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강장 둥근 기둥에 전시된 손선경작가의 ‘희미한 현재’. 그림에 시선을 고정한 뒤 한쪽으로 걸어가면 그림이 마치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공덕역 ‘5G 갤러리’로 본 실감형 콘텐츠
9월 5일 오후 서울 지하철 6호선 공덕역 승강장에 내리자 각종 광고가 가득했던 스크린도어에 광고 대신 다양한 사진과 그림이 전시되어 있었다. 춤을 추는 무용수의 한순간을 촬영한 사진을 스마트폰의 ‘구글 렌즈’ 앱으로 비추자 무용수가 스마트폰 화면 속에서 춤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힘차게 팔을 올리고 손을 앞으로 뻗어 원을 그렸다. 무언가를 표현하듯 절제된 동작으로 다리를 들었다 내리고, 고개를 기울이며 몸을 숙였다. 증강현실(AR) 기술로 무용수의 몸짓을 360˚로 표현한 신제현 작가의 ‘리슨 투 더 댄스’ 작품이라는 자막이 화면 아래로 지나갔다.
열차에서 내려 승강장을 바쁘게 오가는 승객들 사이의 둥근 기둥에도 만화 같은 그림이 가득했다. 그림에 시선을 고정한 뒤 한쪽으로 걸어가면 그림이 마치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일상생활의 풍경을 단순한 선으로 담아낸 손선경 작가의 ‘희미한 현재’라는 작품으로, 보는 각도에 따라 그림이 달라지도록 표현했다.
▶서울 지하철 6호선 공덕역 승강장의 스크린도어에 걸린 작품을 스마트폰 앱으로 비추면 ‘U+5G 갤러리’를 감상할 수 있다.
지하철 그림 밖으로 튀어나온 무용수
6호선 응암 방면 승강장에서 5호선 승강장 쪽으로 걸어가자 환승 통로에 열차 객차 모양의 ‘U+5G 팝업 갤러리’가 보였다. 지나가던 시민들이 직원(큐레이터)의 안내를 받으며 AR 작품을 감상하고 있었다. 이곳에 비치된 5세대(5G) 스마트폰의 ‘U+AR’ 앱으로 작품을 비추자 ‘구글 렌즈’와 달리 무용수가 그림 밖으로 나와 더욱 입체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화면에 손가락을 대고 무용수를 확대하거나 360˚로 돌려 보고, 원하는 위치로 옮겨 자신과 함께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을 수도 있었다. 스마트폰에 연결된 헤드폰에서는 마치 미술관에서 큐레이터가 작품 설명하는 것처럼 음성 해설이 흘러나왔다.
옆에 비치된 가상현실(VR) 기기를 안경처럼 쓰자 아름다운 바닷속 풍경이 펼쳐졌다. 고개를 위아래, 좌우로 돌릴 때마다 360˚로 자연스러운 화면이 이어져 마치 동남아시아 바닷속에서 스쿠버다이빙을 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특히 바다거북이 앞으로 지나갈 때는 실제 같은 입체감이 느껴졌다. 박민현 큐레이터는 “VR를 어른들보다 아이들이 더 좋아하는데, 바다거북이 지나갈 때는 손을 뻗어 잡으려는 아이도 있다”고 말했다.
▶공덕역 6호선 응암 방면 승강장과 5호선 승강장 사이 환승 통로에 열차 객차모양의 ‘U+5G 팝업갤러리’가 있다.
반면 30대 남성 이 아무개 씨는 “VR는 다른 곳에서 몇 번 봐서 아주 새롭지는 않은데, AR는 여기서 처음 본다”며 AR 기술에 더 큰 관심을 보였다. 정민혁 큐레이터는 “VR는 시중에서 많이 판매되고 있고, VR 게임장 등에서 체험한 분들이 많아서 그런지 접하기 어려운 AR에 관심을 보이는 분들이 많다. 특히 예술 작품을 증강현실로 만나보는 건 여기가 아니면 쉽지 않은 경험이다. VR는보이는 화면 모두가 가상인데, AR는 눈으로 직접 보는 실제 화면에 가상형 비디오가 합쳐지니 더 신기해한다”고 말했다.
LG유플러스는 서울교통공사와 함께 9월 2일부터 세계 최초로 5G 기반의 AR 갤러리를 공덕역에 선보였다. 지하철 승강장, 환승 계단, 환승 통로, 열차 내부 등 4개 공간에 예술가 24명의 작품 88개를 전시하고 있다. 이들 작품은 볼륨 메트릭(volume metric) 영상 제작 기술을 활용해 전용 스튜디오에서 30여 대의 카메라로 360˚로 촬영한 콘텐츠를 예술 작품에 더한 것이다.
▶박민현 큐레이터가 AR 애니메이션 동화를 시연하고 있다.
핀란드 등 해외에서도 ‘5G 갤러리’ 취재 열기
2020년 2월 29일까지 진행되는 U+5G 갤러리에는 벌써 해외의 관심도 쏟아지고 있다. 팝업 갤러리를 운영하는 이벤트 대행사 ㈜디안컴퍼니의 김명수 대리는 “AR, VR 기술로 예술 작품을 구현한 것에 다른 나라에서도 관심이 많다. 오늘(9월 5일) 아침에도 핀란드 국영방송에서 U+5G 갤러리를 방문해 취재해 갔다. 예술 작품이 AR와 VR에서 어떤 식으로 구동하는지 88개 작품 하나씩 다 보면서 흥미로워했다”고 말했다.
LG유플러스는 이들 작품을 구현하기 위해 구글과 손잡고 국내에서 유일하게 구글 렌즈의 플랫폼 파트너사로 참여했다. 갤러리 33개 작품에 구글 렌즈로 적용해 정지된 이미지가 동영상처럼 자연스럽게 움직인다. 구글 렌즈는 2차원(2D) 기반으로 작품의 프레임 안에서만 움직임을 볼 수 있지만, LG유플러스의 5G 서비스 앱인 ‘U+AR’로 비추면 전시 작품이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훨씬 입체적으로 움직인다. U+AR 앱은 LG유플러스 5G 고객만 이용할 수 있고, 구글 렌즈는 타사 고객이나 LTE 고객도 내려받아 이용할 수 있다. 5G 기술은 4세대 이동통신인 LTE에 비해 속도가 20배 정도 빠르고, 처리 용량은 100배 많아 AR·VR 등 다양한 기술을 구현할 수 있다.
한국의 이동통신 서비스는 2019년 4월 3일 밤 11시 세계 최초로 5G 통신을 상용화했다. 대용량·초고품질 콘텐츠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면서 VR, AR 등 실감콘텐츠가 미래 신성장동력으로 떠오르고 있다. 실감콘텐츠 세계시장 규모가 2017년 32조 6000억 원에서 2023년 411조 원으로 연평균 526%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면서 미국과 중국, 일본 등 해외 주요국은 이미 실감콘텐츠 산업에 대한 성장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는 소비를 유인할 매력적인 실감콘텐츠가 절대 부족하고 시장이 충분히 성숙하지 않아 민간투자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2017년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자료를 보면, 국내 VR와 AR 기술 수준은 미국 대비 79.9%에 그쳐 기술 격차가 2년이나 벌어진 상태다. 시설·장비 등 인프라와 전문 인력, 기술 수준 등 산업 기반이 취약하고, 산업 생태계가 채 형성되지 않은 것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9월 17일 서울 홍릉 콘텐츠문화광장에서 열린 ‘콘텐츠산업 3대 혁신전략 발표회’에서 실감콘텐츠에 선도적으로 투자해 초기 수요를 창출하고 국제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하겠다고 발표했다. 발표회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은 “실감콘텐츠 분야는 본격적으로 시장이 활성화하지 않았기 때문에 과감한 투자로 글로벌 시장을 선점할 수 있는 분야”라며 “실감콘텐츠를 육성해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XR(VR·AR)+α 프로젝트’ 2020년부터 추진
우선 새로운 부가가치 창출이 예상되는 공공·산업·과학기술 분야에 실감콘텐츠를 접목하는 ‘XR(VR·AR을 통칭)+α 프로젝트’를 2020년부터 추진한다. 국방 분야는 지형·시설물에 지형, 적군, 지휘관 지시 등 작전 관련 정보를 증강현실로 구현해 원격지에 있는 전투원에게 실시간으로 제공한다. 교육 분야는 대학 교재를 홀로그램, VR 등 실감콘텐츠로 제작하고 실감 교육 강의실을 구축해 대학끼리 원격으로 실시간·양방향 강의를 공유한다. 의료 분야는 수술 전 과정을 가상훈련할 수 있는 VR 수술 시뮬레이션과 CT, MRI 등 환자 진료 정보를 VR 콘텐츠로 실시간으로 변환해 의사들이 원격으로 협진이 가능한 VR 시스템을 개발한다. 문 대통령은 “홀로그램, 가상현실 교육과 훈련 콘텐츠를 비롯한 실감콘텐츠를 정부와 공공 분야에서 먼저 도입하고 활용해 시장을 빠르게 활성화하겠다”고 말했다.
문화·관광 분야는 체감형 콘텐츠와 체험 공간을 구축한다. 한국 대표 문화·관광 거점인 광화문 지역에 대형 체험관, VR 미니 관광버스, AR K–팝 댄스 등 실감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시설을 집적화하고, 국립박물관·미술관 대상으로 추진하는 실감콘텐츠 체험관과 실감콘텐츠 제작을 지역 소재 공립 박물관·미술관까지 확대한다. 문 대통령은 “한양도성 등 대표 문화유산을 실감콘텐츠와 3차원 데이터로 제작해 민간이 게임·안내 서비스 등에 활용할 수 있게 할 계획”이라며 “가상현실로 동대문시장의 옷을 입어보고 바로 살 수 있는 실감 쇼핑몰 구축, 방에서도 석굴암을 현장에서 보는 것처럼 체험하거나 K–팝 공연을 증강현실로 생중계하는 등 문화관광 실감콘텐츠를 더욱 빠르게 실현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글로벌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5G 콘텐츠 플래그십 프로젝트’도 추진해 5G 이동통신 킬러콘텐츠 창출을 지원하고, 게임·음악 등 한류 선도 분야에도 실감 기술을 접목한다. 서울 상암동 한국가상증강현실콤플렉스(KoVAC)에 아시아 최대 규모인 660㎡(약 200평)의 360˚ 입체 실감콘텐츠 제작시설을 구축해 국내 중소기업이 활용하도록 지원한다. AR 서비스 확산을 위해 장시간 착용할 수 있는 100g 이하의 경량 기기를 개발하고, 5G 에지 컴퓨팅(Edge Computing)을 연동해 실감콘텐츠 서비스에 걸리는 지연시간을 최소화하는 등 AR 기기 핵심기술을 개발한다. ‘5G 실감콘텐츠 랩’에서 인재를 양성하고, 해외에 5G 콘텐츠 체험관과 실감형 한류 콘텐츠를 홍보·유통하는 거점 공간도 조성할 계획이다. 문 대통령은 “게임이나 음악 콘텐츠와 신기술을 융합하는 한류 실감콘텐츠도 가능할 것”이라며 “창작자들과 기업들은 역량을 강화하고, 국민은 쉽게 체감하고 활용할 수 있는 아시아 최대 규모의 실감콘텐츠 인프라를 구축하고 핵심 인재를 키워나가겠다”고 밝혔다.
글·사진 원낙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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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