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근 씨 가족이 시장 한 켠에 설치된 경주장에서 막 완성한 모형자동차를 시운전해보고 있다. (어머니 임차영, 아들 김경원, 딸 김나영, 아버지 김재근. 왼쪽부터)
7월 27일 전주신중앙시장 중앙광장 특설무대 앞에 100여 개의 탁자가 놓였다. 오후 4시 30분이 되자 아이들을 포함한 가족 단위 시민들이 하나둘씩 탁자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5시가 되기 전에 준비한 탁자 주변이 모두 채워졌고 곧 ‘차차차 어린이 자동차 조립 체험’ 행사가 시작됐다. 탁자마다 아이뿐만 아니라 아빠들이, 어떤 탁자에선 엄마와 할머니까지 합세해 모형 자동차를 만드느라 분주했다. 초등학교 자녀를 둔 젊은 아빠들은 자신이 어릴 때 만들어본 모형 자동차와 마주하면서 동심의 추억에 빠져들었다. 동시에 특설무대에선 마술, 댄스, 레크리에이션, 버스킹 등이 진행되어 자동차 조립에 잠깐씩 싫증을 느낀 꼬마들이나 어른 가족에게 볼거리를 제공했다. 조립을 마친 아이들은 ‘어린이 시장보기 체험’에 나섰다. 시장 안 포장마차를 찾아가 시장에서 제공한 온누리상품권으로 소떡소떡, 꽈배기, 치즈꼬치 등을 사 먹으며 시장 이곳저곳을 구경했다. 이날 자동차 조립 체험에는 85가족 300여 명, 시장보기 체험엔 70가족 210여 명이 참가했다.
▶조립을 하던 중 백창엽 씨가 딸 백우빈 양과 하이파이브를 하면서 서로를 격려하고 있다.
매주 금·토 ‘추억의 포차거리 차차차’
이렇게 전통시장이 아이들로 북적거리는 모습을 보는 것은 아주 특별한 경험이었다. 이날 행사는 전주신중앙시장 문화관광형시장 육성사업단(이하 육성사업단)이 마련한 ‘추억의 포차거리 차차차’ 상설 이벤트다. 2019년 5월에 시작해 매주 금요일과 토요일에 열렸으며 11월까지 모두 46회 진행될 예정이다. 모형 자동차 조립 체험은 테마 이벤트로 8월에는 상인회와 한마당축제, 11월엔 차차차 청소년가요제 등 매달 색다른 테마 이벤트가 준비되어 있다. 육성사업단 박광철 단장은 “시장을 살아 있는 교육장으로 활용해 지역민에게 교육과 체험의 기회를 제공하려 한다. 시장에서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해 장기적으로 고객의 시장 유입을 도모하기 위해 노력한다. 오늘 같은 프로그램은 아이들에게 전통시장이 부모님과 추억을 공유하는 친숙한 곳으로 느껴지게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2016년 ‘시장이 학교다’에 참가했던 전주 우림초등학교 4학년 6반 학생들이 시장체험을 한 뒤 각자 소감을 적어서 만든 현수막
이날 행사에 참여한 몇 가족을 만났다. 호송동에서 온 김동열 씨는 “이런 행사가 너무 좋다. 재미있다”라고 말했고, 아빠와 함께 온 김태경(만수초 1) 학생은 “다음에 또 아빠랑 오고 싶다. 맛있는 것도 먹고 볼 것도 많았다”라고 했다. 아빠의 손을 잡고 장보기 체험에 나선 박지우 학생이 “집 근처엔 시장이 없어 갈 기회가 거의 없었다. 이번에 와보니 전통시장만의 분위기가 있어서 좋았다. 먹을 것도 마트보다 많고 볼 것도 많았다. 그리고 시장엔 흥정이란 게 있어 재미있었다. 앞으로 자주 오고 싶다”라고 말하자, 동생 박시우 학생은 “상인들이 아주 친절하고 표정이 밝아 보였다. 마트보다 더 친절해서 물건을 살 때도 기분이 좋았다”라며 웃었다.
▶2017년도 전주지역 초등학교 3학년 사회 교과서 보조교재 <우리 고장 전주>에 실린 ‘시장이 학교다’ 체험 프로그램
▶2019년 7월 ‘시장이 학교다’에 참가했던 전주 화산초등학교 서아라 학생이 쓰고 그린 체험 소감문
전주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리기도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시장 분위기를 밝게 만드는 것은 분명하나 반짝 이벤트에 그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시장 상인들의 반응 또한 궁금했다. 2006년부터 신중앙시장 상인회장을 맡고 있는 반봉현 회장은 “문화관광형 시장을 5년째 하고 있다. 시장 고객이 늘어난 점이 가장 큰 소득이다. 온누리상품권 매출액이 15% 이상 늘었다. 상인들 의식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 육성사업단이 들어와 상인들에게 친절 교육, 상품진열 교육도 했는데 도움이 컸다. ‘우리 시장이 탈바꿈하는구나’라는 것을 상인들 표정에서 읽을 수 있다. 오늘 행사는 2018년에도 했는데 고객들의 요청으로 또 하게 된 것이다. 어른들도 오지만 아이들이 시장에 와야 한다. 오늘 같은 행사가 아이들의 반응을 이끌어냈다. 다른 시장에선 이렇게 못한다”라며 “일회성 행사? 전혀 그렇지 않다. 전주신중앙시장에선 2015년부터 ‘시장이 학교다’를 운영하고 있다. ‘시장이 학교다’는 전주지역 유치원과 초등학교 학생들이 신중앙시장에서 고객 체험 프로그램에 참가해 전통시장을 둘러보고, 직접 장을 보고 여러 가게에서 활동도 하는 것이다. 꽃 가게에선 화분 분갈이를 해보고, 반찬 가게에선 김치를 버무려보고, 떡 가게에선 인절미를 썰어본다.
▶전주신중앙시장 추억의 포차거리에서 ‘요이떡’을 운영하는 전영구·송미숙 씨
▶7월 27일 전주신중앙시장 중앙광장 특설무대에 마련된 100여개의 탁자를 가득 메운 가족 단위의 참가자들이 모형자동차 조립에 열중하고 있다.
생선 가게에선 낙지를 만져보고 꽃게 암수 구분하는 법도 배운다. 40년 넘게 시장에서 장사를 해온 상인 중 선발된 상인 교사들이 학생들을 안내하고 지도한다. 2년째 되면서 인기를 끌기 시작해 2017년에는 전주지역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 이젠 신청하는 학교가 너무 많아서 모두 수용하지 못해 죄송할 따름이다. 올해 상반기까지 2000명 넘는 학생들이 ‘시장이 학교다’ 프로그램을 통해 우리 시장을 방문했다. 시장이 그냥 물건을 사고파는 공간이 아니라 생생한 삶의 현장이라는 것을 어린 학생들이 몸으로 느낄 수 있는 기회다. 직접 만든 김치나 썬 인절미를 집에 가져가서 부모님과 시장 이야기를 나누며, 결국 전통시장이 그리 먼 곳에 있지 않다는 메시지가 형성되는 것이다. 다른 지역에선 찾기 힘든 전주신중앙시장만의 큰 자랑거리”라고 말했다.
▶반봉현 전주신중앙 시장 상인회장이 시장의 변화에 대해 말하고 있다.
“정찰제지만 넉넉한 덤이 시장의 묘미”
‘시장이 학교다’에 참가한 학생들은 소감문을 쓴다. 2019년 초에 다녀간 천지원(전주화산초 2) 학생은 “텀블러를 만든 후 맛있는 간식을 먹고 시장으로 갔다. 흰머리 할머니가 채소를 팔고 계셨는데 친구들도 나도 할머니의 오이를 많이 사드렸다”라고 썼고, 2018년에 체험을 한 김새은(전주초 1) 학생은 “오늘은 1교시부터 4교시까지 시장이 학교였다. 화분, 떡, 김치를 만들었다. 재미있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다음에 또 가고 싶다. 중앙시장이 전통시장인 걸 알게 되었다. 엄마랑 갔을 때는 별로 재미없었는데 친구들, 선생님이랑 같이 가니까 재미있었다. 김치 담그기는 다음에 또 하고 싶다”라고 썼다.
▶김동열 씨가 아들 김태경 학생과 함께 완성된 모형자동차를 자랑스럽게 보여주고 있다.
▶조립을 마친 뒤 아빠 손을 잡고 장보기 체험에 나선 박지우·박서우 자매
육성사업단은 시장 상인들을 대상으로 그동안 꾸준히 가격표시와 원산지표시 캠페인을 해왔다. 소규모 노상 점포는 아직 실시하지 않은 곳도 있다. 박광철 단장은 “우리가 상인들에게 설명하고 원산지와 가격표를 만들어 붙여주기도 했다. 보니까 (정찰제로) 저울까지 달고도 몇 개 더 넣어주시는 할머니들의 넉넉한 인심을 보고 저절로 웃음이 났다. 이게 바로 시장의 재미와 묘미가 아닌가 싶다. 바구니 곁의 가격은 표준이다. 그렇지만 가격에 맞춰 적게 혹은 많이 구매할 수 있는 곳이 시장이니 꼭 상인들과 이야기를 나눠 합리적인 소비를 하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글·사진 곽윤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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