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월 5일부터 8일까지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2025 로보월드’ 전시회. 국내 최대 규모의 로봇 전시회라는 이름에 걸맞게 제조·물류·의료·국방·생활·서비스 등 전 산업 분야를 아우르는 최신 로봇과 인공지능(AI) 기술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었다. 올해는 특히 휴머노이드·AI 제조 로봇·자율주행 로봇·케어 로봇 등 미래 기술을 대표하는 분야가 큰 주목을 받았다.
‘아이오크롭스’의 온실용 자율주행 로봇 ‘헤르마이(HERMAI)’도 그중 하나다. 아이오크롭스는 AI·로봇 기반 스마트팜 원격 솔루션을 개발하는 애그테크(AgTech·첨단농업기술) 기업이다. 포항공대 기계공학과에서 학부와 석사를 마치고 대학원에서 로봇공학을 전공한 조진형 대표가 2018년 창업했다. 헤르마이는 온실 내 병해충이 발생하기 전 미리 살피고 관리하는 예찰 및 방제, 수확 등의 농작업을 수행한다. 스마트팜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부스에서 생육 환경을 살피고 오이를 수확하기 위해 스스로 움직이는 로봇은 로보월드를 찾은 관람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 로봇이 주목받은 이유는 또 있다. 단순히 프로그래밍된 동작을 반복하는 게 아니라 주변 환경을 인식하고 생각한 뒤 물리적인 작업을 수행하는 ‘피지컬 AI(Physical AI)’ 기술이 적용됐기 때문이다. 피지컬 AI 기술은 AI와 로봇 등 첨단기술을 기반으로 의사를 결정해 농작업을 최적화·정밀화·자동화해 농업 생산성을 극대화하고 노동력 부족을 보완하는 등 농업 구조를 혁신하는 핵심 기술로 평가받고 있다. 정부가 목표로 하는 ‘AI 3대 강국 도약’을 위한 핵심 동력으로서 국가 전략 기술로 집중 육성되고 있는 분야이기도 하다.
아이오크롭스는 이 로봇으로 농림축산식품부가 주최하고 한국농업기술진흥원이 주관한 ‘2025 농식품 창업콘테스트’에서 대상(대통령상)을 수상했다. 농산업 분야 국내 최대 규모의 창업 경진대회인 농식품 창업콘테스트에는 올해 570개 팀이 지원했다. 무려 57대 1의 높은 경쟁률을 뚫고 본선에 오른 후 대상을 수상, 최고의 혁신성을 인정받은 것이다. 조 대표는 “피지컬 AI 기술을 한 단계 더 발전시켜 완전 무인화 농장을 만드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농식품 창업콘테스트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2018년 창업 이후 데이터와 AI를 활용해 스마트팜을 최적화된 방식으로 운영·관리할 수 있는 솔루션을 개발·보급해왔다. 또한 직접 스마트팜을 운영하며 해당 기술을 현장에 적용해 오이, 토마토, 파프리카를 생산하고 있다. 이를 통해 농업 생산성을 체계적으로 관리·예측하고 작물 재배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를 해결해왔다. 농작업 로봇의 상용화를 통해 농촌의 고질적 문제인 노동력 부족을 해결하겠다는 출사표가 많은 공감을 얻은 것 같다.
구체적으로 어떤 사업을 하고 있나?
크게 두 가지 분야로 나뉜다. 첫 번째는 데이터 수집·분석·처방부터 실행까지 농사 전 주기를 아우르는 솔루션이다. 식물이 흡수·배출하는 물의 양을 정밀하게 측정하는 사물인터넷(IoT) 센서를 활용해 관수와 환경 데이터를 분석하고 ‘물을 더 줘라’, ‘온도를 조정하라’와 같은 재배 처방을 제공한다. 또한 작업량, 동선을 실시간으로 파악하는 인력 관리 솔루션도 운영 중이다. 북미 대규모 농장에서 호응을 얻어 첫 수출을 달성했다. 두 번째는 농작업 로봇 개발이다. 예찰·방제·수확 로봇이 대표적이다. 예찰 로봇은 온실을 자율주행하며 작물 이미지를 수집하고 AI가 이를 분석해 열매 수 등 작물 상태를 정확한 수치로 보여준다. 방제 로봇은 사람이 직접 농약을 뿌릴 때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줄이고 농약을 더 고르게 살포할 수 있도록 돕는다. 수확 로봇은 일손 부족 문제를 해결하며 생산성을 높여준다.
기술만 개발하는 게 아니라 농사도 짓는다.
2021년 경남 밀양에서 1만㎡ 규모의 농장에서 파프리카 농사를 시작해 현재는 충북 진천, 경북 상주, 충남 보령 등 전국에 6만 9000㎡ 규모의 스마트팜을 운영하고 있다. 기술 개발에 그치지 않고 우리의 기술을 모두 농장에 적용해 오이, 토마토, 파프리카 등을 재배하고 판매도 한다.
스마트팜을 직접 운영하는 이유는?
수익모델이 되기 때문이다. 농장 운영만으로도 안정적인 수익을 내고 있다. 또 다른 이유는 기술 실증을 위해서다. ‘이 솔루션을 쓰면 생산성이 이렇게 높아진다’는 점을 가장 확실하게 보여주는 방법은 우리가 직접 재배해 얻은 실제 결과를 제시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자체 농장을 운영하면 데이터 수집과 활용이 용이하고 개발·적용·피드백이 한 공간에서 빠르게 이뤄져 기술 개발 속도도 크게 높일 수 있다. 농업 현장을 잘 모르는 기업들이 겪는 시행착오 역시 최소화할 수 있다. 생산과 기술 역량을 모두 갖춘 ‘진짜 농업 기업’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아이오크롭스가 운영하는 스마트팜만의 특징은?
소수 인력으로 안정적인 운영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실제로 농장에 상주하는 관리자는 한두 명 정도며 대부분 경력이 많지 않은 청년 초보 농부들이다. 우리 농장은 스마트팜 기술을 기반으로 재배 과정을 매뉴얼화·시스템화해뒀기 때문에 농사 경험이 많지 않아도 운영이 가능하다. 초보 농부도 10년 이상 경력을 가진 농장주 수준의 생산성을 충분히 구현할 수 있다. 기술의 실효성을 증명하는 가장 강력한 증거다.
농업과 농촌 문제에 관심이 많았나? 사업을 시작한 계기는?
사실 농사와는 거리가 멀었다. 부모님도 농사를 짓지 않았고 전공도 기계공학과 로봇공학이었다. 하지만 2016년 대학원 시절 기숙사에서 키우던 화분이 시든 것을 보고 직접 수분 센서와 발광다이오드(LED) 조명을 결합한 ‘스마트 화분’을 만든 것이 출발점이었다. 그때부터 농업에 기술을 접목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기술 기반 인재가 부족한 분야라는 점에서 창업 기회가 있다고 판단했다. 농업을 직접 배워야겠다 생각하고 대학원을 자퇴한 뒤 충남 천안의 토마토 농장에서 3개월간 재배 기술을 익혔다. 이어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 국내 실정에 맞는 스마트팜을 연구하며 1000㎡(약 300평) 규모 농장에서 토마토를 재배했다. KIST 연구원 생활을 마치고 2018년 회사를 창업했다.
농사가 힘들진 않았나?
몸과 머리를 동시에 쓰는 경험이 즐거웠다. 새벽부터 저녁까지 직접 일하며 농부의 마음도 이해할 수 있었다. 학교를 다니면서 바로 창업했다면 결코 얻을 수 없었던 매우 소중한 경험이었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개발자를 비롯한 우리 회사의 모든 직원은 농장에서 직접 근무하며 현장 경험을 쌓도록 하고 있다. 이를 통해 기술과 현장을 함께 이해하고 문제 해결 능력을 더욱 키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경험 덕분에 사업 초기부터 좋은 성과를 냈다.
2020년 네덜란드에서 열린 ‘세계농업인공지능대회’에서 3위를 수상하며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한국 디지로그팀에서 AI 기술을 담당하며 6개월에 걸쳐 네덜란드 농장에 심은 방울토마토를 서울에서 원격 재배하는 방식으로 사람보다 높은 생산성을 거뒀다.
아이오크롭스의 기술을 도입한 농가도 많다.
현재까지 400여 농가와 전국의 농업기술센터 및 스마트팜 혁신밸리 등에 스마트팜 기술을 보급해왔다. 대표적인 제품은 관수 솔루션으로 물 주는 과정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시스템이다. 이 솔루션을 사용하면 물 주는 양의 절반 수준으로도 충분히 효과를 볼 수 있다. 기존에는 경험과 감에 의존해 물 관리를 직관적으로 해야 했지만 이 솔루션은 식물이 흡수하고 배출하는 물의 양을 저울로 측정해 정량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해준다.
피지컬 AI 기술을 적용한 로봇도 시장에 내놨다.
2024년 예찰 로봇을 처음 출시했고 올해 11월에는 방제와 운반 모델을 시장에 선보였다. 예찰 로봇은 AI가 작물 생육 상태를 분석하고 열매가 얼마나 달릴지 계획한다. 또 농작업 완성도를 진단해 보완이 필요한 구역도 알려준다. 방제 로봇은 농약 살포와 해충 모니터링을 자동화한다. 발생 밀도에 따라 집중 방제 구역을 스스로 정한다. 작업 기록과 방제 장부는 자동으로 디지털 저장돼 농약 관리가 편리해진다. 운반 로봇은 수확물 운반과 실시간 수확량 분석이 가능하다. 이를 통해 농작업 시간이 10% 수준으로 줄어든다. 투입하는 인력도 10명에서 1명으로 줄일 수 있다. 현재 오이를 수확하는 로봇을 개발하고 있다. 오이는 재배가 힘들고 성장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사람이 매일 수확 작업을 해야 한다. 노동력이 많이 투입되는 작물일수록 로봇 대체 효과가 크다. 2026년 우리 농장에서 먼저 활용한 뒤 상용화가 가능해지면 2027년부터 판매할 계획이다.
세계시장 진출에도 나섰다.
국내 스마트팜 시장은 3000~3500헥타르(약 900만~1050만 평) 규모로 추정된다. 대부분 1000평 미만의 소규모 농가로 가족 단위의 영세기업이 주를 이룬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지원 속에 스마트팜 보급은 꾸준히 늘고 있지만 시장 자체는 여전히 영세하다. 이 때문에 국내시장만으로는 기술 상용화와 사업 확장이 제한적이다. 규모가 큰 세계시장 진출을 목표로 하는 이유다. 로봇 사업을 시작한 것도 글로벌 경쟁력을 위해서다. 북미 진출 4개월 만에 대형 온실 두 곳에 솔루션을 제공하는 등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더 많은 곳에 우리 기술을 알리고 싶다.
앞으로의 목표는?
한때는 ‘테슬라’처럼 빠르게 성장하는 기업이 되고 싶었다. 농사를 지어보니 알겠더라. 농부가 땅을 고르고 씨앗을 뿌리고 물을 주고 그것이 자라 열매를 맺기까지 천천히 기다리며 결과를 기다려야 한다. 이제는 지속가능한, ‘롱런’하는 기업을 꿈꾼다. 무엇보다 농민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표다.
강정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