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 평생학습대상 김영진 교수
‘공부벌레’, ‘악바리’…. 44년간 전기기술자로 산업 현장을 지켜온 김영진(61) 한국폴리텍대학 울산캠퍼스 전기과 산학겸임교수에겐 이런 별명이 늘 따라다녔다. 김 교수는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국가기술자격증을 따기 위해 공부했다. 잠자는 시간까지 줄여가며 매일 세 시간씩 책상에 앉아 공부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주경야독(晝耕夜讀)하며 전기기능사를 시작으로 전기산업기사, 전기기사, 전기공사기사 등의 자격을 차례로 취득했다.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기능인의 최고 단계로 꼽히는 기능장에 도전해 전기기능장 시험에서 수석 합격했고 2024년에는 대한민국명장(전기 직종)에 선정됐다. 전기뿐 아니라 통신·소방·기계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자격을 섭렵한 결과, 현재까지 보유한 공인기술자격증은 모두 104개에 이른다. ‘기술왕’이라는 별명도 자연스럽게 따라붙었다.
김 교수는 “자격증은 제 삶의 버팀목이자 경쟁력이었다”며 “힘든 순간마다 저와 가족을 지켜준 것도 자격증이었다”고 말했다. 가정형편이 어려웠던 그는 공업고등학교에 진학해 야간반 수업을 들으면서 낮에는 일을 했다. 그 와중에도 첫 자격증인 전기기능사를 취득했다. 졸업하자마자 현대중공업 조선사업본부에 입사했다. 자격증 덕이었다. 입사 6년째 조선업계 불황으로 구조조정이 단행됐지만 전기기능사 자격증 덕분에 엔진사업본부로 옮겨 새로운 일을 배울 수 있었다. 이후에도 차곡차곡 늘어난 자격증은 그의 경력을 지탱하는 힘이 됐고 50대 후반에도 비교적 수월하게 재취업에 성공할 수 있었다. 그는 현재 배터리 분야 중소기업인 배터리솔루션즈에서 기술이사로 일하고 있다.
공부를 멈추지 않은 대가는 큰 상으로 돌아왔다. 2025년 10월 1일 교육부와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이 주최·주관한 ‘제22회 대한민국 평생학습대상’에서 개인 부문 대상(국무총리상)을 받았다. 대한민국 평생학습대상은 평생학습의 중요성에 대한 국민 인식을 제고하고 지속적인 학습 참여를 촉진하기 위해 생활 속 평생학습을 실천·운영한 개인과 기관·단체에 수여하는 상이다. 교육부는 “가정형편이 어려워 야간 공업고교 졸업 후 바로 직장 생활을 시작했으나 산업 현장에서 개인의 역량과 경쟁력 향상을 위해 꾸준히 학습에 매진한 결과 대한민국 명장(전기 직종)에 올랐다”며 “특히 고교생 직업·진로 멘토링 및 장애인 시설 봉사 등 지역사회 나눔을 실천하고 산학겸임교수로 재직하며 후진 양성에 기여한 점이 높이 평가됐다”고 밝혔다.
이제 그의 관심은 개인의 성취를 넘어 자신이 쌓아온 경험과 기술을 다음 세대에 전하는 데로 향하고 있다. 그는 “제가 가진 기술을 후배들에게 전수할 때 가장 큰 보람과 사명을 느낀다”며 “산업 현장에서 배우고 익힌 전기 실무기술을 교육하는 데 매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후진 양성을 위해 그가 집필·발간한 전기기술 분야 전문 서적만 19권에 달한다. 무엇보다 자격증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는 “공장 자동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며 “단순한 기술만으로는 설 자리가 줄어들 수 있지만 자격증을 갖춘 숙련 기술자의 경쟁력은 오히려 더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기술을 제대로 익히고 자격증으로 증명해 두면 정년 없이 오래 일할 수 있는 최고의 무기가 된다”는 것이 그의 믿음이다.
중학생 시절부터 전기기술자를 꿈꿨다고.
1978년 중학교 2학년 때였다. 내가 살던 곳은 경북 의성읍에서도 4㎞가량 떨어진 곳으로 20가구 남짓 모여 사는 산골 오지마을이었다. 그해 처음 전기가 들어왔다. 밤마다 호롱불에 의지하던 마을에 형광등 불빛이 켜졌다. 그때 본 불빛은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집에 찾아온 전기기술자가 제 눈엔 정말 대단해보였다. 그 일을 계기로 전기기술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1979년 대구에 있는 영남공고 전기과 야간과정에 진학해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공부를 했다. 이곳에서 내 인생 첫 번째 자격증인 전기기능사를 취득했다.
자격증 덕에 고교 졸업 전에 대기업에 입사했다.
1982년 1월 고등학교 졸업을 한 달 앞두고 열아홉 살에 현대중공업 조선사업본부에 들어갔다. 전기기능사 자격증 덕분에 기간산업체 병역특례 혜택을 받으면서 취업할 수 있었다. 처음 맡은 업무는 선박 전선 설치 공사였다. 40m 높이에서 용접 가스와 먼지를 견디며 작업해야 했다. 여름에는 더위, 겨울에는 추위와 싸워야 했다. 새벽 6시에 출근해 밤 9시까지 일하는 날도 적지 않았다. 정말 고된 일이었다. 그때 나를 버티게 한 건 수만 명이 다니는 대기업 직원이라는 자부심과 먹고살아야 한다는 절박함이었다. 약 30척의 배를 만들며 몸으로 전기 공사를 배웠다.
구조조정에도 살아남았다.
입사 6년이 되던 해 조선업계에 불황이 닥쳤다. 조선사업본부가 구조조정을 단행하면서 많은 직원이 회사를 떠나야 했다. 나는 전기기능사 자격증을 보유한 덕에 살아남아 엔진사업본부로 발령받았다. 전기기능사 자격증 보유자에 한해 전출을 받아줬기 때문이다. 엔진사업본부에선 ‘전기설비 유지보수’라는 새로운 업무를 맡았다. 새로 배워야 할 기술이 많았고 이미 그곳에서 일하던 경력자들을 따라잡기엔 역부족이었다. 자연스럽게 사수의 공구통을 들고 다니거나 손전등을 비춰주는 보조 역할을 해야 했다. 자존심이 상했다. 이 사람들을 따라잡으려면 전기기술 이론부터 다시 공부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더 높은 단계의 국가기술자격증인 전기공사산업기사를 취득하기로 했다.
공부할 시간이 부족했을 텐데.
주경야독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무엇보다 고졸인 내게 전문대학 수준의 산업기사 공부는 분량도 내용도 쉽지 않았다. 그래도 끈기로 승부를 보기로 했다. 매일 세 시간씩 여섯 달을 꾸준히 공부한 끝에 합격의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이후로도 자격증 취득을 멈추지 않았다.
전기공사산업기사에 이어 전기산업기사에 합격하고 본격적으로 자격증 취득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물론 공부가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자격증을 따는 과정 자체가 흥미로웠고 배운 이론이 현장에 그대로 적용되는 점이 큰 동기부여가 됐다. 이후 전기기사와 전기공사기사 등을 차례로 취득하며 스스로 단련해 나갔다. 그렇게 도전을 이어간 끝에 1999년 전기 분야 기능인의 최고 단계로 꼽히는 전기기능장을 취득했다. 그것도 수석 합격이었다. 고졸인 내가 어렵기로 소문난 기능장 시험에서 기능대학 출신자들을 제치고 거둔 성과라 더욱 뜻깊었다. 이 일로 매스컴에 화제의 인물로 소개됐고 회사에서 특별 포상과 해외연수 기회도 주었다.

교육·훈련 전문가로도 커리어를 쌓았다.
2001년 현대중공업 사내 기술교육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약 20년간 정들었던 생산 현장을 떠나기 아쉬웠지만 제가 가진 지식과 기술을 전수하는 것도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전기 분야 직업훈련교사로 20여 년간 3000명이 넘는 기술연수생을 배출했다. 교육훈련용 교재도 직접 집필했다. 2011년 9월에는 직업능력개발 최우수유공자에 선정돼 ‘동탑산업훈장’을 수상하는 영예도 안았다. 그 사이에도 자격증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기술지도사, 전기기기기능장, 전자기기기능장을 연이어 취득했다. 이후 32개 직종의 직업능력개발 훈련교사 자격증과 전기감리원 특급, 소방감리원 특급 등의 전문기술자격증도 땄다. 열여덟에 첫 자격증을 딴 순간부터 지금까지 전기, 전자, 소방, 통신, 기계 등의 분야에서 44년에 걸쳐 총 104개의 자격증을 취득했다.
가장 힘들게 취득한 자격증은?
전자기기기능장이 가장 힘들었다. 네 번 떨어지고 다섯 번째 도전 만에 합격했다. 실기시험이 1년에 한 번뿐이라 자격증 하나 따는 데 꼬박 5년이 걸린 셈이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2024년에는 대한민국 명장(전기 직종)으로 선정됐다. 경쟁률이 17대 1에 달했다. 국내 최고의 전기기술자로 인정받고 싶다는 목표가 컸던 만큼 더 뿌듯한 순간이었다.
뒤늦게 학위도 취득했다.
2002년 불혹의 나이에 학점은행제를 통해 전기공학사 학위를 받았다. 당시 취득한 자격증들이 전공 학점을 인정받는 데 큰 도움이 됐다. 2020년에는 울산대학교 산업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시작해 2022년 2월 공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학생들을 따라가는 게 쉽지 않았지만 뒤늦게라도 학위를 취득해서 보람 있고 좋았다.
지칠 때는 없었나?
나도 사람이기 때문에 쉬고 싶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노력한 만큼 더 나은 내일이 올 거라고 믿었다. ‘우공이산(愚公移山)’이란 고사성어가 있지 않나.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꾸준하고 끈질기게 노력하면 반드시 이룰 수 있다고 했다. 단 5분의 시간도 헛되게 보내고 싶지 않았다. 그 시간이 모여 지금의 내가 있다고 생각한다. 자격증이 그 시간과 노력의 증거가 아닐까.
이런 모습은 가족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고.
졸음과 싸우며 일과 공부를 병행하는 모습이 가족들에게도 동기부여가 된 것 같다. 아내는 교육 분야 자격증을 8개 취득했다. 37세 아들도 내 뒤를 이어 전기기술자로 근무하고 있다. 아들도 전기기사, 가스기능장 등 10여 개의 자격증을 가지고 있다.
자격증으로 재취업도 해냈다.
2020년 회사의 불황으로 명예퇴직을 했다. 스스로도 두려웠고 주변의 우려도 컸다. 하지만 퇴직 후 불과 2주 만에 배터리 분야 중소기업 재취업에 성공했다. 울산폴리텍대학에서 산학겸임교수로도 활동하게 됐다. 자격증이 아니었다면 이런 기회는 쉽게 오지 않았을 것이다. 자격증은 평생 내 버팀목이었고 또 경쟁력이었다.
자격증이 필요한 이유를 알겠다.
학생들에게 늘 강조한다. 지금이라도 자격증을 하나라도 더 취득하라고. 예전에는 학생들이 눈에 불을 켜고 기술을 배우려 했지만 요즘에는 그런 절박함이 많이 사라진 것 같다. 기술을 제대로 익혀두면 정년 없이 오래 일할 수 있는 최고의 무기가 된다. 결국 내가 먹고사는 도구가 되는 셈이다. 하루 3시간만 투자해도 된다. 꾸준히 시간을 쌓아가면 반드시 성과로 이어진다. 새해에 자격증 취득을 목표로 하는 분들께 꼭 얘기해주고 싶다. 끊임없이 노력하면 반드시 이뤄집니다!
강정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