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제목·저자 가리고 생일만 보고 고른다? ‘읽을마음’이면 충분해요!

경기 광명시 ‘읽을마음’
주소 경기도 광명시 광명로 893번길 13-1
운영시간 화~토요일 12~20시(매주 일·월요일 휴무)
인스타그램 @i_g_m_u_
전화 02-2612-9188

책 제목도, 저자도 알 수 없다. 출판사 이름에 기대볼까 싶지만 이마저도 안갯속이다. 대신 책 표지에 ‘○월 ○일’이라는 숫자만 큼지막하게 적혀 있다. 책을 쓴 작가의 생일만 알려주고 책을 고르게 하는 이른바 ‘생일책’이다.
책장 앞에서 망설이던 손이 자연스레 내 생일과 같은 날짜가 적힌 책으로 향한다.
‘6월 2일 - 모든 부모는 가끔 집 앞에 차를 세워 놓고 5분쯤 그 안에 가만히 앉아 있을 거다.’
‘10월 18일 - 사진은 싸우지도 않고 승리를 거두는 거짓말이다.’
날짜와 함께 쓰인 몇 마디 문장에 가슴이 저릿해진다. 곧장 책날개를 펼친다.
“일단 나와 생일이 같은 작가의 책이라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끌리거든요. 그런데 생일 아래 적힌 문구까지 와닿으면 ‘이건 나를 위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죠. 몇 줄의 문장만 보고 눈물을 흘리는 분도 많습니다.” ‘읽을마음’ 이한별 대표의 설명이다.


8년간 4600여 권이 ‘생일책’으로
이 대표가 경기도 광명시에 책방을 연 것은 8년 전이다. 책방을 시작할 때부터 생일책을 기획했다. 출판사 마케터 출신으로 누구보다 책 한 권 팔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았기에 책을 ‘그냥’ 팔아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일본 도쿄 마루노우치의 서점 ‘리딩스타일’에서 선보인 ‘생일문고’에서 영감을 얻었다. 책 표지를 완전히 가리고 작가의 생일과 책 속 문장 몇 줄, 10여 개의 해시태그만 보여줬다. 독자는 책 제목도 저자도 모른 채 오직 날짜와 문장만 보고 책을 선택한다.
“생일에 스스로에게 주는 선물로 생일책을 사간 손님이 친구나 연인을 데리고 와 깜짝 선물을 하기도 해요. 특별한 날 그날의 날짜가 적힌 책을 사러 오는 분들도 있고요. 그렇게 발걸음이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10평(33㎡) 남짓한 ‘읽을마음’의 서가를 채우는 3000여 권의 책은 절반 이상이 생일책이다. 지금까지 이곳에서 탄생한 생일책은 총 4600여 권. 3200여 명의 작가가 쓴 책이 무지갯빛 포장지에 싸인 블라인드북(정보를 숨긴 책)으로 거듭났다. 책방에는 1년 365일 모든 날짜에 해당하는 생일책이 날짜순으로 놓여 있다. 한 날짜에 서너 권 이상의 서로 다른 책이 꽂혀 있기도 하다. 같은 생일이라도 끌리는 문장을 보고 책을 고르는 재미가 쏠쏠하다.
도서전이나 북페어 등의 행사에서도 ‘생일책’은 단연 인기 상품이다. 7월 전북 전주에서 열린 북페어 ‘전주책쾌’에서는 생일책 약 300권이 사전예약으로 조기 마감됐다.

‘내 취향 아닌데?’ 싶던 책에서 뜻밖의 재미를
이 대표의 하루는 작가의 생일을 검색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몇몇 유명 작가를 제외하면 생일이 공개되지 않은 경우가 많아 정보를 찾는 것부터 쉽지 않다. 소개할 책을 선정한 뒤 작가나 출판사에 직접 연락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는데 취지를 밝히면 긍정적인 반응이 대부분이다. 책방이 알려지면서 출판사에서 먼저 제안을 해오는 경우도 늘었다.
이 대표는 “생일책이라는 콘셉트를 내세우는 다른 서점들은 출간일을 포함하거나 며칠 날짜는 비어 있는 경우도 있는데 오직 작가의 생일만으로 365일을 모두 채운 곳은 읽을마음이 유일하다”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생일을 찾고, 책 속에서 문장을 발췌하고, 책의 크기를 일일이 측정해 새 표지를 만들고, 직접 포장하는 일까지. 생일책 한 권을 만드는 데는 적잖은 품이 든다. 혼자 운영하는 작은 동네책방에서 감당하기 쉽지 않은 일이지만 포장비는 따로 받지 않는다. 좋은 책을 한 권이라도 더 알리고 싶은 마음에서다. 특히 장르 가리지 않고 숨은 좋은 책을 고르는 데 공을 들인다. 잘 알려지지 않은 최인호 소설가의 작품을 묶은 ‘이상한 사람들’, 이정모 전 국립과천과학관장이 쓴 ‘찬란한 멸종’, 프랑스 아동문학작가 쥬느비에브 브리삭의 소설 ‘엄마의 크리스마스’ 등이 눈 밝은 책방지기의 선택을 받아 생일책이 됐다.
“최근엔 비건 레시피북을 생일책으로 만들었어요.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갖는 분야는 아니지만 비건이라는 주제는 생각해 볼 만한 가치가 충분하니까요. 알려지지 않은 좋은 책을 소개하는 건 책방지기의 의무라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생일책은 손님 자신도 몰랐던 취향을 찾아줄 수 있는 좋은 매개죠. 생일책을 펼쳤는데 마음에 안 들면 어떡하냐고요? 책방지기 욕 한번 하고 다시 고르러 오세요.(웃음)”
생일 맞은 작가가 ‘1일 책방지기’로
생일을 맞은 작가가 1일 책방지기가 되는 행사도 매달 열린다. 독특한 점은 작가가 직접 참여 신청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작가가 과연 먼저 나설까 싶지만 신청자가 넘쳐 걱정할 정도란다.
1일 책방지기가 된 작가는 책방 한쪽 서가를 자신이 좋아하는 책으로 꾸민다. 직접 책을 판매하고 저녁에는 생일파티를 겸한 북토크도 진행한다. 글쓰기가 ‘부캐(부캐릭터)’인 작가들은 메이크업 클래스나 조향 수업 등을 진행하기도 하는데 신청받기 무섭게 마감된다.
이날은 ‘어른들이 책 사줄게’ 행사도 함께 열린다. 손님들이 원하는 만큼 기부한 돈으로 청소년이 언제든 책방을 찾아 무료로 책을 구입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작가와 직접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청소년에게 더 많이 만들어주고 싶다는 책방지기의 마음에서 시작됐다.
“1일 책방지기로 온 작가분들이 직접 케이크와 와인을 사와 손님들과 나눠 먹기도 하고 북토크 뒤풀이에서 한턱 크게 내기도 해요. 자신이 쓴 작품을 좋아해주는 사람들과 생일을 보내니 작가들도 무척 좋아하시죠. 광명은 뚜렷한 목적이 없으면 찾아오기 어려운 곳인데 이런 이벤트를 통해 책방 나들이하며 낯선 동네에 방문해보는 경험도 뜻깊지 않을까요?”

골목 살린 동네책방… “‘광명의 성심당’ 될 것”
‘읽을마음’이 들어선 이후 책방 주변 골목에도 변화가 생겼다. 1년도 버티지 못하고 문 닫는 가게가 많았던 골목에 활력이 돌기 시작했다. 이 대표는 책방 앞에서 클래식 음악회를 열고 시 낭독회도 했다. 책방을 찾은 사람들의 발걸음은 주변 카페나 식당으로 이어졌다. 한약재 냄새만 가득했던 낡은 거리가 문화가 숨 쉬는 거리로 탈바꿈한 것이다. 상인회장을 맡고 있는 이 대표는 책방을 ‘광명의 성심당’ 같은 지역 랜드마크로 만드는 꿈을 품고 있다.
“책 사러 온 손님들이 책방 옆 카페에 가서 책을 읽다 가기도 하고 인근 맛집에서 차례를 기다리다 책방에 들어와 쉬기도 해요. 동네책방이 살아남으려면 혼자만 잘돼서는 안 돼요. 옆집도 앞집도 모두 다 같이 잘돼야죠.”
‘읽을마음’은 사회적기업으로의 도약도 준비하고 있다. 매주 지역의 발달장애인들이 책방을 찾아 생일책 포장 실습을 하고 있는데 앞으로 이들을 정식으로 고용해 안정적인 일자리를 제공하겠다는 구상이다. 책 포장비도 받지 않으면서 인건비까지 감당하기 어렵지 않겠냐는 질문에 이 대표는 “어차피 책방을 해서 큰돈을 벌기는 어렵다. 애초에 돈 안되는 일에 뛰어들었다면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책방의 모토는 ‘서로를 읽을 마음을 갖자’다. 책을 읽는 것을 넘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자는 책방지기의 마음이 책방 이름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야기를 쓰고 싶어 하는 사람은 갈수록 늘어나는데 읽는 사람은 현저히 줄어들고 있어요. 나 말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무관심한 거죠. 그런데 여기 오는 분들은 누가 쓴 건지, 어떤 내용인지도 모르면서 책을 사는 거잖아요. 상대의 이야기를 내가 기꺼이 품겠다는 정말 아름다운 마음이죠. 이곳에서 더 많은 분이 서로를 읽을 마음을 가져가시면 좋겠습니다.”
조윤 기자
책방지기 추천 ‘지금 읽기 좋은 책’

시간의 감촉
은희경(문학동네)
같은 해 1월과 12월에 태어난 자매 ‘안나’와 ‘경선’을 둘러싼 이야기.
4부로 구성된 소설은 예순다섯 살 생일을 맞은 이들의 장면을 시작으로 젊은 시절 사랑에 빠졌던 두 사람의 모습과 이후 함께 여행을 떠나는 모험을 그렸다. 외모, 성격, 결혼에 대한 가치관도 다른 자매의 이야기는 유머소설로도, 한국 현대 문화사를 다룬 교양소설로도 읽힌다.

끝맛
다리아 라벨(클레이하우스)
맛으로 유령의 존재를 느끼는 주인공 콘스탄틴 두호브니는 어느 날 자신이 만든 요리로 고인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재회를 도우며 돌아가신 아버지도 만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는다.
상실을 겪은 모든 이들을 위한 소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헌터스’를 제작한 소니픽처스가 영화화를 준비 중이다.

킵고잉
오스틴 클레온(중앙북스)
저자는 책에서 단어를 발췌·변형하는 방법으로 창의적인 텍스트를 만들어 전 세계 크리에이터의 사랑을 받아온 작가다. ‘내가 읽으려고 집필했다’는 이 책에는 슬럼프가 찾아와도 흔들리지 않고 일과 창작을 이어나가는 10가지 방법을 담았다. ‘평범한 것에+관심을 가지면=특별해진다’, ‘내 안의 예술 괴물을 없애라’ 등의 챕터에 구체적인 방법이 서술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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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