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노벨 경제학상이 던진 메시지는 단순하다. 경제성장은 자본을 얼마나 쌓았느냐보다 지식이 어떻게 퍼지고 서로 결합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경제사학자 조엘 모키어가 그린 성장의 풍경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사회의 일상 규칙에 가깝다. 실험과 토론이 당연하고, 현장의 기술과 과학 지식이 서로의 발판이 되며, 실패가 곧바로 다음 시도로 이어지는 곳에서는 생산성이 ‘구조적’으로 올라간다. 중요한 건 연구개발(R&D) 지출의 크기만이 아니라 지식이 이동하는 통로의 개방성과 학습의 반복 가능성이다.
공동 수상한 필리프 아기옹과 피터 하윗은 이 생태계가 경제에서 굴러가는 장치를 ‘혁신과 경쟁’으로 풀어낸다. 새 기술, 새 기업이 들어오면 낡은 방식은 밀려난다. 이 교체가 반복될수록 자원은 더 생산적인 곳으로 옮겨가고 효율은 개선된다. 다만 혁신은 스스로 확산되지 않는다. 공정한 경쟁, 원활한 진입과 퇴출, 전환 비용을 흡수하는 안전망이 함께 있어야 연쇄반응이 된다. 혁신이 ‘등장’하는 것과 ‘확산’되는 것은 다른 문제이고 후자는 제도의 역할이 크다.
혁신이 주도하는 이재명정부의 경제성장전략
최근 발표한 정부의 2026년 경제성장전략을 이런 문맥으로 읽어보면 전략의 골간은 ‘생산의 세 축을 혁신으로 다시 맞물리게 하자’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생산은 자본(설비·인프라·연구개발), 노동(인구·참여·숙련), 생산성(기술·조직·제도·경쟁이 만드는 효율)에서 나온다. 그런데 한국은 저출생으로 노동 투입이 줄고 투자도 둔화되는 구간에 들어섰다. 그래서 전략의 중심은 ‘투입 확대’라기보다 ‘투입의 재배치와 효율 상승’이 될 수밖에 없다.
먼저 자본 파트는 ‘돈을 더 모으기보다 물길을 바꾸자’인 것 같다. 국민성장펀드로 인공지능(AI)·반도체 등 첨단으로 자금을 밀어넣고 국민참여형 펀드와 세제 혜택을 엮어 장기자금을 모험자본으로 돌리려 한다. 장기 주식투자를 촉진하려 생산적 금융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Individual Savings Account)를 신설하고 기업성장집합투자기구(BDC·Business Development Company) 등과 결합해 투자 대상을 넓히겠다는 구상도 같은 결이다. 지배구조 개선 가이드라인과 자사주 과세 체계 정비를 묶은 건 자본시장 신뢰를 높여 장기 투자 기반을 다지겠다는 메시지다. 기업형 벤처캐피탈(CVC·Corporate Venture Capital) 규제 완화, 생산적 대출에 대한 충당금 손금인정 확대 같은 조치들은 혁신 투자로 이어지는 금융의 관로를 넓히는 ‘배관 공사’로 읽힌다.
노동 파트는 ‘양보다 질’인 것 같다. 이공계 장학금·연구생활장려금 확대, 학·석·박 패스트트랙, 권역별 인공지능(AI) 단과대학 확산, 해외 인재 유치와 비자 트랙 정비는 숙련의 밀도를 높이겠다는 설계다. 지방주도 성장도 같은 흐름이다. 재생에너지 100% 사용(RE100·Renewable Energy 100%) 산업단지, 규제·정주·재정·세제 패키지, 교통·물류망 확충은 ‘사람과 기업이 한곳에만 몰리면 성장의 폭이 좁아진다’는 진단에 대한 처방으로 보인다.
생산성은 ‘일하는 방식 업데이트’가 핵심이다. 인공지능 전환(AX·AI Transformation)과 피지컬 인공지능(Physical AI)까지 기술 축을 넓히고, 정부 AX 사업에 그래픽처리장치(GPU·Graphics Processing Unit) 등 공통자원 지원체계를 두겠다는 건 디지털 전환을 인프라로 만들겠다는 신호다. 휴머노이드 프로젝트, 월드모델(World Model) 기반 학습을 통해 제조·물류·재난·농업으로 AI를 확산하겠다는 구상도 ‘선도 산업만 빨라지는 성장’을 피하려는 시도다. 공정성장 과제를 생산성의 제도 축으로 함께 묶어 상생결제 확대, 하도급 과징금 상향, 기술탈취 제재 강화, 증거개시(Discovery) 도입 검토까지 제시한 것도 거래비용과 불확실성을 낮추려는 장치다.
마지막으로 거시 안정과 구조 혁신을 한 세트로 묶은 점은 꽤 현실적이다. 경기·물가·금융이 흔들리면 혁신 투자도, 인재 육성도 체력이 급격히 떨어진다. 세입 기반을 점검하고 비과세·감면을 재검토하며 조달·공공기관 혁신으로 재정 효율을 높이겠다는 언급은 성장 정책이 단기 지출 경쟁으로 소진되는 걸 막는 안전핀 역할을 한다.
‘지식이 돌고 혁신이 번지는 규칙’을 완성해야
다만 걸리는 대목이 있다. 첫째, 펀드와 세제가 전면에 서면서 ‘돈을 모으는 장치’가 ‘돈을 잘 쓰게 만드는 규칙’보다 커 보인다. 유동성은 이미 풍부한데 혁신으로 흘러가게 만드는 동기·규율·실패 후 재도전 구조는 상대적으로 옅다. 둘째, 사회개혁 로드맵이 선명하지 않다. 노동시장 이중구조, 정년연장, 직무·성과 중심 보상, 전직·재교육을 통한 이동성, 자영업과 산업 구조조정 같은 과제는 기술 투자만큼 생산성을 좌우한다. 창조적 파괴가 제대로 굴러가려면 ‘망해도 끝이 아닌 구조’가 필요하다. 한쪽에서는 낡은 일·기업·산업에서 질서 있게 빠져나올 수 있어야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사람과 자본이 새로운 일·기업·산업으로 빠르게 갈아탈 수 있어야 한다. 둘 중 하나만 있으면 충격만 커지고 혁신은 멈춘다.
요약하면 2026년 전략은 ‘돈을 모으는 정책’을 넘어 ‘지식이 돌고 혁신이 번지는 규칙’으로 완성돼야 한다. 시장이 공정하게 경쟁하고, 새로 들어오고 낡은 것이 나갈 수 있으며, 전환의 비용을 사회가 감당할 때 지식은 빠르게 퍼진다. 그때 비로소 한국의 성장 경로는 ‘반짝’이 아니라 ‘체질’이 된다. 결국 성장의 본질은 하나다. 지식이 잘 흐르는 나라가 결국 오래 지속적으로 성장할 것이다.

우석진
명지대 경상·통계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