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은 발효 음식의 나라다. 밥을 제외하고 한국인의 밥상은 발효로 완성된다. 김치, 젓갈, 된장국을 비롯해 발효 음식의 종류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중에서도 콩을 발효시켜 만든 장(醬)은 한식의 뿌리이다. 맛을 결정하는 기본 조미료이자 아미노산의 주요 공급원으로 우리 밥상을 지켜왔고 그 자체만으로도 완벽한 반찬이다. 밥맛 없을 때 풋고추에 된장만 있어도 훌륭한 한끼 식사가 되니 말이다.
醬(장)이라는 한자는 술이 담긴 항아리를 뜻하는 酉(유)와 將(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된장과 씨간장이 담긴 장독대의 항아리를 생각해보면 酉의 형태가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발효 시간이 필요한 酒(술), 醋(식초), 醴(단술) 등에도 모두 酉가 들어간다. 將(장)은 소리를 나타내는데 발효를 통해 전혀 다른 맛으로 변화되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에서 장은 콩이 주원료이기 때문에 두장(豆醬) 또는 콩장이라고도 부른다. 중국의 장은 두장이 아니라 육장(肉醬)과 어장(魚醬)이다. 중국에서는 춘추전국시대까지만 해도 육장만 있었고 콩장은 한나라 때 처음 등장했다. 중국 의학서인 ‘본초강목’에는 콩장이 우리나라 것이라고 적혀 있다. 중국의 여러 사서에는 ‘고구려 사람들이 발효를 잘한다’고 기록돼 있다. 청동기시대 유적지인 함경도 회령과 평양에서 콩이 출토되고, 단군조선 27대 왕 두밀(豆密, BC 997~972)과 39대 왕인 두홀(豆忽, BC 545~510)의 이름, 두만강(豆滿江)과 대두산성(大豆山城) 등의 지명에 콩(豆)이 들어간 기록을 보면 기원전부터 콩을 재배했음을 알 수 있다. 자연환경 자체가 우리 민족을 콩장의 전문가로 키운 것이다.
된장, 고추장, 간장은 비록 겉모습이 다르지만 주원료가 메주라는 점에서는 출신 성분이 동일하다. 메주는 장의 핵심 원재료로 콩을 삶아 찧어서 벽돌 모양으로 만들어 며칠 동안 방에 두고 말린 후 짚으로 묶어 처마에 매달아 놓는다. 이때부터는 햇볕과 바람과 계절이 만들어준 온도와 습도에 의해 다양한 곰팡이, 효모, 박테리아 등 수십 종의 복합미생물이 강림한다.
우리는 메주의 변신에 인위적인 개입을 하지 않고 온전히 자연에 권한을 위임한다. 인간의 통제가 자연이 완성한 깊은 맛을 당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날, 그 집의 메주에 어떤 효모가 깃들지는 오직 자연만이 안다. 철저하게 관리된 코지균으로 단일화한 일본 미소와 달리 한국의 장은 자연 속에 적나라하게 노출되어 자연을 놀이터로 삼는다. 그래서 장맛은 집집마다 다르고 숙성 기간에 따라 변한다. 자연에 가장 가까운 맛이다. 우리가 된장을 먹을 때 그것은 단순히 식물성 단백질이 아니라 그 안에 숙성된 시간과 자연을 먹는 것이다. 이것이 한국 콩장의 장점이자 신비스러운 영역이다.
현재 글로벌 음식 트렌드의 키워드는 장(腸) 건강, 면역력, 미생물 다양성, 지속가능성 등이다. 이 모든 요구를 단박에 해결해 줄 수 있는 식문화가 한국의 발효 음식이다. 이렇게 완벽한 발효 음식임에도 불구하고 된장을 세계화하는 데는 여전히 큰 장벽이 가로놓여 있다. 자연에서 온 장맛은 강하고 깊다. 깊은 맛은 좋은데 강한 맛은 처음 접하는 사람이 적응하기 쉽지 않다. 청국장집이나 홍어집에서 밥을 먹고 나오면 10m 전방에 있는 사람도 알아차릴 정도로 냄새가 강하다. 몸에는 좋으나 다른 문화권 사람들이 다가가기에는 쉽지 않은 냄새. 그 사람들에게 어떤 스토리로 한국의 발효 음식에 매혹당하게 할 것인가에 K-푸드의 미래가 달려 있다. 이미 세계인들은 가공식품과 인공첨가물에 피로감을 느낀 지 오래됐다. 한국의 장을 퍼주기 좋을 때가 되었다는 뜻이다.
조정육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