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만 명. 2017년 기준 치매 환자 수다. 치매는 누군가의 이야기가 아닌, 이제 모두의 이야기가 됐다. 65세 이상 노인 10명 중 1명이 치매 환자이고, 국민 25가구 중 1가구가 치매 가족이다. 치매 환자의 가족은 하루 평균 5시간에서 최대 10시간까지 환자를 돌본다. 치매는 오래도록 국가적 돌봄의 사각지대에 존재하다 뒤늦게 정책으로 발전했다. 요양병원 등 시설 중심의 치료에서 탈피해 지역사회 돌봄 관점으로 치매를 관리하는 방향을 담은 치매국가책임제가 2년을 맞은 가운데 경기도 고양시 중산동의 치매안심마을을 다녀왔다. 배회하는 치매 환자를 집으로 인도하기 위한 시스템이 갖춰지고 치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개선돼 지역사회가 함께 돌봄을 하는 마을로서 가능성을 보여줬다. 한국보다 앞서 고령화 문제에 부딪힌 선진국은 일찍부터 ‘커뮤니티 케어’를 시행해왔다. 전국 256곳의 치매안심센터가 치매 예방과 진단, 병원 연계를 담당한다면 광역치매센터는 치매 서비스 관리망을 만든다. 2007년부터 12년 동안 서울특별시광역치매센터장을 맡고 있는 이동영 서울대 의대 교수에게서 센터의 역할과 치매에 대한 의학적 이야기를 들었다.
유엔(UN)은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7%를 넘으면 고령화 사회, 14% 이상은 고령 사회, 20% 이상은 초고령 사회로 분류한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2017년 우리나라 65세 이상 인구는 전체 인구(2017년 기준)의 13.8%를 차지한다. 고령 사회로 진입을 코앞에 두고 있는 셈이다. 그에 비해 일본은 이미 2006년에 초고령 사회로 들어섰다.
우리보다 앞서 고령화 문제에 부딪힌 영국, 덴마크, 일본 등은 지역사회 안에서 해결책을 찾았다. 일찍부터 ‘커뮤니티 케어’를 시행한 것이다. 과거 덴마크 역시 고령화로 인해 요양원이 급격히 늘고 대형화했지만 1987년 법안을 만들어 요양원 확산을 막고, 재택 돌봄 서비스를 활성화했다. 일본 또한 늙고 병들어 치매에 걸리더라도 평범한 삶을 이어갈 수 있게 해주는 ‘지역 포괄 케어’가 이뤄진다. 실제 요양원이 아닌 집에서 노후를 맞이하고 싶다는 노인이 절반을 넘는 것으로 한국에서도 조사됐다. 2017년 보건사회연구원 노인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노인의 57.6%는 거동이 불편해도 살던 곳에서 재가 서비스를 받으며 지내고 싶다고 답했다.
문재인정부의 치매국가책임제는 요양병원 등 시설 중심의 치료에서 탈피해 지역사회 돌봄 관점으로 치매를 관리하는 방향을 담고 있다. 2008년 ‘치매와 전쟁’을 선언한 정부는 제3차 치매관리종합계획으로 ‘치매안심마을’ 제도를 발표했다. 기존의 치매 인식 개선 사업이 단발성 효과에 그친 것에 반해 치매 친화적 환경 조성으로 지역사회 구성원이 치매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고, 치매 환자가 거주하던 생활공간에서 지속적으로 살아갈 수 있게 지원하는 마을이다.
살던 공간에서 그대로 살아갈 수 있게
정부는 올해부터 각 시군구 치매안심센터별로 치매안심마을 1곳 이상씩 지정해 운영한다는 방침이다. 지방자치단체들도 최근 치매안심마을 조성에 나서는 가운데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중산동의 ‘기억이 꽃피는 마을’을 찾아갔다. 세계보건기구와 국제알츠하이머병협회가 가족과 사회의 치매 환자 돌봄을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지정한 ‘치매 극복의 날’(9월 21일)을 약 한 달 앞둔 8월 26일 방문한 중산동행정복지센터 5층에서는 소고 치는 소리가 들렸다. 매주 월요일 진행하는 치매 예방 프로그램 ‘중산 고고씽’이 진행 중이었다.
‘치매 간이 선별 검사(MMSE-K)’를 받은 만 60세 이상 주민 가운데 인지 저하가 전혀 나타나지 않은 어르신을 위한 수업이다. 치매 예방 교육 전문 강사가 진행한 프로그램에 이제껏 523명의 주민이 다녀갔다. 60세 기준으로 봤을 때, 일산동구 전체 노인 인구율(17.7%)에 비해 중산동 노인 인구율(19.4%)은 유달리 높다. 노랫 소리가 나는 교실 문을 살짝 열고 들어갔다.
‘짜증을 내어서 무엇 하나. 성화를 받치어 무엇 하나. 속상한 일이 하도 많으니 놀기도 하면서 살아가세. 니나노 닐니리야 닐니리야 니나노~. 얼싸, 좋아. 얼씨구, 좋다. 벌, 나비 이리저리 펄펄 꽃을 찾아서 날아든다.’
칠판에 적힌 가사 가운데 특정 글자에만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다. 동그라미가 나올 때만 소고를 쳐야 하기 때문에 인지 활동이 겸해진 수업이다. 강사는 연신 어르신들을 칭찬하며 분위기를 띄웠다. “진짜 잘하시네요. 동그라미 개수가 더 많은 노래로 이제 갈까요? ‘아빠의 청춘’ 노래 불러요.” 어르신 학생이 강사에게 농담을 던졌다. “선생님, 가사를 ‘엄마의 청춘’이라고 바꿔 부르면 안 돼요? 우리는 엄마잖아요.” 여성이 대부분인 교실에서 웃음꽃이 번졌다. ‘아빠의 청춘’ 노래를 부른 뒤 강사는 어르신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어르신들께 여쭈어볼 게 있어요. 나이가 들면서 ‘꽃띠’ 때랑 외모가 달라지잖아요? 그런데 마음은 그대로 맞아요? 어르신들한테 물어보면 마음은 다 그대로래요. 한 분도 예외 없이 마음은 그대로래요. ‘나에게도 아직까지 청춘은 있다’ 이 부분에서 열심히 불러봐요.”
‘아빠의 청춘’ 노래가 끝나자 핸드벨의 일종인 톤차임이 어르신 학생들에게 주어진다. “고데기 아니에요?” “맞아요, 고데기.” 교실에서는 또다시 웃음이 터진다. 톤차임이 헤어 기구인 고데기처럼 생겼다는 농담이다. “톤차임은 분위기 있는 노래에 어울려요. 이제 ‘사랑해 당신을 정말로 사랑해’ 노래 부를게요.” 각자 지급된 톤차임마다 다른 번호가 적혀 있다. 가사마다 번호가 매겨져 있는데, 본인이 가진 톤차임 번호에 맞춰 악기를 울려야 한다. 음악 수업이 끝나고 체육 수업이 이어졌다. 2시간의 ‘중산 고고씽’ 프로그램이 끝나자 어르신 학생들이 연신 “수업이 재밌다”며 교실을 빠져나왔다.
▶치매 예방 프로그램 시간에 참가자들이 노래 수업에 앞서 소고를 들고 강사의 설명을 듣고 있다.
‘꼬까신’ 반경 벗어나면 보호자와 센터에 알람
고양시 중산동은 2018년 경기도 치매관리 사업 부문에서 최우수 치매안심마을로 선정됐다. 치매안심마을로 선정된 지 1년 만의 성과였다. 치매안심마을에서는 치매에 익숙한 환경 조성을 위한 다양한 활동이 이어진다. 2018년 10월 중산체육공원에서 지역 주민 460명이 참석한 가운데 ‘돗자리 토크’가 개최됐고, 요양원과 연계해 치매 가족 지지 프로그램인 ‘씽씽 징검다리’를 2018년 여섯 차례 진행했다. 집에서 치매 환자의 인지 활동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유관 기관인 요양병원 직원이 알려주는 프로그램이다.
▶참가자들이 강사의 안내에 따라 팀별로 탑을 쌓아올 리고 있다.
사회복지사, 간호사 등 전문 인력의 재능 기부로 집중주의력 훈련, 치매 예방 체조 등 교육도 47회 진행했다. 저소득층에는 기저귀, 손목형 배회 감지기 등을 지급했다. 또 다른 대표적 사업이 치매 환자 실종에 대비한 이른바 ‘꼬까신’이다. 신발 밑창에 위치 확인 시스템이 달려 있어 실시간 위치 추적이 가능하다. 앱을 통해 치매 환자의 ‘행동반경 안심존’을 설정할 수 있다. 반경을 벗어나면 보호자의 휴대전화와 치매안심센터 담당자에게 알람이 울린다. 한번은 센터에 알람이 울려서 담당자가 급히 보호자에게 연락을 했다. 보호자가 환자와 함께 안심존을 벗어나 멀리 있는 병원으로 가고 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 신발은 올해 11월 업그레이드해 보급될 예정이다.
▶율동을 하고있는 참가자들
“부정적 인식 바꾸는 게 가장 어려워”
“꼬까신은 일산동구 치매안심센터 사업으로, 무조건 특화사업은 치매안심마을 주민을 1순위로 지급해요. 배회 감지 칩을 밑창에 심었는데 신발이 일체형이다 보니 신발 선택에 제한이 있고 충전하는 어려움도 있어서요. 깔창에 칩을 심은 버전으로 업그레이드 중입니다. 그러면 어떤 신발을 신어도 이 깔창을 깔면 되니까 호환이 가능해져요. 이제껏 50족을 나누었고 50족은 후반기에 업그레이드 버전으로 지급할 예정입니다. 아직은 초반이라 오류가 나서 애로 사항을 보완하는 과정이지만 이 사업 자체를 주민들이 좋아하세요. 100족에 한해 어려운 가정에 무료 보급하고 향후에는 유료화할 계획도 있습니다.”(범수연 고양시 일산동구 치매안심센터 주무관)
그러나 치매안심마을이라고 해서 사람들의 인식이 모두 바뀌는 것은 아니다. ‘치매 간이 선별 검사’에서 인지 저하가 전혀 없는 것으로 확인된 60세 이상 주민은 흔쾌히 ‘중산 고고씽’ 같은 치매 예방 프로그램에 나온다. 문제는 치매 간이 선별 검사에서 인지 저하가 시작된 사람들이다. 이들은 결과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치매안심센터에서 매주 수요일에 열리는 인지강화 교실에 초대하지만 쉽게 응하지 않는다. 인지 저하 속도를 늦출 수 있는 방법을 스스로 회피하는 것이다.
▶치매안심프렌즈 가게인 ‘헤븐 카페’ 윤진효 사장이 프렌즈의 역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직원들이 행정복지센터 등에 출장 나가 치매 간이 선별 검사를 하기도 하고, 직접 치매안심센터에 검사받으러 오는 분도 계세요. 치매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개선하는 게 가장 어려운 것 같아요. 치매에 관심 없는 분들을 관심 있게 바꾸기는 하는데,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을 긍정적으로 만들기는 어렵죠. 인지강화 교실의 경우, 아직 치매가 오진 않았지만 인지 저하가 시작되는 분들을 위한 프로그램인데 오시라고 해도 잘 응하지 않아요. 프로그램에 나오면 동네분들을 만나게 되잖아요. 아는 얼굴이 있을까 봐 꺼려지시는 것 같아요. 마스크 쓰고 오는 분들도 있고 말 한마디 안 하는 분도 있죠. 하지만 교육을 하고 관계를 형성하면서 재미를 붙이기도 하세요.”
거동이 불편해 치매안심센터 등으로 나올 수 없는 노인들을 위한 프로그램도 있다. ‘네잎클로버 사업’이다. 독거노인분들의 자택을 방문해 정밀 검사를 진행하고 인근 병원으로 연계하는 과정까지 돕는다.
▶범수연 고양시 일산 동구 치매안심센터 주무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
주민 6명 가운데 1명이 60세가 넘는 중산동. 치매 예방 프로그램에 참여한 어르신들은 지나간 세월을 글로 쓰며 마음을 다잡는다. 이들이 쓴 글을 묶어 일산동구보건소 치매안심센터는 올해 여름 <내 마음의 거울> 책자를 발간했다. “미국에 있는 딸에게 목소리. 엄마, 괜찮아. 그래, 괜찮다. 아무렇지 않다. 엄마, 몸은 괜찮아? 그래, 괜찮다. 엄마, 별일 없는 거죠? 그래, 즐겁게 잘 살고 있다. 옛 우리 엄마가 내게 해주신 말씀이었네. 아이들 걱정할까 봐 그랬음을. 우리 엄만 뻥쟁이였네. 보고 싶다. 2019년 7월 1일.”
이 마을의 은행, 카페 등 상가 10곳은 ‘치매안심프렌즈’다. 일반 시민이 치매로 배회하는 노인을 발견하면 치매안심프렌즈 상가에 모시고 가고, 상가 주인이 치매안심센터에 연락하는 구조다. 중산동행정복지센터에서 걸어서 2분 거리에 자리한 ‘헤븐 카페’도 치매안심프렌즈 가게다. 중산공원 바로 맞은편에 있는 카페를 찾아가니 사장인 윤진효(52) 씨가 반갑게 맞았다. 그는 “부모님의 치매를 간호하느라 생업을 거의 포기하다시피 많은 시간을 써야 했던 카페 손님이 계셨다”고 말했다.
“아내도 그렇고 저도 치매에 관심이 있었어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잖아요. 나도 나이 들 수 있고 나의 부모님도. 그런데 치매안심프렌즈 현판을 가게에 다니까 더 주의 깊게 보게 되더라고요. 혹시 치매 환자분이 지나가진 않는지. 조금 더 사회적으로 치매 환자를 케어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으면 좋겠어요. 텔레비전에서 외국 사례를 담은 프로그램을 보니까 치매 환자분들도 우리와 함께 보통의 일상생활을 하시더라고요. 치매가 없는 사람들도 환자를 이해하고 함께 생활할 수 있었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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