코 하는 일들이 어떤 사람에게는 전혀 허락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분명 차별을 기반으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공감하는 마음은 나에게서 타인으로 확장되는 마음이다. 내가 겪는 일, 그로 인해 느끼는 행복이나 슬픔을 기반으로 타인의 삶을 세밀히 짚어보는 마음을 우리는 공감이라 부른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지킬 수 없어 한없이 무력하고 슬플 때,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지 못해 비탄에 잠긴 이의 마음을 비로소 알 수 있다. 행복도 마찬가지다. 나의 노력으로 얻은 행복을 만끽하고 사람들에게 축하받을 때, 타인이 누리는 행복을 진심으로 축복할 수 있다. 내가 타인에게 상처받고 고통을 느낄 때, 그 고통이 얼마나 자신을 무너뜨리고 힘들게 하는지를 생각할 때, 비로소 타인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 해하지 않는 사람이 될 수 있다.
내가 살면서 누리는 것을 다른 사람도 누리길 바라는 마음, 내가 행복할 때 타인 역시 행복을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응원하는 마음, 내가 갑작스러운 사고나 재난으로 고통스러울 때 타인에게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사회 전반을 돌아보는 마음, 내가 타인으로 인해 상처받았을 때 사람이 사람에게 상처 주는 일이 얼마나 잔인한지를 깨닫는 마음, 내가 타인에게서 멸시와 차별을 받았을 때 같은 일을 당하는 타인의 편에 설 수 있는 마음은 우리가 삶을 통해 가질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마음이다. 나는 그 마음들이 개인과 개인을 넘어 공동으로 확장될 때 큰 힘을 발휘한다고 믿고 있다.
내가 기쁠 때 누구도 축복하지 않는 삶, 내가 고통받을 때 누구도 돕지 않는 삶, 내가 아플 때 누구도 살피지 않는 삶은 어떤가.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삶을 지옥으로 만들지 않을 수 있다. 우리가 저마다 타인의 공감을 원하듯, 우리 역시 타인에게 공감할 수 있다면 말이다.
유진목_ 시인. 2016년 시집 <연애의 책>을 낸 이후 시집 <식물원>, 산문집 <교실의 시> <책이 모인 모서리 여섯 책방 이야기> 등을 썼다. 부산 영도에서 서점 ‘손목서가’를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