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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은퇴한 지인은 왜 매일 새벽 동네 쓰레기를 주울까?

게티이미지

얼마 전 지인을 만나 훈훈한 얘기를 들었다. 그는 지난해 은퇴했고 서울 노원구 상계동의 오래된 구축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요즘 어떻게 사느냐는 질문에 “나이 들면 새벽잠이 없어 일찍 깬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백 퍼센트 공감되는 이야기라 마주 보고 웃었다. 그는 새벽 5시면 저절로 눈이 떠져 한 시간 동안 동네 한 바퀴를 돌면서 쓰레기를 줍는다고 했다. 비록 낡은 아파트지만 청소를 하고 잘 관리하면 신축아파트 못지않게 쾌적하단다. 39년 된 아파트라서 동간 거리도 넓고 조경수는 원시림처럼 울창해 살 만하다고 했다.
그렇게 말하는 지인의 얼굴에는 자신이 사는 공간에 대한 애정이 묻어났다. 아침 청소는 은퇴 후부터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는데 하루의 시작을 그렇게 하고 나면 왠지 뿌듯하다고 했다. 돈 받는 일도 아닌데 왜 그런 일을 하느냐고 묻자 “내가 사는 동네인데 누구라도 청소해서 깨끗하면 기분 좋지 않냐”고 대답했다. 그의 말에는 한국인의 주인의식이 진하게 담겨 있었다.

공동체 문화의 유산
한국인의 유전자에는 내가 이 땅의 주인이라는 주인의식이 강하게 박혀 있다. 이것은 높은 지위나 넓은 땅을 소유한 사람들만의 특권의식이 아니다.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내 집이나 내 일처럼 지키려는 태도를 말한다. 이런 사람들은 집과 사무실뿐만 아니라 자신이 속한 공용공간이 모두 자신의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면 주저 없이 신고하고 쓰레기 분리배출에도 자연스럽게 참여한다. 길거리에서 누군가 쓰러지면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손을 내민다.
이 같은 주인의식의 뿌리는 오랜 공동체 문화에서 찾을 수 있다. 농경사회에서 이어져온 두레와 품앗이, 향약과 계, 김장 문화가 대표적으로, 혼자서는 하기 힘든 일을 공동체의 힘으로 해결했다. 그 과정에서 공동체의 이익과 안녕이 개인의 삶과 직결된다는 사실을 체득했고 내가 속한 공동체의 문제는 곧 나의 책임이라는 주인의식이 형성됐다.
이러한 주인의식은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더욱 선명하게 드러났다. 임진왜란 3대 대첩 가운데 하나인 행주대첩에서는 ‘행주치마’라는 명칭이 생겨날 만큼 부녀자들까지 돌과 화살을 나르며 성을 지켰다. 진주대첩에서는 군인뿐 아니라 성안 주민과 부녀자들이 끓는 물과 돌을 준비해 성벽을 지켰고 논개는 진주 촉석루에서 왜장을 끌어안고 남강에 몸을 던졌다. 서산대사와 사명대사 등 승병들도 “나라가 위기인데 수행만 할 수 없다”며 전장으로 나섰다. 곽재우나 고경명의 의병진에는 노비 출신도 적지 않았다.
선조가 한양을 떠나고 관군이 초기에 무너졌던 절망적 상황에서 나라를 지키기 위해 일어선 사람들은 농민, 상민, 승려, 여성, 노비, 기생 등 사회의 비주류였다. 평소에는 존재감이 없던 이들이 위기의 순간 이 땅의 진정한 주인이 되어 싸웠다.
물론 노비들 가운데는 면천(免賤)의 기회를 기대하거나 주인집과의 의리를 지키기 위해 싸운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목숨을 걸어야 하는 전장에 선뜻 나선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들의 행동 밑바탕에 자신 역시 이 땅의 주인이라는 의식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행동이었다.
이러한 주인의식은 오늘날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힘이기도 하다. 전자제품이 고장 나면 즉각적인 서비스가 이루어지고 지하철이나 버스는 정확한 시간에 도착한다. 산불, 홍수 같은 재난이 발생하면 전국 각지에서 자원봉사자가 달려와 피해 복구에 힘을 보탠다. 자신이 맡은 일에 책임을 다하고 공동체의 문제를 외면하지 않는 주인의식이 한국 사회를 지탱해온 원동력이다.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한국인이 가진 강력한 긍정의 유전자일지 모른다.

조정육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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