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디자인 진흥에 관한 법률 제10조 제2호는 다음과 같이 명시돼 있다. “연령, 성별, 장애 여부, 국적 등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들이 안전하고 쾌적하게 환경을 이용할 수 있는 디자인을 지향한다.” 이 지향점을 담은 환경 설계가 ‘유니버설 디자인(Universal Design)’이다. 장애인이 일상생활에서 부딪히는 어려움을 없애는 ‘배리어 프리(Barrier Free)’ 개념과 혼동되기도 하는데 유니버설 디자인은 좀 더 광의의 개념이다. 장애의 유무뿐 아니라 연령과 성별, 국적과 언어, 능력과 개성의 차이와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공평하고 사용하기 편리한 환경을 만드는 게 유니버설 디자인이다.
공간을 복지하다
이 개념을 처음 제시한 건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학의 로널드 메이스 교수다. 그는 뇌성마비 장애를 갖고 있었으나 ‘장애인을 위한 디자인’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디자인’을 꿈꿨다. 누군가를 위한 ‘특별한 배려’가 아니라 ‘이미 배려받고 있는 사람과 아직 배려받지 못한 사람이 있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배려의 사각지대를 보완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대다수의 물건은 오른손잡이를 기준으로 고안되어 있다. 오른손잡이는 이미 배려를 받고 있는 셈이다. 왼손잡이를 위한 디자인은 기울어진 배려의 균형을 맞추는 ‘모두를 위한 디자인’이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1989년 장애인복지법이 제정된 이래 1998년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보장에 관한 법률이 생겼고, 2006년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 2012년 보행안전 및 편의증진에 관한 법률에 이어 2016년에는 공공디자인의 진흥에 대한 법률이 제정됐다. 이에 따라 2008년 경기 화성시가 지방자치단체 최초로 유니버설 디자인 조례를 제정했다. 이후 14개 지자체가 유니버설 디자인을 도입하고 있다.
화성시의 경우 조례 제정 이듬해인 2009년 유니버설 디자인을 적용한 시립능동어린이집이 문을 열었다. 0세부터 5세까지의 어린이가 생활하는 이곳은 설계 단계부터 아토피를 예방하는 황토벽돌을 사용했고,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전등을 설치했다. 교사들이 이용하는 교사실과 보일러실, 창고에는 손잡이가 달린 여닫이문을, 아이들이 이용하는 출입문은 턱이 없고 손잡이가 아래에 달린 미닫이문을 설치했다. 같은 해 10월 향남택지지구에 문을 연 남부종합사회복지관도 ‘차별 없는 디자인’을 적용해 출입문의 턱을 없애고 터치형 슬라이딩 출입문, 속도를 조절한 자동문 등을 설치했다.
이미 한국은 65세 이상 노인인구 비율이 14.02%로 고령사회로 진입했고 장애인 인구는 전체 인구의 5%다. 다문화 가족과 국내 체류 외국인이 늘어나면서 사회구성원들이 ‘공평하고 편리하게’ 공공시설에 접근해 행정서비스를 받으려면 ‘모두를 위한’ 디자인이 필수다. 행정안전부에서 발행한 <공공청사 유니버설 디자인> 안내책자에 따르면 공공건물을 6개 공간과 시설로 나누었다. 접근, 진입, 이동, 위생, 민원공간, 안내표지로 구분해 각 시설이 유니버설 디자인의 기본 가치를 담을 수 있도록 설계 방향을 제시했다.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학이 제시한 유니버설 디자인의 기본 가치는 일곱 가지다. 첫째 공평한 사용, 둘째 사용의 융통성, 셋째 사용자가 누구든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디자인, 넷째 필요한 정보의 인지, 다섯째 실수에 대한 관대함, 여섯째 적은 신체적 노력, 일곱째 접근과 사용을 위한 적정 크기와 공간이다. 먼저 접근의 경우, 우산을 쓴 사람이나 휠체어, 유모차를 이용하는 이들도 통행에 불편함이 없도록 유효 폭을 확보하고 높이 차이를 없애야 한다. 또 모든 보행로는 차량 동선과 분리하고 배수로를 없애 유모차나 휠체어의 바퀴나 지팡이의 끝부분이 끼지 않도록 한다.
2017년 ‘공공공간 유니버셜 디자인 공모사업’에 선정돼 유니버설 디자인의 우수사례로 꼽히는 서울 성동구보건소는 장애인 주차장을 건물 출입구와 가장 가까운 곳에 설치하고 보행로 주변의 차량 배기구가 보행자에게 향하지 않도록 전면 주차를 원칙으로 했다. 주변 공간은 금연구역으로 지정해 동행하는 어린이나 임산부, 장애인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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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년 ‘공공공간 유니버설 디자인 공모사업’에 선정된 서울성동구보건소 내부 모습
2 3 성동구보건소 입구에는 전체 안내도와 화장실 입구가 한눈에 보인다.
4 엘리베이터의 버튼에 크기와 색깔을 조정해 보기 편하게 만들었다.
5 6 유니버설 디자인이 적용된 픽토그램 ⓒC영상미디어
공공기관에 들어올 때는 누구나 알 수 있는 곳에 주 출입구를 두고 보행로와 출입구 사이에 경사나 턱을 없애도록 한다. 되도록 주 출입구의 문은 자동문으로 설치하고, 입구에 들어오면 시설물을 한눈에 알 수 있도록 로비에 안내데스크나 종합안내판을 세워둔다. 이때 안내판은 노인이나 청각장애인을 배려해 크고 명확한 글씨체를 쓰고 외국인을 위해 그림문자인 픽토그램을 넣거나 외국어 표기를 병기한다. 정부서울청사의 경우 계단으로 통하는 문은 문이 열리는 만큼의 공간을 노란 실선으로 표시해 계단을 이용하는 사람들과 부딪힘을 방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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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경기 김포시 ‘찾아가는 유니버설 디자인 현장체험 교육’ 참가자들이 이동 약자 체험을 하고 있다. ⓒ김포시청 2 서울시는 장애인 화장실이 아니어도 어르신이나 임산부가 잡고 일어서기 쉬운 손잡이를 화장실문에 설치했다. ⓒ서울시 3 화성시는 유니버설 디자인을 전국 최초로 공공시설에 적용시켰다. ⓒ화성시
이동공간인 계단과 엘리베이터에도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계단의 각 부분은 쉽게 식별할 수 있도록 바닥포장재의 색상과 명도, 채도와 질감을 다르게 한다. 또 각자의 신체조건을 배려해 손잡이는 2단으로 설치한다. 엘리베이터는 건물의 규모와 상관없이 누구나 층간 이동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설치를 권장한다. 버튼의 크기를 키우고, 높이를 낮추는 것도 다양한 이용자를 위한 배려다. 버튼에는 점자판도 함께 설치하고 음성안내도 포함한다. 화장실은 위치를 바로 알 수 있게 출입구 옆 벽면의 1.5m 높이에 남녀를 구분해 촉지도식 안내표지를 설치한다. 저시력자를 위해 색깔을 구분해주는 것도 좋다. 화장실 안의 거울은 휠체어 사용자를 감안해 높이를 수정한다. 내부에는 위급상황을 알리는 안심 비상벨, 영유아 임시의자, 기저귀 교환대와 세면대 손잡이 등을 설치한다.
유니버설 디자인은 건축과 디자인에서 처음 시작됐지만 현재는 공공디자인으로, ‘공간복지’의 개념으로 발전했다. 설계부터 ‘모두’를 염두에 둔 디자인은 모든 사람을 동등하게 대하는 ‘마음의 디자인’이라고도 불린다. 미국의 경우, 1960년대 베트남 전쟁으로 사상 유례없는 사상자와 부상자가 발생하자 이들을 사회로 복귀시키기 위한 움직임이 있었는데 이를 미국형 유니버설 디자인의 태동으로 본다. 같은 시기 북유럽은 급속한 고령화사회로 들어섰는데 이 고령 사용자들이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고 스스로 일상생활을 할 수 있도록 유니버설 디자인이 도입됐다. 최근에는 유니버설 디자인이 복지적 가치로 재평가되고 있다. 휠체어를 탄 사람도 이용할 수 있는 버스, 키가 작아도 잡을 수 있는 지하철 손잡이, 손아귀 힘이 약한 사람을 위한 레버형 손잡이 등이 그렇다.
더불어 사는 사회를 향한 ‘통합의 기능’을 발휘하는 유니버설 디자인은 나와 남의 경계를 허문다. 장애와 비장애 사이에는 벽이 없으며, 노화가 남의 일이 아닐 수 있음을 자각하는 것이다. 노년의 내가 휠체어를 타고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디자인, 노안으로 시력이 약해져 글씨를 읽을 수 없게 될 나를 위한 디자인이 유니버설 디자인이다. 결국 ‘모두’이자 ‘나’를 위한 디자인이다.
유슬기│위클리 공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