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새해 벽두 지구촌은 충격적인 뉴스로 한 해를 시작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명령에 따라 미군 특수부대원들이 1월 3일 새벽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에서 강제로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 신병을 확보해 뉴욕으로 이송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2025년 1월 취임 이후 베네수엘라를 상대로 군사적 조치를 하겠다고 위협하기는 했지만 그 나라 대통령을 강제로 끌고 나오는 시나리오는 상상을 초월한 것이다. 마두로 대통령에 대한 국제사회 평가가 좋지는 않았지만 미군 특수부대 행동은 즉각적으로 국제법과 국내법 위반이라는 논란을 야기했다. 무엇보다도 주권과 불가침이라는 국제질서의 최소 규범이 패권국 또는 초강대국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선택적으로 적용된 사례라는 점에서 우려가 크다. 문제는 어떤 비난이 제기된다고 해도 트럼프 대통령이 태도를 변경할 가능성은 없다는 것이다. 패권국 미국의 일방적 군사 조치에 대해 힘으로 대항할 수 있는 세력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극 질서의 도래 vs 단극 질서 유지
일국 대통령이 다른 나라 특수부대원에게 끌려가는 상황은 2025년 1월 트럼프 재등장 이후 전개된 국제질서 변화 논의를 가열할 전망이다. 지난 1년 동안 외교안보 분야 전문가들은 미국이 자국 이익에 집중한다는 의지를 공개적으로 밝힌 점, 중국과 러시아가 미국 주도 질서에 반발하는 상황 등을 고려해서 국제질서가 다극화할 것이라는 전망에 주목해왔다. 마두로 체포는 다극 질서 도래 주장에 더욱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다. 그러나 마두로 사태를 포함해 트럼프 등장으로 초래된 국제 질서 혼란이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변화를 의미하는지 여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우선적으로 검토할 문제는 미국 외에 지구촌 단극 질서는 물론 다극 질서를 주도할 의지와 역량을 가진 나라가 없다는 점이다. 많은 사람이 중국을 말한다. 10여 년 전부터 중국이 급부상하면서 미중 전략 경쟁이 전개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두 나라 경쟁은 패권을 놓고 정면으로 대결하는 구도가 아니다. 오히려 미국이 중국을 상대로 억제와 관리를 진행하고 중국이 이에 저항하는 의미가 크다. 중국이 급부상했지만 미국에 비하면 역량이 크게 부족하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미국의 1인당 명목 GDP는 8만 9000달러 정도로 중국(1만 4000달러)에 비해 6배 이상이다. 질적 차원의 국가 역량을 의미하는 개인소득에서 미국과 중국 격차가 크다는 것은 중국이 앞으로도 다양한 도전과제를 극복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군다나 미국은 선진국 가운데 경제 성장이 가장 빠른 나라에 속하고 인구가 가장 많이 증가하는 나라다. 반면에 중국의 경제 성장 속도는 느려지기 시작했고 인구도 곧 감소 추세를 보일 것이다.
일부 전문가는 러시아도 다극화 질서에서 하나의 중심축이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는 스스로 국제질서에 필요한 공공재를 제공하겠다는 의사가 보이지 않는다. 단지 미국의 패권 운용 방식에 대해 개별적으로 반발하면서 자국 이익에만 집중하는 군사 강대국 의미가 크다. 공공재 제공과 더불어 인권과 민주주의 등의 부문에서 패권국 자질을 갖추려면 상당한 시일이 필요하다. EU(유럽연합)는 미국이나 중국에 비해 경제·군사 부문에서 상당한 격차를 보이고 있다. 특히 회원국 간 이해관계가 복잡해서 통합적인 외교정책을 바탕으로 국제질서를 주도하기에 한계가 있다.
미, 이기적 패권국으로 전환
미국이 일탈행위를 보이는 점을 중시하는 분석도 일리가 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끄는 제2기 트럼프 행정부가 2025년 1월 출범하면서 ‘미국 우선주의’를 강조하고 시대착오적인 ‘관세 폭탄’을 다른 나라에 부과하면서 지구촌에서 반미정서가 확대되고 있다. 이번에 마두로 대통령이 미국으로 끌려가는 상황을 보면 국제 규범 준수와 관련해 미국의 지도력, 특히 소프트파워는 중대하게 손상될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 셈법은 전혀 다르다. 미국이 안보 질서와 통상 질서를 책임지는 방식이 미국에 불리하다면서 국제질서 관련 공공재는 나라별로 알아서 해결하고 미국은 자국 이익을 극대화하는 행보를 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일부 전문가 해석처럼 미국이 패권국 지위를 버리겠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지구촌 공공재를 제공하는 패권국에서 자국 이익만 중시하는 이기적 패권국으로 정체성 색깔을 전환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서반구, 즉 미주 대륙 전체만 영향권으로 설정한 만큼 다른 지역에는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설득력이 부족하다. 트럼프 대통령의 말과 달리 그의 관심 지역은 이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물론 이란과 이스라엘 갈등, 가자 지구, 아시아와 아프리카 분쟁 지역 등 지구촌 전체를 포괄하고 있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이 국내적으로도 부작용이 이어지는 만큼 정책 수정 가능성에 주목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그동안 동맹을 중시하면서 동맹들로부터 착취를 당했다고 주장했지만 현실은 다르다. 미국은 지난 30여 년 동안 선진 강대국 가운데 평균 경제성장률이 가장 높은 나라였다. 독일과 영국 등 유럽의 주요 선진국들의 평균 성장률이 1.5% 정도였는데, 미국은 2.5% 정도로 두 배 가까운 성장률을 보였다.
미국 주도 질서의 성급한 붕괴 전망은 위험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쇠퇴론을 주장하면서 보호무역주의를 다시 꺼내든 이유는 실제와 차이가 있는 것이다. 냉전 종식 이후 신자유주의를 기반으로 미국이 진행한 세계화 정책이 미국 내부적으로 부의 재분배에서 불균형을 초래한 것과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은 정책 실패나 대외적 요소에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미국이 현재의 국제 안보 질서나 통상 질서를 완전히 해체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오히려 트럼프 대통령이 어느 정도 분위기 변화를 달성한 이후에는 다시 신자유주의 기반의 세계화 정책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 자본과 첨단기술에서 최강국인 미국에 절대적으로 유리하기 때문이다.
2026년 국제 정세 전망에서 미국 주도 단극 질서가 유지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이 글의 목표는 아니다. 다만 국제 정세 전망을 하면서 과도하게 하나의 극적인 장면이나 사람들의 흥미를 유발하는 시나리오에 경도되면서 정세 판단을 그르치는 것에 대해 경계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지표상 확률로 환산하면 미국 주도 단극 질서 유지 가능성은 50% 이상이고 다극화 질서 도래 가능성은 30%, 무질서 가능성은 20% 정도로 예측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보인다.
그런데도 단극 질서 유지 가능성은 외면하고 미국이 곧 패권국가 위상을 상실할 것을 전제로 정책을 논의하는 것은 곤란하다. 한국과 같은 동맹 기반 중견국 또는 신흥 선진국에 미국 주도 질서의 성급한 붕괴를 전제로 한 정세 인식은 돌이키기 어려운 오판을 유발할 수 있다. 이제는 한국도 강대국 전문가들이 개인적 유명세를 위해 제시하는 흥미 위주의 전망을 무비판적으로 따라가는 수동적 존재가 아니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외교안보 분야 종사자들이 문제를 독자적으로 평가하고 대응책을 능동적으로 제시하는 임무와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왕선택 서강대 대우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