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거노인이 서울 성동구 ‘원플러스원’ 음식점에서 누군가 미리 지불한 밥값으로 식사를 하고 있다.
서울 성동구 ‘원플러스원’
박 아무개(74) 어르신은 2017년 배우자와 큰아들을 잃었다. 그나마 있는 둘째 아들은 사회적 부적응자로, 아들한테 보살핌을 받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박 씨는 평소 가족을 잃은 슬픔에 정처 없이 거리를 돌아다녔고 끼니는 거르기 일쑤였다. 그나마 식사도 식당에서 김치를 얻어 길에서 막걸리와 함께 때우는 일이 많았다. 그랬던 박 씨는 이제 동네 음식점에서 따뜻한 밥과 국, 반찬으로 식사할 수 있게 되었다. ‘누군가를 위한’ 작은 나눔 덕분이다.
서울 성동구에서는 새로운 기부 문화가 번지고 있다. 식당에서 음식을 먹고 난 뒤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를 위해 한 그릇의 밥값을 미리 내놓는, 이른바 ‘원플러스원’ 운동이다. 형편이 어려운 사람을 위해 커피 한 잔을 미리 계산하는 이탈리아의 ‘서스펜디드 커피(suspended coffee, 맡겨둔 커피)’와 비슷하다.
▶독거노인이 서울 성동구 ‘원플러스원’ 음식점에서 누군가 미리 지불한 밥값으로 식사를 하고 있다.
8000원짜리 미용 하고 잔돈 2000원 기부
기부자는 원플러스원 참여업체를 찾아 이용하고 1+1을 결제한다. 꼭 +1이 아니어도 된다. 기부자의 사정에 맞게 8000원짜리 미용을 하고 잔돈 2000원을 기부할 수 있다. 참여업체 주인은 기부받은 1의 기부 쿠폰을 원플러스원 자석판에 붙여놓는다. 이용자는 원플러스원 참여업체를 이용하고 원플러스원 기부판의 자석 쿠폰을 떼어 참여업체 주인에게 주면 된다.
일상 속 나눔의 바이러스는 지역사회 곳곳 깊숙이 퍼지고 있다. 행복한 나눔을 전달하는 원플러스원 가게는 음식점뿐만 아니라 생필품을 이용할 수 있는 슈퍼마켓, 단정한 용모를 위한 미용실과 목욕탕, 제과점 등 업종도 다양하다. 나눔의 방식은 조금씩 다르지만, 누군가를 돕기 위한 뜻만은 같다. 원플러스원을 실천하는 업체들은 큰 힘 들이지 않고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게 좋다고 말한다. 참여업체인 한 음식점 대표는 “실제 (형편이 어려워 식사를) 못 드시는 분들이 있더라. (원플러스원 업체로 참여하면서) 보람을 느낀다”고 밝혔다. 아울러 “1+1을 결제하다 보니 가게 매출에도 도움이 돼 모두에게 좋은 운동”이라라고 말했다. 또 다른 참여업체 대표는 “지역사회의 일원으로서 참여업체를 믿고 기부하는 분들을 보며, 따뜻한 지역사회의 정과 함께 자긍심과 행복감을 느낀다”며 미소 지었다.
원플러스원은 주민 주도의 복지 사각지대 발굴 및 나눔을 실천한 사례다. 이를 위해 주민, 주민자치회, 참여업체, 구청, 동주민센터가 함께 머리를 맞댔다. 우선 이용자를 먼저 생각했다. 그동안 관(官) 주도의 행정적 제약에서 벗어나 어려운 사람 누구나 불편함을 느끼지 않고 이용할 수 있어야 하고, 공백 없는 즉각적인 지원이 가능해야 한다는 등의 의견이 나왔다. 기부자의 부담 없는 기부 방법과 참여업체의 적극적인 참여 방법도 고민이었다. 그 결과 2019년 3월 15일 ‘주민주도 복지사각지대 없는 성동 만들기’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원플러스원’ 가게는 음식점뿐만 아니라 슈퍼마켓, 미용실과 목욕탕, 제과점등 업종도 다양하다. 사진은 원플러스원 업체 간판| 성동구청
관 주도 행정적 제약 벗어나 모두가 즐기도록
우선 다세대 밀집 지역이면서 도움의 손길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성동구 송정동과 용답동을 시범 구역으로 선정했다. 업종도 다양한 생활밀착형 업체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힘을 모았다. 이를 위해 구청은 네 차례에 걸쳐 시책추진과장과 송정동장, 용답동장 및 직원들이 모여 세부적인 사업 추진 방법을 협의했다. 동주민센터와 주민자치위원회, 주민들은 수시로 모여 사업 취지, 사업 진행 방법, 업체 선정 등의 의견 수렴을 거쳤다. 논의 과정에서 지역별로 음식점 2개소, 슈퍼 2개소, 미용실 2개소 등 총 6개 업체가 원플러스원 참여 의사를 밝혔다.
지역 주민들의 활발한 기부도 이어졌다. 자신의 형편에 맞게 부담되지 않는 소액 기부가 주를 이뤘다. 부대찌개 7000원, 컵라면 1개 800원, 우유 1개 1500원 등 300여 명이 가치 있는 기부를 실천했다. 이를 통해 지금까지 긴급지원 대상자, 치매 어르신, 저소득 노인 독거 가구, 기초생활수급 탈락자 등이 생활밀착 서비스를 지원받았다. 성동구청 관계자는 “원플러스원의 10월 31일 현재 기부 금액은 300건에 401만 8000원이고, 나눔 금액은 254건에 243만 8000원에 이른다”며 “그동안의 성과를 바탕으로 참여업체는 6개소에서 35개소로 늘어 전 지역으로 확대·운영하기 위해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성동 원플러스원의 가장 큰 성과는 참여하는 사람이 함께 행복하며, 지역 주민이 함께 지역의 문제를 풀어가는 따뜻한 포용이었다”고 전했다.
강민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