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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갑을 넘어 뒤늦게 수영을 배우기 시작했다. 매일 아침 집 근처 수영장으로 출근 도장을 찍으며 연습해도 실력이 늘지 않고 허우적거리기만 해서 하루는 강사에게 하소연하듯 물었다. “대체 얼마나 더 연습을 해야 물속에서 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거요?” 강사는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앞으로 나아갈 때 자꾸 머리를 들지 마세요. 머리를 들면 몸이 가라앉게 돼 있어요. 머리를 숙여야 몸이 뜨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겁니다.”
그러면서 심드렁한 얼굴로 또 한 수 가르쳐주듯 툭 내뱉었다. “어디에서든 빨리 가는 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고개를 숙이고 천천히, 묵묵히 가야 오래 가고 멀리 갈 수 있습니다.” 필자보다 나이가 훨씬 어려 보이는 수영 강사의 잠언과도 같은 몇 마디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강사가 말한 대로 머리를 숙이고 천천히 호흡하며 물살을 가르자 비로소 실력이 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은 수영 초보에게 한 수 가르쳐줄 수 있을 만큼의 실력을 갖췄다.
이것이 어디 수영에서만 통하는 이치겠는가. 주변을 둘러보면 우리 모두는 언제부턴가 고개를 숙이고 천천히 사는 법을 잊은 것 같다. 모두가 아는 속담을 새삼 들먹이지 않더라도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는 법’인데 말이다. 낮과 밤, 평일과 휴일을 구분하지 않고 머리를 들고 충동적으로 일하는 이들이 존경을 받고, 끊임없이 자신에게 흥미와 자극이 되는 일을 찾으면서 금방 질려하지는 않았는가. 이뿐만 아니다. 자신이 데리고 있는 운전기사에게 막말을 일삼는 것도 모자라 폭행까지 하는 기업 회장님, 자기 자식 취직 좀 봐달라고 여기저기 청탁을 하는 높으신 분들…. 저마다 고개를 숙이는 법을 모르고 그저 앞 만 보고 빨리만 가려는 추악함을 보여준 사례다.
이럴수록 사회적 지위나 은행의 잔액보다 더 중요한 것을 얻으려는 이들이 빛나 보이는 법이다. 가만히 주위를 둘러보면, 선한 의지를 갖고 묵묵히 제 갈 길을 가면 세상을 바꾸는 데 작은 힘이나마 보탤 수 있다고 믿는 이가 많다. 손자 녀석이 다니는 초등학교 앞 횡단보도에는 매일 아침 어린이 교통안전을 위해 봉사하는 어르신이 있다. 학부모도 아니고 누가 수고비를 챙겨주는 것도 아니지만 그분은 비가 올 때나 눈이 올 때나 매일 아침 같은 시간에 나와 아이들 안전을 보살핀다. 그러면서 힘든 기색 없이 늘 웃는 얼굴로 사람들을 대하니 학부모들은 그분을 보면 감사하고 마음이 놓일 수밖에 없다.
겸손하게 말씀드리자면 살아가는 데 있어 빠르기는 그다지 중요한 것 같지 않다. 속도보다는 삶의 방향을 잘 잡는 것이 필요하다. 방향이 올바르고 그 길로만 꾸준히 나간다면 느려도 언젠가 원하는 장소에 이를 수 있다고 믿는다. 그렇게 고개 숙이고 천천히 주위를 살피며 걸어가 마침내 가고자 하는 길에 다다랐을 때가 인생에서 가장 큰 희열을 느낄 때가 아니겠는가.
김성철 인천시 부평구 열우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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