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가 7월 4일 서울 중구 포스트타워에서 ‘최저임금, 국민에게 듣는다’ 주제로 연 연속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며 박수를 치고 있다.│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
문재인정부는 함께 잘살기 위한 성장전략으로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를 추진하고 있다. 가계의 소득을 늘려 내수를 진작하고 성장을 도모하는 소득주도성장은 이전 정부와 차별화되는 문재인정부의 가장 특징적 정책 비전이다. 소득주도성장을 둘러싸고 지난 2년 동안 정치권, 언론, 학계에서는 치열한 공방을 펼치고 있다. 이 가운데 가장 논란이 큰 최저임금에 대해 이해관계자가 직접 의견을 이야기하고 전문가들이 보완 방안을 모색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산하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가 7월 4일 서울 중구 포스트타워에서 ‘최저임금, 국민에게 듣는다’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홍장표 위원장은 인사말에서 “지난 2년 동안의 논란을 돌이켜보면 물가 인상, 고용 악화, 분배 악화 등 우려했던 부작용 가운데 현실에서 나타나지 않은 것도 있고, 나타났지만 우려가 지나친 것도 있었다”고 말했다. 물가 폭등에 대한 우려와 달리 2018년 물가상승률은 2017년의 1.9%보다 낮은 1.5%였고, 올해 물가수준도 안정세를 보인다는 것이다. “2018년 고용 증가폭이 둔화하면서 도소매업이나 음식료업 등 일부 업종에서 부작용이 있었지만 올해 들어 취업자 증가세가 상반기에 20만 명대를 유지하면서 2018년과 다른 흐름을 보여주고 있다”며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대란을 초래했다는 비판은 잦아들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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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공과 객관적 평가해야”
홍 위원장은 “모든 정책이 그렇듯 최저임금 역시 공과가 있다. 최저임금이 물가 폭등, 고용대란, 분배 악화를 유발하는 만악의 근원이라는 주홍글씨를 새기기보다는 최저임금의 공과를 객관적으로 평가해야 한다”며 “저임금 노동자의 소득 안정도 중요하고, 자영업의 비용 부담을 덜어드리는 것도 중요하다. 양자 간의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지점이 어디인지 찾기 위해 더 많은 목소리를 듣고 지혜를 모으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날 토론회는 발제자들에 앞서 최저임금의 주요 이해관계자인 아르바이트 학생과 자영업자를 대표해 두 시민이 의견을 발표했다. 자신을 시급 8350원을 받고 일하는 아르바이트 학생이자 “이 토론회장에서 주위에 최저임금 받고 일하는 당사자가 나만큼 많은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소개한 문서희 씨는 “최저임금을 받는 사람은 최저임금 이상의 임금을 받기 위해 사용자 측과 교섭조차 하기 어려운 환경에 놓여 있다. 최저임금이 오른다는 건 최저임금을 받는 당사자들의 유일한 전방위적 교섭행위”라고 주장했다. 또 “여성, 청년, 청소년, 노인을 고용하는 사장님에게 말하고 싶다. 당신은 이들의 용돈을 챙겨주는 사람이 아닌, 이들의 노동에 대한 정당한 값어치를 지불해야 하는 의무를 가진 사람이다. 인건비가 부담된다고 다른 사람의 생계까지 흔들어버릴 수는 없지 않은가”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25년째 백반집을 운영하는 이근재 씨는 “학생이 생계형 아르바이트라고 설명했는데, 우리 소상공인은 생존형 업소”라고 반박했다. 그는 “식당을 시작했을 때 직원 여섯 명을 썼는데 2005년부터 힘들어 네 명으로 줄였고, 지금은 한 명을 더 줄였다. 인건비가 올라 어려움을 호소하는데 정부는 인건비는 문제가 아니라고만 한다. 소득주도성장의 과실이 돌아올 것이라고 얘기하는데 장사하는 입장에서 답답하다”며 “현재 식당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평균적인 임금 시세는 240만∼250만 원이 된 것이 현실이다. 돈 벌려고 장사하는데, 돈이 벌리기는커녕 운영 자체를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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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차등화 문제도 날 선 대립각
정한울 한국리서치 전문위원이 발표한 ‘최저임금에 대한 인식 조사 결과’에서도 저임금 노동자와 자영업자의 온도 차는 극명하게 드러났다. 6월 25∼27일 전국 임금노동자 500명, 자영업자 3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임금노동자의 62%는 내년도 최저임금을 인상해야 한다고 답했다. ‘1% 이상 5% 미만 인상’을 고른 응답자가 31%였고, ‘5% 이상 10% 미만 인상’ 응답자는 18%, ‘10% 이상 인상’ 응답자는 13%였다. ‘내년도 최저임금을 동결해야 한다’고 답변한 임금노동자는 37%였다. 임시·일용직 노동자와 10명 미만 소규모 사업체 노동자의 동결 응답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반면 자영업자 가운데 동결해야 한다는 응답자는 61%였다. ‘1% 이상 5% 미만 인상’ 응답자는 20%, ‘5% 이상 10% 미만 인상’ 응답자는 8%, ‘10% 이상 인상’ 응답자는 8%를 차지했다. 올해 최저임금에 대해서도 임금노동자는 절반에 가까운 49%가 ‘적당한 수준’이라고 답했고 ‘높은 수준’이라고 답한 응답자는 28%에 그친 데 반해, 자영업자는 절반이 넘는 56%가 ‘높은 수준’이라고 답해 인식 차를 드러냈다.
최저임금 차등화를 놓고도 양측은 대립각을 세웠다. 정원석 소상공인연합회 전문위원은 기업 규모에 따라 최저임금을 차등화할 것을 주장했다. “9명 이하 사업체에 최저임금 미만 노동자의 3분의 2가 몰려 있다. 이들 사업체는 투입-산출의 결합 형태가 다른 기업 부문과 달라 인건비의 경직성이 크다. 소상공인이 저임금 인상에 자신의 노동시간을 늘리거나 폐업하는 방식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나현우 청년유니온 기획팀장은 “고용·지급 능력 등을 이유로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은 최저임금을 통해 보장받아야 할 ‘기본적 생활’이라는 평범한 삶을 누릴 권리를 업종, 연령, 사업장 규모, 국적 등을 이유로 차별하겠다는 것이고, 결국 최저임금이 지향하는 ‘모두의 평범한 삶을 위한 최저선’이라는 제도적 지향을 무력화하는 것”이라며 최저임금 차등화를 반대했다.
“자영업자 영업비용 낮출 체계 구축을”
최저임금 인상을 놓고 저임금 노동자와 영세 자영업자가 날 선 공방을 펼치는 와중에도 양자가 대립·갈등할 것이 아니라 공존·연대로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문성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은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는 절박하고, 소상공인과 중소기업들은 절실한데 절박한 분들과 절실한 분들이 만나 대립하는 게 맞는가 하는 생각을 한다. 힘을 합쳐서 구조적 문제에 도전해야 할 소상공인과 저임금 노동자가 대립하고 갈등하는 것이 우리가 극복해야 할 가장 시급한 과제”라며 “올해 최저임금 논의는 몇 퍼센트를 올릴 것인가에 대한 대립보다도 구조적 문제를 논의하는 첫출발이 됐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홍 위원장은 “저임금 노동자의 소득 안정도 중요하고 자영업의 비용 부담을 덜어드리는 것도 중요하다. 양자 간의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지점이 어디인지 찾자”고 제안했다.
김성희 산업노동정책연구소 소장은 최저임금 노동자와 영세 자영업자의 공존과 연대를 위한 방안으로 ‘임금노동에서 빈곤을 해결하는 수단을 영세 자영업으로 확장해서 적용하는 모델을 구축할 것’을 주장했다. 그는 “생존의 벼랑에 선 영세 자영업자들이 최저임금의 높은 인상에 반대하는 이유는 모든 게 최저임금 탓이 아니라 다른 수단이 제어 불가능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영업비용 증가세를 낮출 임차료 상한, 카드수수료 인하, 인건비 증가에 따른 지원금(일자리 안정자금) 등은 속도나 폭이 제한적인데, 자영업의 발목을 잡는 기타 비용 가운데 갑을 관계에서 파생된 측면을 제어할 확실한 방도는 아직 제시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김 소장은 “비용을 전가하는 구조를 제어할 장치와 감독 체계를 구축하고, 준(準)종속적 노동자로서의 보호망을 함께 마련하는 것이 자영업과 공존을 위한 방안”이라며 “임금노동 중심의 해법에서도 소외되는 불안정 노동의 다층·다양한 영역의 하나로 영세 자영업을 포괄해 불안정 소득자 공존의 해법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정해구 정책기획위원장이 축사를 하고있다.│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
“하도급 거래와 프랜차이즈 시스템 문제”
지민웅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최저임금 상승이 자영업자에게 유독 부담이 큰 이유를 한국의 하도급 거래와 프랜차이즈 시스템의 특수성에서 찾았다. 공고화된 수요 독점적 구조에서 하청기업은 납품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납품단가를 계속 낮춰야 하고, 결국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 등 노동 절약적 전략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인건비 상승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원청기업이 자율적으로 하청기업과 가맹점을 지원한 포스코, SK하이닉스, 현대자동차 등의 사례를 소개했다. 그는 자율적인 지원 사례가 정부와 사회의 관심이 유지되지 않는 한 지속·확산하기 어려우므로 원청기업과 하청기업, 프랜차이즈 본사와 가맹점 간 이윤창출 구조가 결합하는 협력과 공존의 시스템을 개발·확산하기 위한 정부의 적극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토론에 나선 양옥석 중소기업중앙회 인력정책실장도 “중소제조업의 44.5%가 모기업 납품에 의존하는 수급기업”이라며 “납품단가에 인건비 인상분이 반영되는 등 적정한 납품단가 보장이 중소기업에 매우 중요한 사안”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정부의 적극적인 추진으로 2018년 하도급법이 개정돼 노무비 인상에 따른 납품단가 조정 협의권이 생겼지만, 실제 기업이 조정을 신청해야 하는 사후적인 제도로서 신원 노출과 향후 계약관계 등의 부작용을 걱정하는 현장에서는 활용이 매우 어려운 상황”이라고 호소했다.
유정엽 한국노총 정책실장은 “소상공인의 실질적 지원 대책과 협상력 강화 등 제도 개선을 통해 저임금 노동자와 소상공인이 ‘더불어 함께 사는 경제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며 불공정거래 근절과 도급 구조 개선을 강조했다. 이를 위해 개선해야 할 과제로 △납품단가 조정협의제 개선 △초과이익공유제 △대기업의 상생협력기금 조성 △표준 하도급계약서 작성 의무화 △보복 금지를 위한 원청기업 처벌 강화 △원청대기업별 수탁기업협의회 구성 의무화 △프랜차이즈 업종 영업여건 개선 △가맹점·대리점 단체 협상력 강화 등을 제시했다.
원낙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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