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8일 서울 동대문구 경희대 연구실에서 김태훈 경제학과 교수가 ‘최저임금 인상의 고용 및 임금 효과’ 논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최저임금위원회는 7월 12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제13차 전원회의에서 2020년 최저임금을 8590원으로 의결했다. 올해 최저임금 8350원보다 240원(2.87%) 올렸다. 이를 놓고 노사의 반응이 엇갈리는 가운데 지난 10년 동안 최저임금 인상이 전체 고용률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일용직 노동자의 고용은 줄었지만 총소득은 오히려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김태훈 경희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런 내용을 담은 ‘최저임금 인상의 고용 및 임금 효과’ 논문을 한국노동연구원의 <노동정책 연구> 최신호에 공개했다.
7월 8일 서울 동대문구 경희대 연구실에서 만난 김 교수는 미국 위스콘신매디슨대학에서 노동경제학을 전공한 36세의 젊은 경제학자였다. 그는 이번 연구에서 2008~2018년 지역별 고용조사 미시 자료와 국가통계포털 경제활동인구조사 시·도별 고용 통계 등을 활용해 최저임금 인상의 고용 영향을 분석했다. 특정 연도의 임금 수준이 다음 해 적용될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노동자 비율(최저임금 영향률)의 변화가 고용률, 임금, 노동시간 등에 미치는 영향을 추정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최저임금 연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2018년 최저임금이 16.4% 큰 폭으로 오르면서 그 영향에 대한 사회적 논쟁과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한국 학계에는 부정적 시각을 가진 분이 많은 것 같은데, 국제적 연구의 흐름은 최저임금을 적정 수준으로 올려나가야 한다는 경제학자들이 오히려 많은 편이다. 해외 최저임금 연구 가운데 전체 고용률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는 거의 없다. 왜냐하면 전체 고용률에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영향이나 경제 전반의 여파는 없을 거라는 데 이견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내 대중 여론이나 심지어 학계에서도 최저임금 인상이 경제 전반에 미치는 여파가 크다는 이야기가 많은 것 같아서 실증 분석을 한번 해보고 싶었다. 한국은 최저임금 안팎으로 받는 노동자의 비중이 높고, 노동시장 구조도 소상공인의 비중이 크다 보니 최저임금의 영향이 미국과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는 주장도 일리 있다고 생각해서 최저임금 연구를 시작하게 됐다.
-분석 결과는 어땠나?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결과였다. 최저임금 인상은 해당 집단 전체 고용률에는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저임금 영향률이 1%포인트 상승하면 15~64세 전체 고용률은 0.036~0.203%포인트 하락했지만 통계적으로 유의미하지 않았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전체 노동자의 고용은 줄어들지 않는다는 데 이견이 없는 미국에서도 10대 노동자나 패스트푸드·레스토랑 종사자의 고용률에 대해서는 논쟁이 있는데, 한국에서는 10대의 고용률도 유의미한 변화는 없었다. 지역별 고용조사와 경제활동인구조사 자료 모두 공통적인 결과가 나왔다. 최저임금 인상 폭이 컸던 2017∼2018년으로 기간을 제한한 분석에서도 전체 고용률에 대한 유의미한 영향은 없었다.
-일용직 노동자에게 미치는 영향은 달랐던 것 같다.
=기존 선행 연구와 달리 노동자를 종사상의 지위에 따라 나눠 세밀한 차원에서 분석했더니 최저임금 인상이 미치는 영향이 다르게 나타났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상용직 노동자는 유의미한 고용 감소가 없었지만 일용직 노동자의 고용률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최저임금 영향률이 1%포인트 오르면 15∼64세 일용직 노동자의 고용률은 0.079∼0.132%포인트 떨어졌다. 2018년 최저임금 16.4% 인상으로 최저임금 영향률은 4.1%포인트 올랐는데 이는 일용직 고용률이 0.324∼0.541%포인트 떨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제가 주장하는 바가 아니라 데이터를 계량 분석한 결과다. 이 부분은 다른 선행 연구와 차별점이라고 생각한다.
“일용직 임금 상승 효과 상용직보다 커”
-일용직 노동자의 소득도 줄어들었나?
=고용률과 노동시간은 줄었지만 일용직 노동자들에게 배분되는 총급여액은 오히려 늘었다. 시간당 임금과 월 급여액의 증가분이 고용 및 노동시간 감소분보다 많았기 때문이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일용직 노동자의 임금 상승효과가 상용직보다 더 컸다. 최저임금 영향률이 1%포인트 오르면 일용직의 시간당 임금은 대체로 1.718~2.615%포인트 오르는 반면 상용직 노동자는 0.646~1.246%포인트, 전체 노동자는 0.910~1.813%포인트 오른다는 결과가 나왔다. 2018년 최저임금이 크게 오르면서 일용직 노동자의 시간당 임금은 7.3%포인트 안팎으로 올랐다. 상용직 노동자의 시간당 임금은 2.59%포인트 안팎, 전체 임금노동자는 3.76%포인트 안팎 상승했다. 일용직은 상용직보다 평균적으로 임금이 낮아 최저임금 인상의 수혜자가 될 가능성이 큰데, 고용주의 고용조정도 상대적으로 쉽기 때문에 최저임금 인상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것 같다.
-자영업자는 어떤 변화가 있었나?
=자영업자의 노동시간은 유의미하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그 이유를 추측하자면 고용주의 노동과 피고용인의 노동이 서로 보완적 성격인 경우가 많아서가 아닐까. 고용주 혼자서는 하기 어려운 노동이라는 의미다. 만약 보완적이 아니라 대체 가능한 노동이라면 피고용인을 해고하거나 고용시간을 줄이고 고용주가 더 많이 일해서 노동시간은 늘어나야 한다. 일부 인구 집단에서는 자영업자가 줄어들었다. 거기에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노동시간의 감소, 고용한 노동자에게 지급하는 급여 증가 등으로 전체 자영업자에게 귀속되는 소득이 줄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번 연구 결과를 최저임금 인상의 인과적 영향으로 봐도 될까?
=순수한 최저임금 인상의 인과 효과를 추정하려면 충족해야 할 조건이 많다. 예를 들어 정부가 고용시장 대책을 내놓았다든지 정책을 펼쳤다면 최저임금의 영향이 완화돼 나타날 수 있다. 그렇다면 제 연구 결과는 순수한 효과가 아니라 정책 대응의 효과일 수 있다. 또 한국에서 최저임금을 안 지키는 사업장도 적지 않을 수 있어 연구 결과를 해석하는 데 주의할 필요가 있다.
-연구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
=한 가지 아쉬운 건 국내 데이터가 좋지 않다는 점이다. 정부와 공공기관에 좀 더 많은 데이터를 공개해달라는 이야기는 꼭 하고 싶다.
-최저임금은 어떻게 올리는 게 좋을까?
=최저임금을 올려 저임금 노동자들이 임금을 더 받아 불평등을 줄일 수 있으면 좋지만, 너무 큰 충격을 주는 방식은 신중해야 하다. 고용이 유지된 노동자의 소득이 늘어나는 긍정적 효과는 있지만, 일용직 노동자의 고용률과 전체 자영업자에 배분되는 소득이 감소하는 등 부정적 효과도 있기 때문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 급격한 인상은 여러 차원에서 상충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고, 경제 주체들의 다양한 대응으로 정부에서 미처 예상하지 못한 부작용을 야기할 수 있다.
“계량 분석 모델 이용해 직접 확인”
-논쟁이 뜨거운 사안이라 부담스럽지 않았나?
=최저임금에 대한 1세대 연구의 대다수가 이뤄진 미국에서도 최저임금 논쟁이 뜨거웠던 적이 있다. 최저임금을 올리면 전체 고용률은 변화가 없지만 10대 노동자의 고용은 감소한다는 연구 결과가 다수였던 1990년대 초, 앨런 크루거 교수와 데이비드 카드 교수가 10대의 고용률에도 부정적 영향이 없다는 실증연구 분석을 발표했다. 그걸 계기로 최저임금 연구의 흐름이 완전히 달라졌는데, 크루거 교수는 그 뒤에 대학 동료들과 사이가 안 좋아졌다고 하더라. 그렇지만 계량 분석한 결과를 내면 제가 거짓말하는 것도 아니고 결과를 왜곡시키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연구에 대한 부담은 없었다.
글·사진 원낙연 기자
“최저임금 1만 원 공약 못 지켜 송구”소득주도성장 포기는 아냐
“이번 최저임금 결정이 소득주도성장의 폐기 내지 포기를의미하는 것으로 오해되지 않았으면 한다. 이러한 오해는소득주도성장이 곧 최저임금 인상만을 의미하는 것으로 좁게해석하는 편견에서 비롯된 것이다.”
2020년 최저임금 시급이 2019년보다 240원 오른 시급 8590원으로 의결됐다. 최저임금위원회는 7월 12일 정부세종청사 최임위 전원회의실에서 전원회의를 열고, 2.87% 올린 8590원을 제시한 사용자 위원 안과 6.3% 올린 8880원을 제시한 근로자 위원 안을 놓고 표결을 벌인 끝에 15 대 11(기권 1)로 사용자 쪽 안을 최저임금 시급으로 결정했다. 이는 2019년 8350원에서 240원이 오른 것으로, 월급(209시간) 기준으로는 179만5310원에 해당한다.
문재인정부가 들어선 뒤 최저임금 인상률은 16.4%(2018년), 10.9%(2019년) 등 2년 동안 가파르게 오르다가 3년차엔 2.87%로 떨어졌다. 박준식 최임위원장은 회의 뒤 인터뷰에서 “최근 경제사회 여건에 대한 우리 스스로의 정직한 성찰의 결과라고 본다. 공감대가 반영된 것이 아닌가 한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문재인 대통령이 최저임금 소폭 인상으로 ‘2020년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이 무산된 데 대해 공식 사과했다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은 7월 12일 오전 열린 청와대 회의에서 이번 최저임금 결정에 대해 “(취임 뒤) 3년 안에 최저임금 1만 원(을 만들겠다던) 공약을 달성할 수 없게 됐다. 경제환경, 고용상황, 시장의 수용성을 고려해서 최저임금위원회가 고심에 찬 결정을 내렸지만 어찌 됐든 대통령으로서 대국민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된 것을 매우 안타깝고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고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이 7월 14일 춘추관 브리핑에서 전했다. 김 실장은 “문 대통령 지시에 따라 춘추관을 찾아뵙게 됐다. 대통령 비서로서 대통령의 공약을 이행하지 못하게 된 점을 거듭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보완책 마련하고 충격 최소화 위해 노력
김 실장은 “지난 2년 최저임금 인상구조는 고용계약 안에 있는 분들에게 긍정적이었고, 저임금노동자의 비중이 감소하고 상시근로자 비중이 늘어나는 등 고용구조 개선도 확인됐다”면서도 “표준적인 고용계약 틀 밖에 계신 분들, 특히 임금노동자와 다를 바 없는 영세자영업자와 소기업에 큰 부담이 되었다는 점을 부정 못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정부가 일자리 안정자금, 두루누리 사업, 건보료 지원 등을 통해 보완대책을 마련하고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부족한 점이 없지 않았다고 인정한다”며 “최저임금 정책이 이른바 ‘을과 을의 전쟁’으로 사회갈등 요인이 되고 정쟁의 빌미가 된 것은 매우 가슴 아픈 상황이라는 점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김 실장은 다만 “이번 최저임금 결정이 소득주도성장의 폐기 내지 포기를 의미하는 것으로 오해되지 않았으면 한다”며 “이러한 오해는 소득주도성장이 곧 최저임금 인상만을 의미하는 것으로 좁게 해석하는 편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청와대는 ‘2020년 최저임금 시급 1만 원 달성’ 공약을 지키지 못한 대신 사회안전망 강화 등으로 간접임금을 보전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실장은 “정부는 최저임금 인상이 시장의 기대를 넘어섰다는 국민의 공감대와 동시에 생활비용을 낮추고 사회안전망을 펴 포용국가를 지향하는 것이 더욱 필요해졌다는 국민의 명령을 반영하겠다”고 말했다.
원낙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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