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입자 대표가 말하는 ‘주택임대차보호법’의 영향
정부 부동산 정책의 목표는 국민이 집 걱정 없이 안심하고 사는 주거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투기 수요 근절, 실수요자 보호, 생애주기별·소득수준별 맞춤형 대책의 3대 원칙에서 주택시장 안정책과 실수요자 중심의 다양한 지원·공급책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주택임대차 거래에 새로운 질서를 가져올 전월세상한제와 계약갱신청구권제가 시행되고 임대차 신고제가 시행을 앞두면서 기존 세입자(임차인)는 2~4년간 전세금 폭등 우려에서 벗어나게 됐다. 세 가지 제도 모두 세입자의 ‘이사 걱정 없는 거주’를 어느 정도 보장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다. 그렇다면 새 제도 도입 후 세입자들의 권리는 얼마나 보장받고 있을까. 서울지역 세입자들의 주거 개선을 위해 활동하는 비영리단체 서울세입자협회 박동수 대표를 만나 세입자 보호 제도 도입 이후 달라진 주거 환경에 대해 들어봤다.
-그동안의 전세 정책을 돌아본다면?
=우리나라에는 전세 정책이 아니라 집값 정책이 있었다. 전세 문제도 집값으로 해결하려 했다. 과거 정부는 내 집을 마련하면 전세 문제는 해결된다고 했다. 빚내서 집을 샀지만 전세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낮은 금리 때문에 월세로 돌리고, 남아 있는 전세 물량이 한정되어 전세 가격은 올랐다. 전세 문제는 단순한 1차 방정식이 아니다. 전세로도 집 걱정 없이, 맘 편히 장기간 살 수 있게, 인상률도 물가상승률 정도에서 관리하는 전세 정책은 과거 정부에 없었다.
-이른바 ‘임대차보호법’ 이전으로 돌아가보자. 이전의 세입자 권리는 어땠나?
=세입자에게는 권리라는 게 없었다. 2년 계약기간은 족쇄였다. 계약 갱신이나 임대료 등 주거권과 밀접한 결정 사항에 대해 집주인이 전권을 행사했다. 정서적인 부분까지 고려하면 세입자의 설움이 컸다. 전세든 월세든 제 가격을 냈는데도 주택 시설에 대한 문제를 집주인에게 제기할 수 없었다. 밉보이면 다음 계약 할 때 소위 “방 빼” 하면 끝이다. 임대인은 갑이고, 세입자는 을이었다.
-정부가 지난해 임대차보호법을 도입했다. 무엇이 달라졌는가?
=계약갱신청구권과 전월세상한제 도입 전에는 임대인과 임차인 간 협의를 통해 계약기간을 연장했지만, 이제는 임차인이 원한다면 4년간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다. 2021년 6월부터 임대차 신고제를 도입하면 임차인은 지역 내 임대주택 실거래 정보를 제공받아, 시의성 있는 시세 정보를 바탕으로 임대차 계약을 맺을 수 있다.
-제도 도입 이후 4개월가량 지났다. 세입자들이 피부로 느끼는 효과는 무엇인가?
=계약갱신청구권으로 세입자는 ‘2+2년’ 안정적으로 살게 되었다. 또 임대료상한제에 따라 갱신할 때 임대료는 기존 임대료의 연 5%를 상한으로 해 합의한다. 합의가 안 되면 주택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로 간다. 여기서 큰 의미가 생긴다. 그동안 세입자들은 협상 권한이 없었다. 계약갱신청구권과 임대료상한제 적용으로 이제 세입자에게도 제 목소리를 내어 협상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졌다.
-세입자 주거 안정 외에 어떤 효과를 기대하는가?
=계약갱신청구권으로 4년을 거주하게 되면 세입자는 지역에 정착할 수 있다. 그러면서 지역을 볼 줄 알고 지역 현안에도 참여할 여력이 생긴다. 그동안은 임대인이나 집주인 중심으로 목소리를 내다 보니 개발 등 집값 올리기가 주요 쟁점이었다. 살기 좋은 지역을 만들기 위해 지역에 거주하는 세입자가 제 목소리를 낼 때 풀뿌리민주주의도 싹튼다. 앞으로 2년을 한 번 더, 아이들 교육 문제를 고려해 최소 6년은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새 제도 도입 후에도 전세시장 불안이 계속되고 있다. 이는 임대차보호법의 영향이라고 볼 수 있나?
=일부 원인이 될 수는 있다. 그동안 세입자들의 평균 거주기간은 3년 6개월이었다. 이들 상당수가 이번에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했다. 신규 전세 물량이 줄면서 수요·공급 불일치가 일어났다. 여기에 정부가 투기 억제 정책을 내놨다. 은행 대출도, 1주택 비과세도, 재건축과 재개발 분양권도 모두 실거주 개념으로 정부에서 억제했다. 또한 저금리도 작용했다. 이번 전세난은 새 제도 도입 때문이라기보다 초기 억제정책, 저금리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향후 전월세 시장 전망은?
=과거 주택임대차 계약기간을 1년에서 2년으로 늘리는 법안이 1989년 12월 30일 통과되자, 그 전후로 전셋값이 반짝 상승했다. 그러나 1991년엔 상승률이 2.0%로 떨어지는 등 제도 도입 이후 오히려 안정세를 보였다. 치솟던 전월세 가격을 단숨에 잡지 못해 1990년 봄까지 전월세 가격 폭등이 유지되다가 1991년 이후 안정화한 것이다. 이번 경우에도 단기적으로 가격에 영향을 미칠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전월세 시장 안정화에 도움을 줄 것이다.
심은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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