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뉴델리의 인디라 간디 국제공항 터미널 내에서 트렁크가 나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그때 신문사 뉴델리 특파원이었다. 김해 김씨 종친회라고 쓰인 짐들이 컨베이어벨트 위에서 보였다. 뭐지? 김해 김씨 종친회 회원들이 왜 인도에? 순간 떠오르는 게 있다. 아요디아(Ayodia)에 제를 지내기 위해 온 이들이다. 김해 김씨 종친회는 매년 인도를 찾는다고 했다. 김해 김씨 시조인 김수로왕의 부인이 허황후다. 허황후는 인도에서 왔다고 전해진다. 허황후는 한국인 일부가 남방에서 기원했다는 대표적인 이주 신화다.
서울대 의대 교수 이홍규가 쓴 <한국인의 기원>(2010)에 따르면, 한국인 유전자의 70%는 북방계이고, 30%는 남방계다. 한반도인은 과거 세 차례에 걸쳐 이 땅에 이주해왔다. 먼저 온 건 남방계였고, 이들은 두 차례에 걸쳐 각각 이동했다(1만 5000년 전, 1만 2000년 전). 북방계가 맨 나중에 한반도에 들어왔다.
이홍규 교수는 유전자지리학 연구를 바탕으로 한국인 뿌리를 추적한다. 유전자지리학은 유전자를 분석해 특정 유전자 그룹의 분포를 확인한다. 지구상 다른 지역 사람 유전자와 비교하면, 그 유전자를 가진 사람이 어디서 어떤 경로로 이동했는지를 알 수 있다. 이 교수는 당뇨병 전문가인데, 당뇨 유발 유전자를 연구하다가 유전자지리학 공부를 하게 됐다.
한국인 기원을 추적하는 오래되고 다른 방법에는 역사학이 있다. 기록이 없는 선사시대로 올라가면 고고학이 있다. 역사학자와 고고학자는 한국인 뿌리를 오래도록 캐왔다. 여기에는 한계가 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수록 기록이 적어지고 유물도 찾아보기 힘들어진다. 이때 유용한 게 유전자다. 유전자를 읽어내는 분자생물학의 발전에 따라 유전자는 그걸 갖고 있던 생명체가 살아온 기록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유전자가 담고 있는 정보를 읽어낼 수 있는 독해력만 갖추면 그 기원을 추적할 수 있다. 유전자들의 변이도를 확인하는 게 핵심이다.
분자생물학이 확인한 ‘분자시계’로 기원을 따져보는 방법은 세 가지가 있다. 미토콘드리아DNA(mtDNA) 판독법, 부계 유전자 Y염색체 분석법, 일반 유전자[상(常)염색체] 분석법이다. 미토콘드리아 분석법은 모계를 따라가고, Y염색체는 부계 족보를 추적한다. 상염색체는 성별 특성이 따로 없다.
한국인의 유전자 70%는 북방계이다.
미토콘드리아DNA 판독법은 세포 내 미토콘드리아가 갖고 있는 유전자를 근거로 한다. 미토콘드리아는 에너지 생산기관으로, 핵이 아닌데도 유전자를 갖고 있다. 특히 어머니가 갖고 있는 미토콘드리아만이 후손에 전해진다. 아버지 세포가 갖고 있는 미토콘드리아는 자식에게 전해지지 않는다. 수정 과정에서 정자 꼬리에 들어 있는 미토콘드리아가 잘려나가기 때문이다. 이 연구의 대가는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 교수였던 앨런 윌슨(1934~1991), 브라이언 사이크스(1947~ )다. 앨런 윌슨은 1987년 논문에서 미토콘드리아를 추적, 20만 년 전 아프리카에 살던 한 여인이 현재 지구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의 어머니임을 알아냈다. 그 여인은 ‘미토콘드리아 이브’라고 불린다.
Y염색체, 즉 부계 유전자를 비교 분석해 인류의 기원과 이동 경로를 알아낼 수 있다. 이 방법은 미국 텍사스 오스틴대학 인류학자이자 유전학자인 스펜서 웰스(1969~ ), 영국의 유전학자 스티븐 오펜하이머(1947~ )가 전문가다. 스펜서 웰스는 Y염색체 변이도를 연구, 최초의 남자인 Y염색체 아담이 6만~9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기원했다고 주장한다. 스펜서 웰스는 인류의 이동 경로를 확인하는 ‘유전지리학 프로젝트(The Genographic Project)’를 지난 2005년부터 10년간 맡아 이끈 바 있다. 이 프로젝트는 미국 국립지리학회(National Geographic Society)와 IBM이 후원하며, 2017년 현재 세계 140개국 80만 명이 참여하고 있다. 상염색체 변이를 분석해 인류의 이동 경로를 추적한 전문가는 미국 스탠퍼드대학 집단유전학자 루이기 루카 카발리-스포르차(1922~ )다.
<한국인의 기원>을 쓴 이홍규에 따르면, Y염색체 D형을 가진 사람들은 최소 1만 5000년 이전에, C형을 가진 이들은 1만 2000년 이전에 한반도에 도착했다. 이들은 먼저 살고 있던 직립인(호모 에렉투스)을 대체했다. 북방계는 1만 년 전 빙하기가 끝나면서 바이칼 호 부근에서 남하했다. Y염색체 유전자 O형을 가진 사람들이다. 요하 부근으로 내려온 이들은 원(元)-몽골리언으로, 먼저 와 살고 있던 남방계 사람들과 섞이면서 새로운 문명을 발달시켰다. 요하 문명이다. Y염색체 O2b형을 가진 남자가 한국, 만주, 일본에까지 들어가 산다. 오늘날 이 유전자형을 가진 사람이 이 지역에 많다.
한국인은 후기 구석기인 후예다.
유전자지리학의 발견은 한국 교과서 내용과 좀 다르다. 이홍규 교수에 따르면, 교과서는 오늘날 한국인이 전기구석기, 중기구석기에 살았던 옛 사람의 후손인 것처럼 설명한다. 소위 ‘다지역 기원설’이다. ‘다지역 기원설’은 학계의 다수 의견이었으나 유전자지리학 발견에 의해 부정됐다. 한반도 전기구석기 문화를 일군 호모 에렉투스, 그리고 중기구석기 문화를 일군 옛 사람은 사라졌다. 오늘날 한국인은 이들을 멸종시킨 후기구석기인의 후예다.
우리는 흔히 북방계 하면 긴 얼굴, 큰 몸집이고, 남방계 하면 둥근 얼굴, 작은 몸집을 연상한다. 한국인은 북방계임에 더 자부심을 느끼고, 남방계와 비슷하다고 하면 불쾌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바닷길보다 초원의 길을 더 그리워한다. 북방계 유전자가 더 많이 섞여 있는 탓인가? 이홍규는 <한국의 기원>을 마무리하면서 “바이칼로 가야 한다. 요하로 가야 한다. 북방으로 가야 한다. 가서 우리의 흔적을 더 찾아야 한다”고 썼다. 그는 북방으로 갔다. 다녀와서 내놓은 책이 <바이칼에서 찾은 우리 민족의 기원>이다.
남방계 주민의 한반도 유입을 기록한 가장 오랜 책은 <삼국유사>다. 일연이 쓴 삼국유사는 김수로왕 부인 허황후가 배를 타고 김해 앞바다에 도착했다고 전한다. 기원전 48년이다. 김해 김씨 종친회 사람들이 인도를 찾게 한 건 고고학자 김병모(한양대 명예교수)의 집념 덕분이다. 김병모는 <삼국유사>의 허황후 신화를 추적했고, 그 결실을 <허황옥 루트, 인도에서 가야까지>(2008)란 책으로 내놓았다.
김병모는 허황후가 ‘아유타국에서 왔다’고 말한 <삼국유사> 기록을 갖고 ‘아유타’가 인도 어딘지를 캤다. 북인도의 고대 도시 ‘아요디아’가 아닌가 추론한다. 아요디아는 힌두 신화 ‘라마야나’의 주인공인 람 왕이 태어난 곳이다.
김병모 주장 중 눈길을 끄는 건 허황옥이 한국에 오기 직전에는 중국 쓰촨성 안악(安岳)현에 살았다는 것이다. 그를 이끈 건 허황후 묘비 비문의 ‘보주태후(普州太后)’라는 글씨다. 보주(普州)가 인도 지명이 아닌, 중국 쓰촨성 안악의 옛 이름이란 걸 알아냈고, 그리고 허황옥이 한반도에 오기 1년 전인 서기 47년에 쓰촨성 일대에서 토착민 반란이 일어났음을 역사책 <후한서(後漢書)>에서 확인한다.
“광무 23년 남군(南郡) 만족이 반란을 일으켰다. 무위장군 유상을 파견하여 토벌했다. 강하(江夏)로 이주시켰다.”
고고학자의 상상력은 무한대다. 김병모는 이 반란으로 허황옥이 고향을 떠났고, 한반도로 피란했다고 생각한다. 그는 이어 중국 현지에 가서 허씨 집성촌이 지금도 있고, ‘허황옥’이라는 전설적인 여성에 관한 기록이 있음을 알아냈다.
김병모가 당초 추적한 건 허황옥과 김수로왕 묘역의 쌍어문(雙魚紋)이었다. 쌍어문은 해양 루트에 걸쳐 있던 문명에서 발견된다.
“지구상에서 신어(神魚)상이 나타나는 지역을 지도로 그려가며 살펴보면 바빌로니아에서 인도로, 인도에서 중국 장강(長江) 유역으로 퍼져 있고, 다시 황해를 건너 한국의 김해 지방에 이른다. 이 현상은 어쩌면 고대 세계에서 일어난 집단 이민의 한 루트일지도 모른다.”
김병모가 쌍어문을 보고 가본 아시아 남부 해안을 따라가는 루트와, 한국인 남방계 유전자의 이동 경로는 일치한다. 한국인 조상의 일부는 쌍어문 루트를 따라 1만 5000년~1만 2000년 전에 서아시아 해안에서 동남아시아 해안을 따라 올라온 게 분명하다. 그 이동 경로가 다른 데도 아니고 내 몸 안에 남아 있다니, 놀랍고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최준석 | 주간조선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