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온이 급격히 떨어지는 늦가을엔 일조량이 줄어들면서 일교차가 커지고 몸의 리듬이 흔들리기 쉽습니다. 특별히 무리한 일이 없어도 피로가 쉽게 쌓이고 손발이 차가워지며 의욕이 떨어지는 변화가 나타나기도 합니다. 이런 증상은 계절 변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반응일 수도 있지만 때로는 우리 몸이 보내는 철분 부족의 신호일 수도 있습니다. 철분은 부족해도 급격한 증상이 나타나지 않아 놓치기 쉽지만 에너지 대사와 뇌 기능에 깊이 관여하는 중요한 영양소입니다.
철분이 부족하면 피로가 심해지는 이유는 철분이 적혈구 속 헤모글로빈을 만드는 데 필수적이기 때문입니다. 헤모글로빈은 폐에서 받아온 산소를 전신 세포로 운반해 세포가 에너지를 만들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합니다. 철분 부족으로 산소 공급이 줄어들면 조금만 움직여도 쉽게 지치고 무기력감과 집중력 저하가 나타납니다. 세계보건기구(WHO) 역시 철분 결핍을 전 세계에서 가장 흔한 영양 결핍으로 꼽고 있어요. 중요하지만 증상이 서서히 나타나기 때문에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한 채 지나치는 경우도 많고 경미한 빈혈은 별다른 치료를 하지 않고 소홀히 다루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여성들에게서 자주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철분 섭취에서 중요한 것은 단순한 섭취량이 아니라 흡수율입니다. 소간이나 붉은 살코기, 조개류에 포함된 헴철(heme iron)은 흡수율이 20~30%로 높지만 시금치·두부·콩류·해조류에 들어 있는 비헴철은 5% 정도만 흡수됩니다. 그래서 전통적으로 빈혈이 있을 때 고기를 권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나 채식을 하거나 소화 기능이 약해 동물성 식품 섭취가 어려운 사람도 많지요.
이때 중요한 것이 바로 비타민C입니다. 비타민C는 비헴철을 더 잘 흡수되는 형태로 바꿔 흡수율을 두세 배 이상 높여줍니다. 그래서 시금치·콩류·해조류 같은 식물성 철분 식품과 귤, 유자, 딸기처럼 비타민C가 풍부한 제철 과일을 함께 먹으면 훨씬 효과적으로 철분을 보충할 수 있습니다.
철분제를 복용하는 것도 방법이지만 메스꺼움, 속 불편감, 변비 같은 부작용 때문에 중단하는 경우가 많고 위축성 위염처럼 위산 분비가 적은 사람은 흡수율이 떨어질 수 있습니다. 가벼운 철분 부족이라면 약보다는 평소 식사를 통해 꾸준히 보충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고 지속가능한 해결책입니다.
특히 늦가을부터 초겨울까지 제철인 시금치는 철분뿐 아니라 ‘엽산’이 풍부해 피로 완화와 혈액 건강에 도움이 됩니다. 엽산은 새로운 적혈구가 만들어지고 성숙하는 데 꼭 필요한 영양소이며 부족하면 거대적혈구성 빈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제철 시금치는 일교차가 커 엽록소가 짙고 당도와 항산화 성분도 높아 ‘자연이 만든 멀티비타민’이라고도 합니다. 비타민C도 일정량 함유돼 있어 식물성 철분의 흡수에 도움을 주고 단백질 식품과 함께 먹으면 조혈 작용에 필요한 환경을 잘 갖추게 됩니다. 예를 들어 시금치 오므라이스처럼 철분·엽산·비타민C·단백질을 한 번에 섭취할 수 있는 조합은 몸의 에너지 회복에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철분은 혈액뿐 아니라 뇌 기능과 기분 조절에도 관여합니다. 도파민 같은 신경전달물질을 만드는 과정에 철분이 필요한데 도파민은 집중력, 동기 부여, 의지력과 같은 기분과 관련이 깊습니다. 철분이 부족할 때 피로, 의욕 저하, 무기력감이 나타나기 쉬운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건강은 결국 균형의 문제입니다. 특정 영양소 하나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영양소가 균형을 이루고 잘 흡수되는 형태가 중요한데 그런 점에서 식품을 통한 영양 공급이 특정 영양소 성분으로 구성된 영양제보다 비교할 수 없는 장점이 많습니다. 늦가을의 피로가 깊어질 때 식탁 위의 작은 변화를 시도해보세요. 따뜻한 밥에 싱싱한 제철 시금치를 더하는 것만으로도 산소 운반 능력과 적혈구 형성을 돕고 뇌의 에너지 시스템이 다시 활력을 찾기 시작합니다. 일상의 균형 잡힌 식사가 몸과 마음을 자연스럽게 회복시키는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확실한 방법입니다.

이경미 가정의학과 전문의
차움 푸드테라피 ‘만성염증클리닉’ 및 차의과학대학교 교수로 약물·수술적 ‘치료’를 넘어 통합적인 ‘치유’를 돕는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있다. 저서로는 ‘하루 한 끼 면역 밥상’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