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어르신들에게 추억을 보여드립니다

“저는 예전에 다른 극장을 운영하면서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 지금 비록 돈을 벌지는 못하지만 어르신 관객들이 즐거워하는데서 얻는 삶의 가치가 더 크기 때문에 힘든 줄 모르고 여기까지 달려왔습니다.”
서울 종로 낙원상가 4층에 있는 ‘허리우드클래식’ 김은주(38) 대표의 말이다. 허리우드클래식은 실버극장으로 극장 가운데 2009년 최초로 고용노동부로부터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았다. 정식 법인명은 ‘추억을 파는 극장’.
김 대표는 지난 7월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사회적기업 박람회장에서 매일 무료 영화 상영회를 가져 방문객들로부터 호평을 받기도 했다.
낙원상가에 있는 허리우드클래식을 찾았다. 상가 건물이 워낙 낡고 오래 되었기 때문에 극장도 조금 칙칙하지 않겠냐는 선입견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극장 로비에 들어서자 깨끗하고 쾌적한 분위기가 여느 대형 복합상영관 못지않았다. 로비 가운데는 노인 관객들이 앉아 쉬면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테이블이 여러 개 갖춰져 있었다.


허리우드클래식의 전신은 1967년 개관한 ‘허리우드극장’이다. 1990년대까지 대한극장, 서울극장, 단성사, 피카디리 등과 함께 서울 시내 10위권의 개봉관으로 명성을 떨쳤다. 하지만 1990년대 중반 이후 메가박스나 CGV 같은 대형 복합상영관이 등장하면서 기존 극장들은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2008년 허리우드극장을 장기 임차한 김은주 대표는 이 극장을 실버영화관으로 바꾸어 새로 생긴 대형 극장들과 차별화를 시도했다. 현재 55세 이상 된 관람객은 편당 2천원에 영화를 볼 수 있다.
기자가 이 극장을 찾았을 때 윤석화 주연의 <봄,눈>(2011년작)이 상영 중이었다.
영화관을 찾은 김태석(83) 할아버지는 “<봄,눈>은 고전영화는 아니지만 젊은 시절 좋아했던 배우 윤석화가 주인공이라기에 영화를 보러 강동구에서 일부러 찾아왔다”고 말했다. 김 할아버지는 “1주일마다 새로운 영화를 개봉하기 때문에 매주 한 번씩 극장을 찾는다”며 “우리 세대에게 요즘 영화가 너무 요란하고 생리에 맞지 않아 보기가 어렵고, 노인들이 갈데도 별로 없는데 이렇게 옛날 영화를 틀어 주는 곳이 있어서 정말 기쁘다”고 말했다.
김은주 대표는 “영화를 보기 위해 춘천, 광주, 부산 같은 먼 지방에서 일부러 오는 어르신 관객도 많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1주일에 4천명 넘는 어르신이 영화관을 찾습니다. <사운드오브뮤직> <닥터지바고> <빠삐용> 같은 인기 좋은 고전물을 상영할 때는 3백석 좌석이 꽉꽉 들어찹니다. 주말은 거의 매진이에요.
지난해에 누적관객 수가 15만명이었고, 올해는 20만명을 예상합니다. 관객은 70대가 제일 많고, 그다음이 50~60대입니다. 어르신들이 향수를 느끼고 편하게 볼 수 있도록 포스터도 옛날 것을 사용하고 극장 분위기도 옛날식으로 많이 꾸며 놓았습니다.”


현재 허리우드클래식은 재정난에 빠져 있다. 김 대표는 “영화 판권, 임차료, 직원급여 등을 제하고 나면 극장 운영은 매월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며 “SK케미칼에서 매월 지원해 주는 1천만원으로 겨우 운영해 나간다”고 말했다.
허리우드클래식은 50년 이상 된 일부 작품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영화는 판권을 주고 사오고 있다. 한국영화는 판권이 편당 1백만~2백만원 선이지만, <벤허> <닥터 지바고> <미션> 같은 인기 좋은 외화는 3천만~4천만원 정도씩의 비용이 소요된다고 한다.
김 대표는 사회적기업으로서 소외된 노인들을 ‘문화의 주체’로 끌어올렸다는 데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허리우드클래식에서 일하는 유급직원은 14명으로 대부분 노인들이다. 사회적기업의 역할에 충실하고 노인들에게 일자리를 주기 위해 일부러 그렇게 채용했다는 것이다. 김대표의 설명이다.
“제가 경영이 어려운데도 버틸 수 있는 힘은 절대적인 지지를 보내 주는 어르신 관객 때문입니다. 현재 우리나라는 어르신들을 위해 제작되는 문화 콘텐츠가 거의 없습니다. 우리 허리우드클래식은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따로 광고를 하지 않는데도 입소문만으로 손님이 꽉꽉 찬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큽니다.”
김 대표의 실버영화관 운영에 대한 철학은 확고하다. 그는 “고전영화가 노인들의 스트레스와 외로움을 줄이고 새로운 사람들과 소통할 기회를 주어 노인들의 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궁극적으로 의료비 감소에도 기여한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앞으로 노래교실을 만들어 허리우드클래식을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노인을 위한 다목적 문화공간으로 탈바꿈시키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다.
“부모님을 모시고 오는 젊은이들에게도 관람료를 2천원만 받습니다. 2천원으로 세대가 서로 소통할 수 있다면 정말 저비용 고효율 복지정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도 초고령화 사회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어르신들을 위한 문화사업에 조금만 투자하면 그 결과는 기대 이상으로 크게 나타납니다. 극장이 계속될 수 있도록 주변에서 관심을 가져 주셨으면 합니다.”
글·이상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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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