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이천 물류센터 화재현장 소방관들

기름진 쌀과 빛 고운 도자기의 고장 경기 이천시. 지난해 1월 7일 40명이 사망한 코리아2000 냉동창고 화재 참사에 이어 지난해 12월 5일 서이천 물류센터에서 또다시 대형 화재가 발생해 7명이 사망하면서 이천은 대형화재 하면 떠올리게 되는 고장이 됐다.
서이천 물류센터 화재사건 발생 이후 6일째를 맞은 12월 11일, 서울에서 출발해 중부고속도로를 따라 가다 서이천IC 진출로로 접어들자 바로 오른쪽에 서이천 물류센터 화재 현장이 한눈에 들어왔다. 마치 영화 ‘매트릭스’에 나오는 파괴된 기계문명의 잔해처럼 보이는 거대한 철골 구조물이 일그러져 뒤엉킨 잿더미에서는 회색 연기가 계속 뿜어져 나와 하늘빛을 흐리게 했다. 연기에 뒤섞인 유독성 물질의 냄새는 고속도로를 지나는 차량 안까지 스며들 정도로 강력했다. 희뿌연 연기 속에 줄지어 선 소방차들과 소방관들의 분주한 모습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스멀스멀 연기를 내뿜는 지하의 화마(火魔)를 향해 물을 쏟아낸 탱크롤리 차량들은 다시 물을 채우기 위해 이곳에서 약 8km 가량 떨어진 이천시 관고동의 이천소방서로 향했다. 최근 발생한 이천지역 대형 화재 진압의 선봉장 격이 이천소방서다.
“아직 지하의 불길이 잡히지 않아 꼭 필요한 행정 인력을 제외한 대부분의 소방관들이 하루 24시간씩 근무하며 2교대로 화재 진압에 나서고 있습니다.”
이천소방서 유정상(46) 안전지도팀장은 며칠 잠을 못 잔 듯 초췌한 얼굴이었다.
행정팀 인력까지 화재 현장에 출동하니 정작 소방서 안은 한산하다. 그렇지만 잇따라 소방서 구내로 들어와 물을 채우고 나가는 탱크차들의 행렬은 비상상황임을 짐작케 한다.
“서이천 물류센터에 불이 났다는 첫 신고를 받은 때가 낮 12시 9분입니다. 소방관들은 항상 구내식당에서 식사를 하는데, 밥을 떠서 딱 한 숟가락 먹은 다음이었어요.”
점심 한 술 뜨는 둥 마는 둥하고 출동한 소방관들은 대형 화재가 발생하면 24시간 동안 불길과 싸우고 인명을 구조하느라 가끔 생수를 마시는 것 외에는 자신을 돌볼 겨를이 없다. 평소에도 자신의 건강은 챙길 틈이 없는 소방관들이지만 희생자 가족들의 울부짖음 앞에서는 더더욱 자신들의 어려움을 내세울 수가 없단다. 화재 당일 저녁 무렵까지 여전히 한 명이 실종 상태였고, 그래서 소방관들은 다시 불타는 창고 건물로 들어가야 했다.
안전모와 마스크 등 소방관들의 개인장비는 약 23kg으로 보통 사람 같으면 장비를 갖추고 움직이는 것 자체가 힘들다. 그렇지만 이들은 장비만큼이나 무거운 책임감과 사명감으로 실종자를 찾아 건물 수색작업에 나섰다. 그러나 강한 바람과 불길 탓에 건물 일부가 무너지면서 중앙119구조대에서 지원 나온 김진태(41) 소방관이 잔해에 깔려 얼굴과 손등, 엉덩이와 허벅지 등에 2, 3도 화상을 입었다.
유 팀장은 “그런 일이 동료에게 생길 때는 뭐라 표현할 수 없다”며 “그냥 멍해진다”고 설명했다.
이천소방서 대원들은 이 같은 사고에 특히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2007년 11월 이천시 마장면 CJ 이천공장 화재 현장에서 이천소방서 윤재희(28) 소방교가 무너진 건물에 깔려 순직한 이래 이천지역 대형 화재 때마다 동료 소방관들의 비보가 잇따랐기 때문이다.
[SET_IMAGE]2,original,right[/SET_IMAGE]식사도 거르며 23kg 장비 메고 화마와 싸워
각종 재난 현장에서 위험에 노출되고 훼손된 시신을 수습하는 극단적 상황을 자주 접하는 소방관들이지만 동료의 순직을 접하게 되면 큰 정신적 충격을 받는다고 한다. 1998년부터 지난해 8월까지 현장 활동 중 순직한 소방공무원은 모두 52명, 최근 5년간 사상자는 1589명에 달한다.
서이천 물류센터 화재 발생 후 거의 일주일째 현장을 지키고 있는 소방지휘본부는 비닐을 두른 천막 몇 채다. 검정색 방염복, 혹은 주황색 근무복의 소방관들이 분주한 가운데 얼굴을 아는 이가 아니면 현장 지휘관인 최영균 이천소방서장의 모습을 쉽게 알아볼 수 없다. 연일 이어진 24시간 근무에 복장이나 안색이 여느 현장 소방관들과 다름없다.
“문제는 지하에 저장돼 있던 돼지고기와 쇠고기입니다. 기름이 타다 보니 불길이 잘 잡히지 않고, 수질오염도 우려돼 기름 흡착포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짧은 몇 마디를 나눈 최 서장은 곧바로 현장보고를 받기에 바빴다. 유독성 가스 냄새가 코를 찌르는 화재 진압 현장에서의 짧은 점심시간, 보는 이로 하여금 손 씻는 것조차 사치로 느껴지게 만드는 소방관들에게 주어진 휴식이라곤 일회용 커피믹스를 탄 종이컵 커피 한 잔 마실 시간이 고작이다. 식사를 마친 소방관들은 지금도 현장 한 쪽에서 작업 중인 동료들과 교대하기 위해 발길을 서두른다.
3만여 소방공무원들은 공무원 중 유일하게 2교대, 주당 84시간의 격무에 놓여 있다. 증원은 몇 년째 제자리걸음이다. 소규모 소방초소에는 ‘나홀로 근무자’도 많아 지난 2월에는 골프장 화재 신고를 받고 새벽에 혼자 출동했던 일산소방서 식사지역대 조동환(46) 소방장이 3층에서 추락사했다. 그와 맞교대하는 소방관은 자리를 비울 수 없어 영결식에도 못 갔다고 한다.
소방관들에게 가장 흔한 암이 폐암과 위암이고, 연금수령 기간도 짧아 평균 5년이라고 한다.
세상에 많은 직업이 있지만 남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걸고 불길로 뛰어드는 직종은 소방관이 유일하다. 게다가 ‘슈퍼맨’에 가까운 만능을 요구받는 유일한 직종도 소방관일 것이다. 불과의 싸움은 물론 멧돼지와 벌을 쫓고, 잠긴 아파트 문도 열어줘야 한다. 어린이들에게는 영웅이지만 정작 사귀는 여성 부모의 반대로 결혼 못한 노총각들도 적지 않다.
“우리도 불길이 두렵고, 무너진 건물더미에 깔리면 아픕니다. 그래도 우리를 대신할 누군가가 없기에, 곁에 서 있는 동료를 믿으며 불길로 뛰어듭니다.”
서이천 물류센터 화재 현장에 탱크차 한 가득 물을 싣고 방금 도착한 한 소방관의 말이다. 모자를 벗은 그의 얼굴은 슈퍼맨이 아니라 우리의 평범한 이웃 그대로였다.
글·사진 박경아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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