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춤 인생 60년 맞은 국수호 명인
무대와 객석의 거리는 3m 남짓, 무대 위 춤꾼의 표정은 물론 숨소리까지 객석에 전해진다. 섬세하고 우아한 춤꾼의 호흡을 따라 관객의 숨이 멈추고 무아지경으로 휘몰아치는 춤사위에 무대와 객석의 경계가 사라진다. 춤꾼의 몸짓이 대금·아쟁·거문고 소리를 이끌고 춤의 여백을 채우는 북소리가 춤의 감정과 깊이를 더한다.
9월 25일 서울 강남구 한국문화의집(KOUS)에서 특별한 무대가 열렸다. 이 무대의 주인공은 한국 전통 춤의 산증인 국수호(승무 이수자) 명인이다. 올해로 일흔일곱 살, 여전히 무대를 지키고 있는 명인의 춤 인생 60주년을 기념해 국가유산진흥원이 기획공연(무악2-보허자무·步虛子舞)을 마련, 그를 위한 춤판을 벌였다. 이날 그는 한국 전통 춤의 근간을 이루는 ‘국수호류 입춤’을 선보이고 ‘보허자무’라는 새로운 창작무를 선보였다.
세계를 휩쓴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가 증명하듯 K-팝이 특별할 수 있는 것은 그 뿌리에 전통 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전통과 현대를 가로지르며 한류에 깊이를 더하는 국수호 춤의 여정은 전통 춤의 여정이자 K의 확장이기도 하다.
그는 1987년 국수호디딤무용단을 창단해 전통 춤을 한 차원 끌어올리고 1988 서울올림픽 개회식 안무, 2002 한일 월드컵 개막식 안무를 맡았다. 이런 굵직한 무대를 통해 한국 문화의 DNA를 세계적인 무대 언어로 바꾸는 역할을 해왔다.
K-팝 안무에 이어 전통 춤이 새로운 관심을 받고 있는 요즘, 국립무용단 1호 남자 무용인 국수호 명인을 통해 한국 춤의 미래를 그려봤다. “내 춤은 수행이자 시간의 흔적”이라고 말하는 그의 발끝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올해로 춤을 춘 지 60년이 됐다. 긴 세월 무대를 지킨 비결이 궁금하다.
체력이 가장 중요하다. 처음 춤을 추겠다고 결심한 고등학교 때 이후 10년 동안은 매일 10시간씩 춤 연습을 했고 당시 자연스레 길러진 체력이 여전히 지금의 나를 지탱하고 있다. 춤은 전신을 다 쓰기 때문에 자연스레 체력이 강해질 수밖에 없지만 몸을 지탱하는 근육과 춤을 추는 근육은 분명 다르다. 나이가 들면서 몸을 지탱하는 근육이 튼튼해야 춤을 출 수 있다고 느꼈다. 쉰 살 이후부터는 내 춤을 추기 위해 근력운동을 중심으로 개인 트레이닝을 꾸준히 받고 있다.
한국 춤의 산증인이다. 우리 춤 발전의 결정적 장면을 한 가지 꼽는다면?
1962년 국립무용단이 창단된 것이다. 나는 1973년에 입단했는데 내가 1호 남자 무용인이었다. 당시 국립무용단은 우리나라를 알리는 역할이었다. 20년 동안 130여 개국을 돌아다니며 순회공연을 했는데 1년 중 4개월은 해외생활을 했다. 주로 북·중남미부터 시작해 유럽 전체를 돌고 아프리카와 중동을 거쳐 아시아로 돌아오는 일정이었는데 현지에서 공연을 선보일 때마다 외국인들이 한국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갖는 게 오롯이 느껴졌다. 지금은 K-팝이 K-컬처의 대표지만 당시에는 국립무용단과 한국 춤이야 말로 진정한 K-컬처의 상징이었다.
남자 무용인 1호라는 타이틀만큼이나 부담감도 상당했을 것 같다.
국립무용단에 입단했을 1970년대는 시대상 남자가 춤을 춘다는 것 자체가 희귀했다. 사회적 인식도 좋지 않았고 출신지역을 따졌던 시절이기도 해 믿을 건 내 실력이 전부였다. 그래서 죽어라 연습만 했다. 진통제를 먹고 연습한 적도 있다. 옛날 무대는 지금과 달리 나무로 만들어진 마룻바닥이 다수였는데 나무 가시가 버선을 뚫고 들어와 발을 다친 적도 많았다. 하지만 쉬면 그렇게 불안했다. 연습을 하다 다쳐도 죽기야 하겠느냐는 심정으로 또 움직이곤 했다. 그때의 시간이 지금의 내 춤을 더 단단하고 견고하게 만들었다.
처음부터 춤을 직업으로 삼겠다고 생각했나?
그건 아니다. 춤과 가까운 유년기와 학창 시절을 보냈다. 춤에 대한 첫 기억은 서너 살 때다. 그때 처음으로 굿춤을 봤다. 또 중학교 때는 밴드부 활동을 했고 고등학교 시절에는 수업이 끝난 후 농악반에서 장구를 치며 춤도 배웠다. 하지만 학업을 게을리 한 건 아니었다. 고등학교 당시 전공은 토목공학이었는데 여전히 관련 기술이 생생하게 기억날 정도다. 알다시피 토목공학은 꼼꼼한 자세가 중요한 학문이다. 춤 한 동작에도 세심하게 신경 쓰는 것은 토목공학을 공부한 데서 비롯된 것 같다.
후학양성에도 힘을 쏟았다. 젊은 무용인들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나?
무대 위 성숙함에서 차이를 느낀다. 그들의 실력이 부족하다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같은 어른이지만 20대와 40대 사이에는 간극이 존재하지 않나. 춤도 마찬가지다. 관객에게는 똑같은 춤이겠지만 내가 보기에 젊은 무용인들은 여전히 성장기에 있다. 같은 춤을 추더라도 다르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그들이 표현하고 드러내는 동작들은 전부 다 훌륭한 시행착오라고 생각한다. 실제 무용인의 성장기는 최소 20년을 거치는데 그 시기가 지나야 온전히 무용인으로서 창작기가 도래하고 역량도 꽃핀다.
1988 서울올림픽 개회식 안무, 2002 한일 월드컵 개막식 안무 총괄을 맡았다. 세계인에게 선보일 수 있는 한국 춤만의 정서나 매력은 뭔가?
한국 전통 춤의 세계성은 ‘정(正)·중(中)·동(動)’의 미학에 있다. ‘정’은 정숙하고 정적인 의미가, ‘중’은 균형 있고 치우치지 않는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동’은 동적이면서도 앞서 언급한 정과 중을 함께 머금는 움직임을 말한다. 한국 춤에는 손짓 하나에도 언어적 메시지가 담겼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한국 전통 춤은 기술적 부분만큼 정서적 전달도 중요한 예술이다. 승무, 살풀이 같은 춤은 아무나 쉽게 따라 하고 출 수 있는 춤이 아니라는 점에서 매력적이고 글로벌 경쟁력도 있다. 그 부분이 외국인들이 가장 열광하는 포인트기도 하다.
최근 K-컬처에 대한 세계적 관심이 뜨겁다. 한국 춤의 확장 가능성은?
‘케데헌’을 인상 깊게 봤다. ‘케데헌’을 만든 매기 강 감독 인터뷰를 읽어봤는데 한국적 요소를 발췌할 수 있는 능력이 참 대단한 사람이라고 느꼈다. 그의 말대로 앞으로 K-컬처의 핵심은 세계인들이 공감할 수 있는 한국적 요소를 얼마나 발견할 수 있는가에 있다. 우리 춤은 이미 세계적 수준의 예술이다. 아직 대중성이 발굴되지 않았을 뿐이다. 곧 대중적 요소를 구현하는 무용인과 콘텐츠가 나타나리라 믿는다.
전통 춤의 세계화를 위한 지원도 필요한 시점 아닌가?
전통 춤에 특화된 무대가 지어졌으면 한다.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예술의전당, 국립국악원의 예악당, 국립극장 모두 서양식을 따른 건축물이다. 전통 춤을 온전히 보여줄 수 있는 공간은 아니다. 판소리만 보더라도 2008년부터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돼 있지만 정작 우리나라에는 판소리 전문극장 자체가 없다. 한국 춤 전문극장도 없다. K-컬처를 강조하는 만큼 한국예술을 선보일 수 있는 고유의 공간이 필요한 시점이라 생각한다.
춤 60주년을 기념해 ‘보허자무’라는 창작무를 공개했다. ‘허공을 걷는 수행자’라는 뜻인데 어떤 의미인가?
모든 직업이 그렇듯 60세가 되면 본인 분야에 연륜을 가지게 된다. 70세가 넘으면 속세에 연연하지 않는 나이가 된다고 한다. 예전에 노자가 쓴 ‘도덕경’을 읽어본 적이 있는데 책 내용 중 인위적 행위를 지양하고 자연의 순리에 따라 살아야 한다는 무위사상이 인상 깊었다. 보허자무는 그런 부분을 반영한 춤이다. 나도 이제는 단순 춤을 춘다는 것보다 ‘뜻이 담긴 춤’, ‘관객이 보며 사유할 수 있는 춤’, ‘춤의 본질이 드러날 수 있는 몸짓’에 더 큰 관심이 간다. 내 춤은 곧 시간의 흔적이라 본다. 나 역시 춤을 통해 늘 변화해왔고 내 몸도 수행해왔다. 이번 창작무는 말 그대로 나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춤이다.
전통을 지키면서도 변화를 지향한다.
사실 전통을 전통답게 지키는 것이 더 어렵다. 전통 춤을 춘다는 건 단순 안무만을 전통적 방식으로 고수하는 게 전부가 아니다. 무용인이 입고 있는 옷, 춤을 추는 공간, 함께 연주되는 음악 모두가 전통적 통일을 갖춰야 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 내가 처음 춤을 시작했을 때 입었던 한복과 지금의 한복은 질감과 무게, 옷의 분위기 등 많은 부분이 다르다. 전통을 지킨다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전통도 자연스레 변할 수밖에 없다. 다만 전통의 원형을 지키는 노력은 세대를 막론하고 꼭 필요한 부분이다.
국수호 춤의 여정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여정의 끝이 있나?
다양한 우리 역사와 문화가 녹아든 소재를 춤으로 창작하고 싶다. 이미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등의 춤을 일부 발굴해 정리해놓은 게 있다. 고구려 춤의 경우 1985년부터 50회 정도 중국에 가 관련 자료를 구해 춤을 만들었다. 백제 춤은 일본의 오사카 등으로 이주한 백제 유민들의 흔적과 관련 자료를 활용했다. 신라춤, 가야춤도 유물과 자료를 조사해 구현해놓았다. 지금은 ‘아리랑 춤’을 만드는 중이다. 아리랑을 부르는 사람은 많지만 아리랑을 표현한 춤은 아직 없다. 또 조선왕조 내 있었던 비극들을 다룬 소재로 창작무를 선보일 계획도 있다. 내 나이가 많게 보일지 몰라도 아직 할 일은 많다. 전통 춤의 발전과 대중화를 위해 앞으로 더 열심히 무대에 설 계획이다.
백재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