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농약창고에서 오케스트라 선율이 “무대·관객 한걸음 호흡도 음악이 됩니다”

바드챔버하우스 알프홀 조연호 대표
서울에서 차로 두 시간, 충남 공주 시내에서도 30분가량 더 달려야 닿는 공주시 유구읍은 인구 6700여 명의 작은 농촌 마을이다. 논밭과 비닐하우스가 이어지는 마을에 주말이면 낯선 풍경이 펼쳐진다. 농약창고를 개조한 공연장으로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고 첼로와 바이올린 선율이 논두렁 너머로 울려 퍼진다.
인구감소와 고령화로 활력을 잃어가던 마을에 변화의 불씨를 지핀 사람은 지휘자 조연호 대표다. 헝가리 리스트음악원과 미국 뉴욕주 바드칼리지음악원에서 수학하며 세계 무대를 누비던 그는 코로나19를 계기로 유구읍에 정착했다. “클래식을 접하기 어려운 곳일수록 음악이 더 필요하다”는 믿음으로 농약창고를 클래식 공연장 ‘바드챔버하우스 알프홀’로 변신시켰다.
“클래식 공연을 하면 몇 분이나 오실까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정말 많은 분이 모였어요. 도시와 달리 이곳에는 첼로나 바이올린 같은 악기 소리를 직접 들어본 적이 없는 분이 많았는데 공연을 신기해하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며 이곳에서 클래식음악을 알리는 게 정말 의미 있는 일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모두가 도시를 향할 때 농촌으로 들어가 클래식으로 마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는 조 대표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작은 농촌 마을에 클래식 공연장을 열겠다고 마음먹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2021년 코로나19가 한창이던 때 뉴욕에서 급히 귀국했습니다. 처가가 있는 유구에 잠시 머물다 다시 미국으로 돌아갈 생각이었죠. 그런데 이곳에서 지내며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문화예술은 당연히 도시에서 해야 한다고 여겼는데 주민들 가운데 오케스트라 공연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분이 많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때 ‘클래식을 한 번도 접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음악을 전하는 일도 지휘자의 역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대 위에서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것뿐 아니라 음악이 닿지 않는 곳까지 감동을 전하는 일 말입니다. 그래서 유구전통시장 옆 낡은 연탄가게 건물을 빌려 공연장으로 꾸몄고 2021년 12월 첫 공연을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곳이 ‘바드카페 챔버홀’이었죠. 첫 공연은 어땠나요.
바이올리니스트 김민희 씨와 함께했습니다. 솔직히 관객이 몇 분이나 오실지 걱정이 컸습니다. 연주자에게도 미리 양해를 구했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예상보다 훨씬 많은 분이 찾아오셨습니다. 66㎡(20평) 남짓한 작은 공연장이 발 디딜 틈 없이 가득 찼습니다. 원래 오후 한 차례만 준비했는데 반응이 좋아 저녁에 한 차례 더 열었습니다.
주민들 반응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공간이 워낙 좁다 보니 연주자와 관객이 거의 마주 앉아 공연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특별한 호흡이 만들어졌습니다. 무엇보다 바이올린 소리를 처음으로 직접 접한 주민들이 신기해하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며 ‘이곳에서 클래식을 알리는 일이 정말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이구나’ 하는 확신을 갖게 됐습니다.
이후 농약창고를 리모델링해 ‘바드챔버하우스 알프홀’을 만들었습니다.
‘바드카페 챔버홀’에서 공연을 이어가면서 공간의 한계를 많이 느꼈습니다. 더 많은 분이 편안하게 공연을 즐기고 연주자도 더 좋은 공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2024년 인근 농약창고를 리모델링해 클래식 전문 공연장인 ‘바드챔버하우스 알프홀’을 만들었습니다.
공연장을 만들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음향입니다. 공연장을 설계하면서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이 바이올린의 울림통이었습니다. 벽돌이나 콘크리트 대신 목재를 사용한 것도 공연장 자체가 악기의 울림통처럼 하나의 공명체가 되길 바랐기 때문입니다. 소리가 자연스럽게 퍼지고 순환하려면 공간의 형태가 중요하다고 생각해 지붕은 최대한 45도에 가깝게 설계했고 천장 높이도 7m까지 확보했습니다. 그 결과 어느 좌석에 앉더라도 비슷한 울림을 느낄 수 있고 연주자도 자신의 소리를 충분히 들으며 안정적으로 연주할 수 있는 공간이 됐습니다.
무대가 없는 점도 인상적입니다.
처음부터 무대를 만들 생각이 없었습니다. 관객과 연주자를 구분하기보다 같은 공간에서 음악을 함께 경험하는 공연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공연에 따라서는 연주자가 한가운데에 서고 관객이 둘러앉기도 합니다. 거리가 가까울수록 서로의 호흡을 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고 음악도 더욱 깊이 전달된다고 생각합니다. 음악은 보여주는 예술이 아니라 함께 경험하는 예술이기 때문입니다.
주로 어떤 공연이 열리나요.
첼로, 바이올린, 피아노 상주 연주자들의 정기 연주회와 제가 이끄는 오케스트라 공연을 함께 선보이고 있습니다. 관객 취향이나 티켓 판매보다 연주자가 정말 연주하고 싶은 음악을 들려주는 데 더 큰 의미를 두고 있습니다. 낯설고 어려울 수 있지만 진심이 담긴 음악은 결국 관객에게 더 깊은 울림을 전한다고 믿습니다.

오케스트라도 직접 창단했습니다.
유구에 와서 가장 놀랐던 건 많은 주민이 오케스트라 공연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공연장이 있어도 생업 때문에 찾기 어려운 분이 많았고요. 그래서 ‘오케스트라가 주민을 찾아가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특히 아이들에게 다양한 악기 소리를 들려주고 싶었어요. 음악가가 되지 않더라도 어릴 때 경험한 음악은 감수성과 다양성을 키우는 자산이 된다고 믿습니다. 뜻을 함께한 지역 음악가들이 하나둘 모였고 2025년에는 약 35명의 단원으로 구성된 오케스트라를 창단했습니다.
젊은 음악가를 위한 ‘무료 대관 프로젝트’도 운영하고 있다고요.
상업성이나 흥행 가능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무대에 서기 어려운 젊은 음악가가 많습니다. 그들에게 무대를 마련해주고 더 많은 관객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고 싶었습니다.
공연장을 운영하는 데 현실적인 어려움도 적지 않을 것 같습니다.
사실 공연장 운영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카페 운영과 객원 지휘 활동 등의 수익으로 공연을 이어가고 있어요. 안정적인 운영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지방자치단체와 정부 지원 프로그램이 있다면 참여하고 싶습니다.
클래식 공연 외에 인문학 강연도 열고 있습니다.
공연장을 단순히 음악을 듣는 공간이 아니라 예술과 인문학이 함께하는 복합문화공간으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공연장 이름인 알프(ALPH)도 예술(Art), 문학(Literature), 철학(Philosophy), 역사(History)의 머리글자를 딴 것입니다. 음악은 결국 인간을 이야기하는 예술입니다. 그래서 음악을 더 깊이 이해하려면 인문학도 함께해야 합니다. 현재 매달 인문학 강연을 열고 있고 앞으로는 인문학 아카데미를 정기적으로 운영할 계획입니다. 공연과 강연을 결합한 렉처(Lecture) 콘서트도 만들고 싶어요.
주요 관객층은 어떻게 됩니까.
처음에는 지역주민이 대부분이었어요. 지금은 절반 이상이 다른 지역에서 찾아옵니다. 물론 주민들도 꾸준히 오시지만 입소문이 나면서 멀리서 일부러 공연을 보러 오는 분이 많이 늘었습니다.
대표님에게 공연장은 어떤 의미인가요.
흥행을 위해 만든 공연장이 아닙니다. 문화예술의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은 곳에 작은 공연장 하나가 들어선다면 그 자체가 새로운 변화의 시작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주목하지 않았던 곳이기에 오히려 이 공연장이 작은 별처럼 더 선명하게 빛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쉽지 않은 길인데도 이 일을 계속 이어가는 힘은 무엇입니까.
이 공간의 가치를 믿어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기꺼이 무대에 서는 연주자, 먼 길을 마다하지 않는 관객, 함께 뜻을 모아주는 단원들이 큰 힘입니다. 저는 지휘자가 단지 오케스트라를 이끄는 사람이 아니라 음악으로 사람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끄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곳에서의 도전은 제가 믿는 가치를 실천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앞으로 알프홀이 어떤 공간이 되길 바라나요.
공연장을 넘어 문화예술 연구소 같은 공간이 됐으면 합니다. 음악과 인문학이 함께 어우러지고 새로운 문화 실험이 이어지는 곳 말입니다. 인공지능(AI) 시대일수록 인간만이 가진 감성과 창의성이 더욱 중요해질 것입니다. 음악을 통해 사람들에게 그런 가치를 전하는 지휘자이자 교육자로 오래 남고 싶습니다.
강정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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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