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모반듯한 편지지에 빼곡히 적힌 글자. 이것만이 ‘편지’의 모습은 아니다. 사랑과 관심을 전하는 데에는 이토록 다양한 방법이 있다.
1년, 3십년 뒤 배송되는 ‘느린 편지’
2천9년부터 곳곳에 눈에 띄는 신기한 우체통이 있다. ‘느린우체통’이다. 지방자치단체와 공공기관에서 추억을 기념할 장소에 설치한 우체통이다. 빠른 것을 중요시 여기는 2십1세기에 기다림의 의미를 일깨워주기 위해서란다. 이는 우정사업본부가 운영하는 정식 우체통은 아니다. 우체통이 위치한 곳에서 무료로 제공되는 엽서나 직접 가져온 우편물에 사연을 적어 우체통에 넣으면 6개월이나 1년 뒤 적어둔 주소로 배달해준다. 2천9년 5월 인천 서구 영종대교기념관(현 영종대교휴게소)에 처음 생긴 후 서울 북악팔각정, 전남 신안군 가거도, 중부내륙고속도로지선 현풍휴게소, 경남 창원 의창구의 주남저수지 전망대와 창원의 집 후문 등에 잇따라 설치됐다.
한편, 지난 2천십4년에는 한 통신사에서 재밌는 편지 서비스를 선보였다. 바로 ‘3십년 뒤 전송되는 영상 편지 서비스’다. 해당 통신사의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동영상·사진·음성을 발송하면, 최소 한 달에서 최대 3십년(2천4십4년 십2월 3십1일)까지 지정된 날짜에 메시지가 전달된다.
갓 태어난 딸을 보며 ‘미래의 서른 살이 됐을 딸’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게 가능한 서비스인데, 2천십4년 한시적으로 운영됐다.
우체국이 대신 써주는 ‘맞춤형 편지’
직접 편지지를 사러 가지 않아도 된다. 글씨를 쓸 필요도 없고, 우체국에 갈 필요도 없다. 그런데 손 편지만큼의 아날로그 감성은 있다. 우체국의 ‘맞춤형 편지’ 서비스다. 우체국 누리집에 접속해 편지지를 고르고, 글꼴을 고르면 원하는 장소로 우체국이 직접 편지를 배달해준다.
먼저 인터넷우체국(www.epost.go.kr)에 회원 가입을 한 다음, 메인 화면에서 우편서비스를 선택한다. 우편서비스 중 맞춤형 편지를 클릭하면 선택형과 주문형 중에서 선택이 가능하다. 선택형은 우체국에서 준비한 다양한 디자인의 편지지를 이용하는 서비스며, 주문형은 신청한 내용문 파일을 백지(A4)에 출력해 제작해주는 서비스다.
그런 다음 들꽃향기, 고전 스타일 등 다양하게 준비된 편지지를 고르고, 봉투 크기도 선택한다. 편지 내용은 글꼴을 골라 직접 타이핑할 수도 있고, 정해져 있는 문서를 파일로 첨부해도 된다. 편지는 최대 여섯장까지 가능하다.
3일 이후부터 십3개월 이내 예약 발송도 할 수 있다. 잊어버리기 쉬운 기념일에 예약 발송을 주문하면 기념일에 맞춰 우편물이 발송된다. 이용요금은 편지 한장당 5백8십원이고, 발송료는 보통 등기 기준 천6백3십원이다.
▶ 지난 2014년 경기 수원우체국에서 시민들이 쓴 희망씨앗 편지 2014개를 발송하는 모습. ⓒ뉴시스, 오른쪽 ‘느린 우체통’. ⓒ연합
표정과 함께 전하는 ‘영상편지’
멀리 떨어져 자주 보지 못하는 가족들이 쓰기 좋은 방법이다. 영상편지. 어렵게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스마트폰으로 쉽게 할 수 있다. 동영상 카메라를 켜고 촬영을 한 다음 이메일, 메신저, 문자메시지 등으로 보내기만 하면 된다.
캐나다 코퀴틀람에 거주하는 차준수(3십6) 씨는 최근 경기도 일산에 거주하는 시어머니께 서툰 솜씨로 영상편지를 보냈다. 결과는 ‘점수 따기’ 대성공. 그는 “문자메시지는 말할 것도 없고 영상통화로 손 편지 이상의 감동을 드린 것 같다”고 말했다.
“1분이 채 안 되는 영상인데, 혼자 카메라에 대고 말하다 보니 통화하는 것보다 좀 더 진솔해지는 느낌이었어요. 그동안 하지 못했던 말도 전해드리고 눈 딱 감고 ‘전송’을 눌렀죠. 남편 몰래 보냈는데, 나중에 시어머니께 전해 듣고 엄청 감동받더라고요. 덕분에 남편에게도 점수를 땄죠.”
단순히 자신의 목소리와 얼굴을 담는 영상에서 나아가 배경음악을 깔고 영상편집을 하고 싶다면 ‘영상편지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하면 된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편지
편지 문구를 보내면, 세상에서 가장 작은 손편지를 제작해 주는 곳도 있다. 어르신은 물론이고, 젊은 사람 또한 돋보기를 껴야만 볼 수 있을 만큼 작은 편지다.
세계에서 가장 작은 우편물을 전해주는 포스트 서비스(The World’s Smallest Post Service)가 그것이다. 이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있지만, 주문하면 전 세계 곳곳으로 발송이 가능하다.
이 작은 편지는 실제 우편함에 담을 때에는 표준 규격 봉투에 한 번 더 넣어서 보낸다. 주문을 하려면 이곳(https://www.leafcutterdesigns.com)을 방문하면 된다.
마음과 함께 자라는 나무, ‘씨앗편지’
경기도에서는 각종 농업박람회 등을 통해 ‘씨앗편지’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씨앗편지 보내기 행사는 도시농업 관련 행사에서 도민이 직접 쓴 손 편지를 보관했다가 봄철 꽃씨를 더해 편지를 쓴 도민의 가족, 친구, 연인에게 보내주는 프로그램이다. 편지 속에는 나팔꽃, 구절초, 메리골드, 상추 등 3십3종의 꽃과 채소 씨앗이 담겨 있다.
2천십6년 도시농업박람회에 참여해 씨앗편지를 작성한 한 도민은 “오랜만에 손 편지를 써보는데 사랑하는 사람에게 꽃씨까지 보낼 수 있어 기쁘고 설렌다”고 소감을 밝혔다.
▶ 작은 편지와 의성경찰서장의 편지 ⓒ작은 편지 서비스 홈페이지, ⓒ의성경찰서
가정폭력 가족에게 보내는 ‘경찰서장의 편지’
의성경찰서장은 분기별로 편지를 쓴다. 누구에게? 가정폭력 우려 가정에. 가해자의 의식 전환과 재발 방지 차원에서다.
의성경찰서의 ‘감성편지’가 화제다. 김유진 의성경찰서 여성청소년계 순경은 “의성경찰서 특수 시책 ‘행복가정 하하호호’는 가정폭력 가해자의 가부장적이고 폭력적인 성향 전환을 위해 감성적인 문구를 가미해 서장님 명의의 서한문 형식으로 재발 우려 가정으로 편지를 보내는 시책”이라면서 “부부지간 또는 가족애를 느낄 수 있는 감성적인 문구를 통해 가해자의 인식 전환을 기대하며 보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감성편지’를 받은 한 피해자는 “행복편지로 가족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었다”면서 “남편도 조금씩 달라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의성경찰서의 감성편지는 지난 2천십5년 3월부터 시행해왔다. 가정의 달 5월에 맞춰 위기가정에 발송될 예정이며, 앞으로 분기에 한 번씩 보낼 예정이다.
박지현 | 위클리 공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