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록도병원 감금실 벽면에 부착돼 있는 문화재청 등록문화재 인증 마크
근현대 문화유산 보고 소록도를 가다
“이 섬 전체가 100년이 넘도록 한센인들이 걷고 일하고 생활하고 치료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며 일생을 보낸 장소입니다. 인류문화재로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 섬을 사적(국가지정문화재·기념물)으로 지정받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습니다. 국외 연구자들도 주목하고 있습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는 일도 추진될 거 같습니다.”
2021년 4월 21일 전남 고흥군 소록도 해안길에 있는 보건복지부 소록도병원 한센병박물관에서 한센병박물관 조명래 학예연구사(큐레이터)를 만났다. 면적 4.42㎢, 해안선 길이 14㎞로 어린 사슴을 닮은 조그만 섬 소록도는 고흥반도 남쪽 끝 녹동항에서 약 500m 거리에 있다. 사적 지정을 추진할 때 각각의 점(개별 시설·건축물 중심)으로 할지 면적(섬 전역)으로 할지 검토중이다. 우리나라 사적을 넘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까지 추진한다는 말은 흥미로웠다.

▶전남 고흥군 소록도 국립소독도병원 한센병박물관 입구 | 문화체육관광부
한센인 요양소 세계문화유산 등재 추진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소록도병원(1916년 5월 설립)처럼 한센병 환자들을 외딴섬 등 고립 지역에 집단으로 강제 격리 수용한 정착촌이 잇따라 들어섰다. 하와이 몰로카이, 말레이시아 순가이 부로, 대만 낙생원, 필리핀 마닐라 외곽의 딸라 지역, 일본 오카야마현 한센인 요양시설 나가시마 애생원 등이 대표적이다. 100년이 훨씬 넘은 지금 몰로카이·순가이 부로·낙생원 등 일부 한센인 집단 갱생원들은 한센인 요양소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려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
국제 조사 연구결과 순가이 부로 요양소는 근대 한센인요양소를 대표할 만한 곳으로 관리·보호·보존할 가치가 충분하다는 판단이 나오면서 2019년 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잠정 등재됐다. 그 후로 대만 등지에서 유네스코 등재 운동이 일어났고 소록도 한센병 유산도 주목받았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19년에 펴낸 ‘한센인 인권상황 실태조사 결과보고서’(연구수행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에서는 “말레이시아·대만 사례처럼 소록도 한센병 유산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서 가치가 충분하다”며 “한센병은 인류 역사와 함께 해온 질병이다. 한센병 요양시설 유산을 갖고 있는 각 나라가 함께 국경을 초월하는 세계문화유산으로 공동 등재를 추진해보자”고 제안했다. 이날 만난 조 학예연구사는 “소록도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다면 일제강점기부터 행해진 국가에 의한 강제 격리와 강제 노역, 인권 침해·유린 역사를 공간적으로 치유하는 의미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센병박물관은 소록도에서 완치·퇴원한 뒤 여수 애양원, 나주 호혜원 등 정착촌에 사는 한센인 고령 생존자들을 상대로 생애사 구술·채록 작업을 하고 있다. 부당한 억압에 맞서 싸운 한센인들의 생활 자료를 지속해서 수집·발굴하는 작업도 훗날 소록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지정 논의가 본격화하면 인류 유산으로 가치를 인정받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소록도 한센인 유물 국가 등록문화재 검토
한센병 극복 역사는 구한말 외국인 선교사들이 광주·부산·대구 등지에 사설 한센병 요양소를 세우고 1916년 소록도에 한센병 전문 자혜의원을 설립하면서 시작했다. 소록도 한센병 환자는 1940년대 6000명 이상이었으나 현재 주민은 465명에 그친다. 평균 78세 고령자들로 한센병을 앓고 있는 환자는 드물다. 대부분 완치된 병력자로 장애를 갖고 있거나 전국의 한센인 병력자 정착촌 요양시설(여수 애양원, 산청 성심애양원, 나주 호혜원, 안동 성좌원, 안양 성라자로마을 등)이나 가족 곁으로 가기 어려운 사람들이다.
2021년 3월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는 소록도 한센인 유물 7점을 국가 등록문화재로 검토하기로 했다. 한센병박물관에 소장 중인 1950~1960년대 소록도 4·6사건 관련 3점(진정서 1점 가로 25.5×세로 19cm, 물품통계표 1점 25.5×18cm, 성명서 1점 28×20cm)과 소록도 녹산의학강습소 관련 유물 4점(청진기 1점 길이 83cm, 해부학 책 1점 27×19cm, 수료증 2점 각 26.8×38.8cm) 등이다. 장애인 분야 근대 문화유산 목록 조사연구(2020년)와 전문가 현지조사(2021년 2월)를 통해 역사·사회·의학 등 측면에서 문화재 가치를 인정받은 것으로 5월 중순 이후 최종 등록 결정이 내려질 예정이다.
1953년에 일어난 4·6사건은 해방 이후 부임한 일부 한국인 원장들이 일제강점기의 일본인 원장처럼 강압적인 관리·통제 방식을 일삼자 병사 지대 갱생원 환자들이 원장에 맞서 10년 넘게 끊임없이 저항한 자유와 인권을 향한 싸움이었다. 한센병 원생들은 1960년대 중순까지 줄기차게 집단행동에 나서 진정서를 제출하고 성명서를 내며 싸웠다. 이청준 소설 〈당신들의 천국〉에 그려진 것처럼 섬 자치권과 자유를 향한 원생들의 투쟁이었다.
조 학예연구사는 말했다. “당시 소록도는 환자들이 사는 병사 지대와 직원들이 사는 관사 지대로 나뉘어 중간에 철조망이 쳐진 채 분리돼 있었다. 원생들이 집회 후 그 경계선을 처음으로 넘어 관사로 궐기한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소록도 모래를 이용해 시멘트 블록을 찍어내던 형틀(등록문화재 제663호)

▶한센병 환자들이 자가 치료 때 사용하려고 각자 만든 개인 치료용 칼(등록문화재 제663호)
한센인 문화유산 순례하는 사람도
국립소록도병원 외부인 주차장에서 병원 쪽으로 걸어 들어가면 초입을 지나자마자 소나무 숲길이 이어진다. 이곳에는 예전에 수탄장이었다는 안내 팻말이 놓여 있다. 수탄장은 병사 지대와 관사 지대를 구분하는 철조망이 세워져 있던 지역이다. 한센병 감염을 우려해 관사 지대로 옮겨져 보육원 생활을 하던 자녀들과 병사 지대에 사는 부모들이 한 달에 한 번씩 이곳에서 길 양편에 일렬로 늘어서 일정한 거리를 두고 눈으로만 만나야 했던 수심과 탄식의 장소였다. 1952년에 제1기 졸업생을 배출한 소록도 녹산의학강습소 유물도 등록문화재 목록에 오를 예정이다.
소록도는 섬 전역에 근현대 한센인 문화유산이 흩어져 있어 문화재를 순례하는 사람도 있다. 2003~2016년 등록·지정문화재 총 15건이 병사 지대와 관사 지대에 산재해 있다.
자혜의원(1917년 건립·전라남도 지정문화재 제238호), 순천교도소 소록도지소(1935년 건립·문화재청 등록문화재 제469호), 만령당(1937년 건립·문화재청 등록문화재 제69호), 등대(1937년 건립·문화재청 등록문화재 제72호), 식량창고(1940년 건립·문화재청 등록문화재 제70호), 성실중고등성경학교 교사(1957년 건립·문화재청 등록문화재 제74호), 검시실(1935년 건립·문화재청 등록문화재 제66호), 감금실(1935년 건립·문화재청 등록문화재 제67호), 녹산초등학교 교사(1935년 건립·문화재청 등록문화재 제73호), 사무본관과 강당(1935~1937년 건립·문화재청 등록문화재 제68호), 원장 관사(1934년 건립·문화재청 등록문화재 제75호), 신사(1935년 건립·문화재청 등록문화재 제71호), 병사 지대 성당(1961년 건립·문화재청 등록문화재 제659호), 마리안느·마가렛 수녀 사택(1938년 건립·문화재청 등록문화재 제660호), 한센인 생활 유품(1930~1960년대·문화재청 등록문화재 제663호·8종 14점) 등이다.

▶서로 다른 생활 집기 4개에서 제각각 한 부분씩 떼낸 뒤에 한데 이어 붙여 만든 냄비(등록문화재 제663호)

▶소록도 녹산의학강습소 1기 졸업생이 1952년에 졸업선물로 받은 청진기(문화재 등록 심의 중)

▶1953년 4·6사건 후 소록도갱생원 원생자치회 명의로 작성된 성명서(문화재 등록 심의 중) | 한센병박물관
한센병박물관에 각종 생활 유품 전시
건축물 문화재는 대부분 붉은 벽돌조로 벽체 내부를 쌓고 시멘트 블록을 사용해 목조로 마감한 근대 건축물이다. 제4대 원장(일본인 수오·1933~1942년 재임 8년 9개월)이 1934년에 원생들을 동원해 지금의 소록도중앙공원 주변에 벽돌공장을 지었고 원생들이 온종일 강제 노역으로 구워낸 붉은 벽돌로 원장 관사·식량 창고·감금실·검시실 같은 등록문화재를 세운 셈이다.
섬에 치료 받기 위해 들어왔으나 집단 격리된 채 아무런 장비 없이 한센병으로 굽어진 맨손으로 벽돌을 굽고 날라 건축물을 세웠다. 등록문화재 중 녹산초등학교는 자유를 잃고 억압 받은 한센병 부모들이 만든 학교다. 기필코 아이들을 가르쳐 미래와 희망을 버리지 않겠다는 의지가 돋보이는 공간이다.
국립소록도병원 설립 100주년(2016년)에 문을 연 한센병박물관에는 2016년에 문화재로 등록된 각종 한센인 생활 유품이 전시돼 있다. 서로 다른 생활 집기 4개에서 제각각 한 부분씩 떼어 낸 뒤에 이것을 다시 한데 이어 붙여 만든 냄비, 소록도 모래를 이용해 시멘트 블록을 찍어내던 형틀, 한센병으로 피부에 딱딱하게 굳은살 등을 제거하려고 원생들이 만든 개인 치료용 칼 등이다. 한센인들이 섬에 격리된 특수한 환경과 자신들의 신체 조건을 극복하려고 분투하면서 직접 제작·사용했던 도구다.
조명래 학예연구사는 “소록도의 등록문화재들은 근대 건축물뿐만 아니라 인권과 교육적 의미, 사회·의학·생활 민속적 가치 무엇보다 서럽고 고달픈 생을 살았던 한센인들의 아픈 역사를 국가가 기억하고 유지·관리·보존한다는 뜻이다”라고 말했다. 식량 창고와 감금실에서는 각각 지붕을 잇는 보수 공사와 누수 방지 공사가 2021년 상반기에 이뤄졌다.
글·사진 조계완 기자
한센병박물관은?
국립소록도병원 한센병박물관은 2016년 5월에 국립소록도병원 개원(1916년 5월) 100주년을 기념해 건립됐다. 1층에 영상문화센터·수장고·어린이도서관·학예연구실을, 2층에 상설전시실·기획전시실·특별전시실을 갖추고 소록도 100년 역사 속에 한센병을 이겨낸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해놓았다.
상설전시실은 한센병, 인권, 전이 공간, 삶, 국립소록도병원, 친구들 등 6개의 주제관으로 구성돼 있다. 한센인 생활 유품(등록문화재 제663호·개인 치료용 칼 등 8종 14점)을 비롯해 한센인의 삶과 인권의 가치를 돌아볼 만한 다양한 유물과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한센병박물관은 2019년에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국립전문박물관(제1종)으로 정식 등록돼 지위가 격상됐다. 국립중앙박물관 등에서 진행하는 각종 협력 사업에 참가해 다른 박물관과 교류·협력을 늘릴 수 있다. 한센병박물관 누리집(http://www.sorokdo.go.kr/museum/main.do)의 디지털자료실에 들어가면 등록문화재 자료, 소장 유물(생활·의학·행정), 소록도 시기별 역사 자료, 소록도 연보 등 발간물을 자세히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