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보카도 명란 비빔밥
한 해 동안 식탁 위의 작은 선택이 몸에 어떤 변화를 만들어내는지 이야기해왔다면 오늘은 그 모든 이야기의 배경이 돼온 ‘의학의 최신 관점’으로 1년 연재를 마무리해보려 합니다.
우리는 흔히 “체질이 이래서 어쩔 수 없어”라는 말을 쉽게 합니다. 하지만 최근 의학은 건강을 결정짓는 요인이 타고난 유전자 그 자체보다 그 유전자가 어떤 환경에서 얼마나 자주 사용되느냐에 훨씬 더 좌우된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어요. 이 분야를 연구하는 학문이 바로 ‘후성유전체학(epigenetics)’입니다.
후성유전체학은 유전자의 ‘내용’이 아니라 유전자가 ‘켜지고 꺼지는 방식’을 연구합니다. 즉 유전자는 같아도 어떤 유전자가 얼마나 활발히 작동하느냐는 전혀 다르다는 뜻이에요. 우리가 무엇을 먹고, 어떻게 자고, 얼마나 움직이는지 같은 일상의 습관이 바로 이 유전자 스위치를 조정합니다. 하루하루의 작은 선택이 쌓이면서 어느 순간 ‘체질이 바뀐 것 같다’고 느끼게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이 중에서도 음식이 차지하는 비중은 생각보다 훨씬 큽니다. 특히 지방은 단순히 열량을 제공하는 영양소가 아니라 세포에 ‘이렇게 반응하자’라는 신호를 전달하는 생리학적 조절자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지방은 ‘얼마나 먹느냐’보다 ‘어떤 지방을 먹느냐’, 즉 질이 중요합니다.
지방은 우리 몸의 거의 모든 세포막을 구성하는 핵심 재료입니다. 우리가 섭취하는 지방의 종류에 따라 세포막의 유동성이 달라지는데 이 유동성은 세포가 외부 신호를 받아들이는 능력과 직결됩니다. 세포막이 지나치게 뻣뻣하면 인슐린 수용체나 면역 수용체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반대로 너무 유연하면 신호가 과도해질 수 있습니다. 결국 지방산의 구성은 세포가 세상을 인식하고 반응하는 방식 자체를 조율하는 셈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단일불포화지방산(MUFA)’과 오메가3 지방산은 특히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이 지방산들은 세포막을 적절한 유연성으로 유지해 인슐린 감수성을 개선하고 면역세포가 필요 이상으로 흥분하지 않도록 돕습니다.
이 변화는 단순한 기능 개선에 그치지 않고 후성유전적 조절로까지 이어집니다. 지방산의 종류는 DNA 메틸화나 히스톤 단백의 아세틸화 같은 유전자 발현 조절 과정에 영향을 줘 염증을 촉진하는 유전자는 덜 사용되게 하고 항염·항산화 유전자는 더 원활해지도록 돕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아보카도는 매우 흥미로운 식재료입니다. 지방 함량이 높아 부담을 느끼는 이도 있지만 그 대부분이 단일불포화지방산으로 구성돼 있어요. 이 지방은 세포막을 지나치게 딱딱하지도, 과도하게 유연하지도 않게 유지해 신호 전달 효율을 높여줍니다. 특히 인슐린 수용체의 반응성을 개선해 식후 혈당이 급격히 오르는 것을 완화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명란 역시 짠 이미지 때문에 간과되기 쉽지만 생선의 알이라는 특성상 대사 활성 물질이 매우 높은 밀도로 들어 있습니다. 도코사헥사엔산(DHA)과 에이코사펜타엔산(EPA) 같은 오메가3 지방산, 콜린, 인지질, 필수아미노산이 고르게 포함돼 있는데 이 조합은 특히 간에서 지방을 처리하는 능력을 개선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콜린과 DHA는 간세포가 지방을 잘 포장해 다른 조직으로 보내도록 도와 지방이 간에 쌓이는 것을 막아줍니다. 간은 혈당과 지방 대사, 해독을 모두 담당하는 중심 기관이기 때문에 이 기능이 좋아지면 전신의 대사 스트레스가 눈에 띄게 줄어들죠. 염분이 걱정된다면 명란은 풍미가 강해 소량으로도 충분한 만족감을 주는 식재료라는 점을 기억해도 좋겠습니다. 실제 섭취량을 조절하면 총 나트륨 섭취가 크게 늘지 않아요.
아보카도와 명란을 함께 섭취하면 서로 다른 경로에서 세포 신호와 유전자 사용 패턴을 안정적인 방향으로 조절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어요. 단일불포화지방산과 오메가3 지방산이 염증 신호를 완화하고 식이섬유와 단백질이 식후 혈당을 안정시키며 항산화 물질과 콜린, 인지질이 더해져 세포막 안정성과 간 대사를 함께 개선합니다. 그 결과 하루 동안 세포가 받는 대사적 부담이 한층 줄어들게 됩니다.
그동안 이 칼럼을 통해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단순합니다. 한 끼 식사는 배를 채우는 행위가 아니라 우리 몸과 마음, 그리고 유전자 사용 패턴까지 조율하는 과정이라는 점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식재료 선택과 식사 기준이 이전보다 조금 더 깊고 풍부해졌기를, 그리고 그 변화가 일상의 건강으로 이어지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이경미 가정의학과 전문의
차움 푸드테라피 ‘만성염증클리닉’ 및 차의과학대학교 교수로 약물·수술적 ‘치료’를 넘어 통합적인 ‘치유’를 돕는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있다. 저서로는 ‘하루 한 끼 면역 밥상’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