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대들도 인정한 50년 농사꾼 무공해 ‘짤’

2019.10.07 최신호 보기


l

누구나 미디어 채널을 만들 수 있는 시대다. 유튜브를 중심으로 1인 미디어가 하나의 트렌드로 떠오르면서 평범한 시민들 중 1인 크리에이터로 활동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최근 유튜브의 트렌드 중 하나는 ‘공감’과 ‘화합’을 내세운 1인 크리에이터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자극적인 내용을 배제하고 따듯한 시선을 통해 세대, 성별, 지역 등을 뛰어넘는다. 이들이 이야기를 건네는 채널에 공감의 ‘좋아요’ 버튼을 누르는 이들이 늘고 있다. 또 하나 주목할 만한 것은 ‘평범한 일상 속 특별함’이다.

l

사회 관계망 서비스(SNS)에 글을 쓰듯 영상으로 자연스럽게 일상 기록을 남기는 ‘브이로그’(VLOG·비디오(vedio)와 블로그(blog)의 합성어)가 인기를 얻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더불어 1인 크리에이터의 콘텐츠 창작을 지원하고 창작자와 광고 매출을 공유하는 서비스 ‘MCN’(Multi Channel Network) 산업도 규모를 넓혀가는 중이다. 우리 주변, 평범하면서도 특별한 시민들이 만드는 개인방송 채널 이야기를 만나본다.

l

‘성호육묘장’ 운영하는 농부 안성덕 씨
충청남도 천안에서 농사를 짓는 한 농부는 밭에 심어둔 꿀고구마 맛을 보러 갔다가 두더지를 발견했다. 그에게는 익숙하지만 대다수 사람에겐 신기한 동물일 것 같아 두더지 영상을 찍어 유튜브에 올리기로 했다. 두더지가 농작물에 주는 피해가 어느 정도인지 설명하고, 두더지가 흙 파는 장면도 담고 싶었다. 갈색 고무 대야에 흙을 넣고, 두더지를 풀어놨다. 그런데 돌발 상황이 벌어졌다. 흙양이 적어서일까, 환경이 바뀌어서일까. 흙만 있으면 구덩이를 파던 두더지가 흙에 큰 반응을 하지 않았다.
“에… 두더지가 흙 파는 모습을 보여드린다고 했는데, 들어가는 걸 보여드리면 좋겠는데… 흙을 파질 않습니다.” 흙을 더 가져다줘도 반응이 없는 두더지를 보며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농부의 목소리와 흔들리는 카메라 그리고 농작물에 피해를 주는 악동이지만 자꾸 보니 귀여운 두더지…. 이 영상을 보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온다. 아니나 다를까, 이 영상은 400만 조회 수(9월 9일 기준)를 기록하며 유튜브 채널에서 화제가 됐다. 특히 젊은 세대의 댓글이 이어졌다. “나 이거 왜 보고 있냐. 뭐야, 이 폭발적인 조회 수.” “아저씨 말투 너무 귀여우셔. ㅋㅋ” “아저씨 덕분에 두더지 처음 봤어요.”
이는 2018년 9월 20일 ‘성호육묘장’이라는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영상 이야기다. 이 영상에 달린 댓글은 9월 9일 기준 약 9500개. 올라온 지 1년이 지났지만 댓글은 계속 늘고 있다.
성호육묘장은 50년 경력의 농부 안성덕(66) 씨의 농장 이름을 따 만든 채널이다. 안 씨는 천안에서 호박, 상추, 양파, 배추, 고구마 등 70여 종의 모종을 직접 키우며 도소매 판매를 하고 있다. 요즘은 본업에 더해 ‘농부 유튜버’로 활동하며 도농 간, 세대 간 거리를 좁히는 역할을 하는 중이다.

l▶‘성호육묘장’ 채널을 운영하는 안성덕(왼쪽) 씨| 안성덕 씨

질문 댓글 일일이 답하고 귀농 조언도
2018년 5월경. 안 씨가 유튜브를 시작한 건 농사 경력 50년 차 노하우를 거래처 농부들에게 알려주고 싶어서였다. “농사 경험이나 지식이 좀 있으니까요. 다른 분들이 유튜브 영상 올린 걸 한번 봤죠. 저도 올리면 보는 사람이 많이 있을 거 같더라고요. 그래서 시작을 해봤어요.”
소박한 마음으로 시작한 일인데 반응은 매우 뜨거웠다. ‘가을무 알타리 파종 시기와 재배 방법’ ‘완숙 왕토마토 재배 방법과 곁순 제거 방법’ ‘쪽파 재배 방법’ 등 제목만 봐선 평범한 농사 정보 영상처럼 보이지만 성호육묘장에 올라오는 영상에는 뭔가 특별한 게 있다. 화려한 편집과 조명, 음향, 자막은 없지만 가공하지 않은 자연스러움이 빛을 발한다는 게 특징이다.

‘안녕하세요. 성호육묘장입니다.’ 안 씨의 구수하고 정겹고, 느린 인사로 시작하는 영상에는 작정하고 만든 상황 설정이나 똑 부러지는 대사가 없다. 대신 시기, 묘종, 상황별로 농사짓는 법을 다른 이들에게 제대로 알려주고 싶어 하는 ‘농사 박사’ 안 씨만의 진정성이 있다. ‘에… 그러니까, 인제…’ 등 안 씨 특유의 말투도 재미를 더한다. 도시에 익숙한 세대에는 개, 닭, 토끼와 인근 저수지에 사는 오리 등 농촌 속 다양한 동물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신선하다. 농장에 온 초등학생 손자와 함께 고구마, 옥수수 등을 먹는 ‘먹방’도 재미있다. 안 씨는 인기를 실감하는지 “저는 우선 농민이고요. 거짓 없이 순수하게, 제가 아는 내용을 알려드리는 거예요. 편집, 자막, 음악 뭐 그런 거 안 넣고 올리니까 사람들이 와닿는 게 많은 거 같아요”라며 웃었다.
영상은 안 씨가 ‘농사 시기별로 때가 되면 반드시 해야 할 일들’이라고 생각해 직접 기획한 것이다. “예를 들어 쪽파, 양파 심는 시기가 다 다르거든요. 그때그때 맞춰서 정보를 주는 거죠. 촬영은 아내가, 인터넷 업로드 등은 아들이 해요. 제가 농사일할 때 휴대폰을 늘 봉지에 넣고 다녀요. 밭에서 맹꽁이, 두꺼비 등이 나오면 찍어서 사람들한테 보여주려고요.”

지금까지 800여 개 영상을 제작하며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많이 쌓이고 있다. “낮에 농사짓고, 밤에 유튜브 찍는 날이 있었는데 촬영하던 아내가 피곤했는지 꾸벅꾸벅 졸더라고요. 휴대폰 녹화 버튼 안 누르고 20분인가 농사 강의를 했던 적도 있어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면서 안 씨 일상은 더 바빠졌다. 영상도 찍어야 하지만 ‘벌레를 잡아야 하는데 어떤 약을 쳐야 하나요?’ ‘고추가 자꾸 구부러지는데 어떻게 해야 하죠?’ 등 댓글 질문에 답을 다는 것도 중요한 업무다. “전화도 많이 오고요. 직접 찾아오는 사람도 있어요. 오지 말라고, 제가 바빠서 시간 못 낸다 해도 오더라고. 세대도 다양해졌어요. 30, 40대들 문의 오는 경우도 많아요. 어떤 절차로 귀농·귀촌을 하는지 조언해달라고 하더라고요.”

l▶‘성호육묘장’ 채널| 유튜브 화면 캡처

“세상은 혼자 아닌 더불어, 덕분에 살아”
그가 이렇게 농사에 문을 두드리는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은 뭘까. 안 씨는 “농사는 누구든 시작할 수 있지만 아무나 계속하는 건 아니에요”라고 말했다. “경험 없이 크게 벌이면 실패 확률이 있거든요. 처음에 계획을 세울 때 농사 경험이 충분한 사람들한테 배우면 실패 경험을 줄일 수 있어요. 농사 경험이 있는 사람들 말을 무시하고, 혼자 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면 실패할 확률이 높아요. 이거야말로 정보 공유, 소통이 필요한 일이죠.”
안 씨가 올리는 농사 정보 영상은 보통 짧게는 15분에서 길게는 25분 분량이다. 영상 속에서 안 씨는 정보를 천천히, 여러 번 반복해 설명한다. 안 씨에게 “본래 다른 이들에게 설명해주는 걸 좋아했느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좋아하죠, 그럼요. 세상 혼자는 못 살잖아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사람은 ‘더불어’ ‘덕분에’ 산다고 항상 생각하고 있어서요. 그러니까 그간 내가 배운 기술을 혼자만 알고 있는 게 아니라 여러 사람과 나누고 싶어요. 내가 친절하게 잘 설명해주면 누군가 오래 걸려 배울 걸 짧은 시간에 알 수 있잖아요. 그런 생각으로 올리죠.”
그의 이런 마음을 알아주듯 최근 올라온 ‘고추끈 뜨는 방법 알려드립니다’ 영상에는 훈훈한 댓글들이 달렸다. “평소에도 바람이 휘몰아치는 주말농장인데 가르쳐주신 대로 묶어 이번 태풍에 쓰러진 고추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봄에 알려주신 방법대로 했는데 이번 태풍에 안 쓰러졌습니다. 소소한 기술이지만 큰 도움 주셔서 감사합니다.” “역시 어르신은 최고입니다. 나중에 귀농하면 어르신 영상 처음부터 풀 시청해야겠어요.”

김청연 기자

‘성호육묘장’과 함께 보면 좋은 채널 ‘버라이어티 파머’
최근 농업에 관심을 기울이는 청년층이 늘면서 청년 유튜버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버라이어티 파머’는 강원도 인제에서 농사를 짓는 20대 오창언 씨의 농사 관련 유튜브 채널이다. 농기구 리뷰, 귀농·귀촌 꿀팁, 배추전 먹방 등 농업과 농촌을 주제로 한 다양한 영상을 만나볼 수 있다.

관련기사

페이지 맨위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