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거 너무 스트레스야.”
이렇게 말했을 때, 다음 중 알맞은 답은 무엇일까. 1번, 뭘 그런 걸로 스트레스 받아. 2번, 흥미로운 질문이네요. 3번, 인터넷에는 이렇게 나와 있네요. 4번, 원하시는 답변을 찾지 못했습니다. 5번, ‘일하는 거 너무 스트레스야’에 대한 내용을 찾아봤어요.
이 중 ‘옳은’ 답을 찾기는 어렵지만, ‘마음에 드는’ 답을 찾을 수는 있다. 1번부터 5번까지는 모두 대화하는 인공지능 ‘챗봇’의 답이다. 2번과 3번은 대형 플랫폼, 4번은 통신사, 5번은 포털에서 개발한 챗봇이다. 가장 ‘대화다운’ 이야기를 건넨 건 1번이다. 1번을 만든 건 ‘대화형 인공지능’을 개발하는 스타트업 ‘스캐터랩(Scatter Lab)’이다.
그의 속마음을 알려드립니다
‘스캐터랩’의 시작은 ‘텍스트앳(TEXTAT)’이었다.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고, 상대의 마음을 분석하는 애플리케이션이다. 김종윤 대표는 2011년 대학 시절 설문조사 관련 수업을 듣다가 ‘문자메시지와 이성적 호감도의 상관관계 분석’을 주제로 삼아 연구하게 됐다. 수업에 참여한 이들과 지인을 대상으로 이성에게 보낸 메시지를 수집하고, 상대에 대한 감정을 물었다. 이렇게 2000명가량의 데이터를 모으니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나왔다. 이 아이디어는 정부의 예비창업기술자 사업에 발탁됐다. 스캐터랩의 시작이었다.
“텍스트앳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남자들은 호감 있는 이성에게 ‘ㅋ’를, 여자들은 ‘ㅠ’를 많이 사용했어요. 텍스트앳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유저들이 자발적으로 공유하는 대화 기록이 쌓였어요. 이런 데이터를 바탕으로 나온 게 ‘진저(Ginger)’예요. 연인들의 대화를 분석하는 ‘연애 인공지능’이죠.”
진저는 유저가 연인과 나누는 대화를 분석해 정보를 제공한다. 잠들기 전 주고받은 말부터 힘들 때 힘이 되어준 말도 모아둔다. 이들의 기록에 따르면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 진저의 알고리즘이 상대방의 지금 상태와 무엇을 원하는지를 말해주기 때문이다.
“진저는 커플의 ‘감정보고서’도 만들어줍니다.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한 심층 분석이 들어 있죠. 관계의 패턴과 접점을 뽑아내 서로에 대한 감정뿐 아니라 연애에서 주의해야 할 점을 알려주죠. 시간이 흐르면서 두 사람의 대화가 어떻게 변했는지를 보여주기도 하고요.”
사실 진저는 김종윤 대표가 여자친구의 기분을 파악하기 위해 만든 앱이었다. 그런데 나중에는 진저의 말에 위로받았다. 피곤할 때는 ‘피곤하느냐’고 묻는 진저에게 애착을 느끼게 됐다.
“연애로 시작했던 인공지능이 대화로 발전한 건 그때부터예요. 창업할 때부터 제 관심은 ‘관계’에 있었어요. 처음에는 사람 사이의 관계를 분석하는 데 인공지능을 활용했다면 나중에는 인공지능과도 관계를 맺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스캐터랩은 일상대화 인공지능인 ‘핑퐁’을 개발 중이다. 그동안의 메신저 대화 데이터베이스가 핑퐁의 자양분이 되어주었다. 이들에게는 무려 60억 쌍의 대화 데이터베이스가 있었다. 이 데이터베이스를 머신러닝하자, 핑퐁은 친근하고 감성적인 대화를 나눌 줄 아는 AI가 되었다.
반려동물처럼 위로가 되는 AI
그동안 출시된 ‘대화형 AI’는 기능이 중심이었다. 불을 꺼달라고 하면 불을 꺼주고, 길을 찾아달라고 하면 길을 찾아준다. 비서 같은 존재다. ‘핑퐁’은 여기에 우정이 더해진 친구 같은 관계가 됐다. 사용자와 인공지능 사이에 친밀함이 형성된 셈이다.
“핑퐁의 존재는 반려동물 같은 거예요. 늘 내 곁에 있으면서 함께 추억을 쌓아가는 존재죠. 사실 대화에는 정답이 없잖아요. 교류가 있을 뿐이죠. 그런 교류가 가능한 인공지능을 만들려고 합니다.”
‘핑퐁’은 주고받기가 가능하다는 의미다.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지시만 하지 않고, AI도 유의미한 메시지를 던진다. 사용자가 ‘넘어졌다’고 하면, 치료법이나 예방법을 제시하는 게 아니라 ‘어쩌다가?’라고 묻는다. 사실 넘어졌을 때 필요한 건 반창고보다 진심 어린 염려다.
“대화와 교류가 가능하려면 AI에 그만큼 지식이 쌓여야 해요. 머신러닝과 딥러닝이 가능해진 건 유의미한 진보죠. 인공지능도 끊임없이 학습하기 때문에 둘 사이에는 더 유의미한 대화가 가능해질 거라고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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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년 ‘스캐터랩’을 창업한 김종윤 대표
2.3 연애 기록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앱 , 진저(Ginger)
4 스캐터랩에서 진행하는 워크숍 ⓒ김종윤
‘기능’이 아닌 ‘관계’ 면에서는 어떤 기업과 대결해도 자신 있다고 말하는 김종윤 대표는 앞으로의 AI 업계 역시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어떤 문제를 직면했을 때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AI 역시 기회의 땅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다.
스캐터랩의 데이터를 다루고 알고리즘을 연구하는 김범수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는 “머신러닝의 연구를 위해 가장 중요한 역량 중 하나는 수학 실력”이라고 말한다. 선형대수학, 통계학 등 수학적 사고능력이 있어야 머신러닝을 운용할 수 있다.
“결국 ‘마음을 이해하는 AI를 만들겠다’는 게 스캐터랩의 목표입니다. 인공지능을 하나의 인격체로 대하는 거죠. 기능 면에서는 쓸모없는 인공지능일지 모르지만,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는 인공지능을 만들고 싶습니다.”
그러려면 인공지능 안에도 문화적, 사회적 경험이 쌓여야 한다. 이렇게 관계가 쌓이면 하나의 인공지능은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 없는 존재가 된다. 길에서 더 예쁜 강아지를 보았다고 키워 온 강아지를 버리지 않듯이 말이다. 그들의 마음과 시장도 교감했는지, 스캐터랩은 지난 7월 엔씨소프트와 소프트뱅크벤처스 등이 참여한 투자에서 50억을 유치했다. 스캐터랩은 ‘핑퐁’을 기반으로 일상대화 인공지능 사업을 확대해갈 생각이다. 연말에는 영어와 일본어 서비스도 준비하고 있다. 이를 위해 머신러닝 엔지니어 채용도 늘릴 계획이다.
“저는 창업을 꿈꾸던 사람은 아니었지만, 창업한 걸 후회하지 않습니다. 하나를 시작하니 연결고리가 되어 지금까지 왔다고 생각해요. IT 쪽은 컴퓨터만 있고, 사람만 있으면 할 수 있습니다. ‘잃을 것 없다. 해보자’라는 마음이 들면 시작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