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개월’ 운영하는 농인 김하정 씨
“나랑 동생이 청각장애인 만난다고 해도 상관없어?”
딸이 이렇게 묻자 엄마가 답한다.
“그건 생각 안 해봤는데.”
“왜?”
딸이 되묻자 엄마는 명쾌한 답을 내놓는다.
“그건 너희 몫이니까.”
2018년 4월 12일 ‘하개월’이라는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영상 내용 중 일부다. 제목은 ‘두 농인 자녀를 둔 하개월 엄마’. 엄마를 인터뷰한 딸은 자신을 키우며 힘들진 않았는지, 자녀 둘을 키우면서 엄마의 삶을 잃어버린 건 아닌지 등을 질문했지만 엄마는 의외의 답을 들려줬다. “응. 어릴 때부터 활동 잘하고 건강하고 활발하게 잘 자랐으니까.” 딸은 텔레비전에 종종 나오는, 다른 장애인 부모들의 대답과는 사뭇 다른 엄마의 대답에 당황한다.
그녀의 장애를 다르거나 특별한 것이라 생각하지 않고, 그 자녀의 특성일 뿐이라고 여기는 엄마. 이 인터뷰 영상에는 많은 이들이 깨달음과 공감의 댓글을 남겼다. “솔직히 제목만 보고 ‘애고, 무슨 생각으로 애를 두 명이나?’ 하면서 들어왔는데 어머님 얘기하시는 거 보고 제 편견에 반성하고 가요.” “어머님, 완전 쿨해요.”
당당한 농인 많아… 구독자 1만 564명
하개월은 농인 유튜버 김하정(32) 씨가 운영하는 채널이다. ‘청각장애인’이 듣지 못하는 사람을 의료·병리학적 관점에서 부르는 말이라면, 농인은 언어·사회문화적 관점에서 수어를 사용하는 언어적 소수자를 뜻하는 말이다.
김 씨는 농인을 주인공으로 하는 다양한 콘텐츠를 유튜브 채널에 올리고 있다. 하개월이라는 유튜브 이름은 유튜브 개설 당시 딱 1년만이라도 해보자는 뜻으로 ‘12개월’에서 따왔다. 처음엔 6개월도 가능할까 싶었지만 이젠 1만 564명(9월 10일 기준)의 구독자와 함께하는 ‘인기 채널’이 됐다.
농인은 미디어에서 종종 ‘말 못하는 사람’ 혹은 ‘동정의 존재’로 그려져왔다. 농인을 주인공으로 하는 콘텐츠들은 대부분 그들이 장애를 극복한 데 방점을 찍는다. 김 씨가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게 된 건 농인으로서 청인(듣는 사람)들이 갖고 있는 농인에 대한 좁은 인식, 편견 등을 깨보고 싶다는 생각에서 비롯했다.
하개월 채널에는 김 씨를 비롯해 바리스타, 요가 강사, 외국인 등 다양한 분야에서 각자 자기 일을 하는 농인들이 출연한다. 김 씨는 “그동안 미디어에 비친 농인은 ‘말을 못하는 사람’ ‘무조건 동정해야 하는 존재’로 그려졌는데 제가 아는 농인들은 전혀 그렇지가 않았어요. 당당하고, 독립적이고, 도전하는 농인이 많았거든요. 그래서 주변에 평범하면서도 각자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는 농인들을 초대해서 이야기를 나눠보고 있어요”라고 설명했다.
농인에 대해 청인들이 잘 몰랐거나 오해했던 부분에 대한 정보도 많다. ‘수어는 세계 공용어인가요’ ‘농인은 입 모양을 보면 다 알 수 있나요’ ‘청각장애인이라고 하면 많이 듣는 말’ 등에는 이런 댓글들도 달렸다. “청인으로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영상입니다.” “청각장애, 농인, 수어에 대해 많은 정보를 알게 됐어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며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를 묻자 김 씨는 피시방에서 촬영했던 영상과 관련한 일화를 소개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제 일상을 담은 브이로그 영상을 올렸어요. 그런데 며칠 후 청인 친구가 ‘그 영상에 누군가 욕하는 소리가 담겨 있다’며 연락을 줬더라고요. 누군가 게임을 하며 욕을 했던 거죠. 저는 전혀 모르고 있었어요. 청인이라면 주변 소음이나 불필요한 소리를 편집 과정에서 걸러낼 수 있지만 저는 그렇지 않잖아요. 제 영상이 농인만 보게 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상관없겠지만, 청인들도 보는 영상이니 그런 점을 신경 써야겠더라고요. 그 후부터 청인에게 한 번 더 검토를 맡긴 뒤 올리고 있어요.”
사람들이 하개월 유튜브 콘텐츠에 ‘좋아요’를 누르고 공감 댓글을 다는 이유는 뭘까. 김 씨는 성실, 공감, 소통 이 세 가지 때문에 좋아해주시는 게 아닐까 싶어요”라고 말했다.
실제로 하개월 채널에는 “성실하다”는 말이 절로 나올 만큼 일주일에 한 편씩 꾸준히 영상이 올라오고 있다. 지금까지 쌓인 영상만 120개(9월 3일 기준).
채널 속 김 씨가 털어놓는 경험은 농인들이 세상에 하고 싶은 말을 대신 해주는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 김 씨는 “많은 농인이 공감과 위로가 됐다는 댓글이나 메시지를 보내주시는데 오히려 제가 위로받을 때가 많아요. 소수 언어를 쓰는 농인에게 제 채널은 사회적·환경적 어려움에 대해 공감하고, 이를 나누는 연결 고리라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김하정 씨가 수어로 ‘하개월’이라고 말하고 있다.| 청음복지관
일주일에 한 편씩, 지금까지 영상 120개
구독자와 소통이 매우 활발하다는 점도 특징이다. 영상을 올리고 나면 지인이나 구독자들한테 연락이 워낙 많이 와서 2019년 초부터는 인터뷰 영상을 올릴 때 최초 공개(영상 업로드 시 구독자들에게 몇 초 후 ‘최초 공개한다’는 알람이 가고, 실시간 채팅하며 영상을 시청할 수 있게 하는 방식)를 하고 있다. 김 씨는 “귀가 들리든, 들리지 않든 이 안에서 함께 소통할 수 있다는 게 유튜브 채널만의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제 채널의 경우, 청인이 농인에 대해 이해 폭을 넓힐 수 있는 화합의 공간으로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고요”라고 말했다.
김 씨의 목표는 앞으로 실버 버튼(구독자 수 10만 명 이상), 골드 버튼(구독자 수 100만 명 이상), 다이아몬드 버튼(구독자 수 1000만 명 이상)을 받는 것이다. 김 씨는 “제가 알기로는 아직 대한민국 장애인 유튜버 중에 실버 버튼을 받은 분은 없더라고요. 외국은 이미 50만 명 이상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는 장애인 유튜버가 많아요. 한국도 어서 빨리 실버·골드·다이아몬드 버튼을 받는 장애인 유튜버가 탄생했으면 해요. 물론 저도 포함이고요”라며 웃었다.
김청연 기자
추천 유튜브 ‘Korea Grandma’
박막례 할머니 채널인 ‘Korea Grandma’를 추천합니다. 영상에 자막이 빠짐없이 들어가 있어요. 자막 크기도 큼직해서 보기 편하고요. ‘웃겨서 못 잘 ASMR 바가지 피부관리실’ 영상이 올라온 적 있었는데 그때 자막이 없어서 달아줄 수 있냐고 댓글을 달았더니 이 채널 구독자들이 댓글과 자막을 달았어요. 참 감사했죠. 유튜브의 순기능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정선호’라는 채널도 추천하고 싶어요. 늘 자막을 넣어주셔서 재밌게 보고 있어요. 7개월 전 한 커뮤니티에 이 채널 운영자가 편집자를 모집한다는 글을 올렸는데 “농인들을 위한, 불편함 없는 100% 자막화에 자신 있으신 분을 모집한다”는 말이 적혀 있더라고요. 100만 유튜버가 이런 부분을 세심하게 고려해주다니, 놀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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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