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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비밀의 숲 2>
많은 화제를 뿌렸던 TV드라마 <비밀의 숲> 시즌2가 끝났다. 시즌1에 비해 화제성이나 호평도 적었지만 이 드라마를 지지하는 쪽도 많았다. 꽤 무겁고 어려운 주제를 밀어붙인 작품으로 기억되기 때문이다. 물론 전개가 지지부진하다는 비판도 있었고 시즌1만큼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얘기도 있었다. 하지만 그 이유는 시즌1과 시즌2가 겨냥한 목적 자체가 달랐기 때문이라고 본다.
“침묵을 원하는 자, 모두가 공범이다.” <비밀의 숲> 시즌2는 서울서부지검 차장검사 이창준의 목소리로 시작된다. 시즌1은 선과 악의 구도가 명확했다. 아니, 명확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다 후반부에서 반전에 반전이 거듭되고 악의 중심축이라 여겨지던 이창준이 오랫동안 준비한 폭로가 밝혀지면서 황시목과 한여진이 다음 무대의 진정한 주인공으로 자리 잡았다. 시즌2는 그로부터 3년의 시간이 흐른 시점에서 자욱한 안개와 함께 시작된다.
돌아보면 <비밀의 숲> 시즌1은 ‘정의’에 대한 이야기였다. 황시목은 이창준의 큰 그림 아래에서 비교적 자유롭게 일할 수 있었고 자신의 권한으로 팀을 구성하고, 그 팀을 운영하며 기간 내에 모든 조사를 마쳤다. 이창준은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마지막 편지에서조차 끝까지 ‘정의’를 강조했다.
지난 20년 동안 한국 사회는 ‘정의란 무엇인가’를 묻는 시간을 보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법적으로 여전히 진행형인 질문이기도 하다. <비밀의 숲> 시즌1은 바로 이런 갈등, 사회적 정의와 법적 정의가 충돌하는 지점의 갈등을 해부하려고 했다. 드라마가 사회의 반영이라면, <비밀의 숲> 시즌1은 한국 사회에서 특히 ‘정의’가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강조했다.
정의와 윤리, 비슷하지만 다른 이름
그리고 3년이 지났다. <비밀의 숲> 시즌2에는 시즌1과 같은 극적인 장면들은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시사주간지 기획기사를 읽는 것 같은 등장인물들의 복잡한 인맥과 상황적 관계 등이 몰입을 방해했다. 그러나 이것이 매우 중요한 핵심이었다. <비밀의 숲> 시즌2는 ‘윤리’에 대한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정의’와 ‘윤리’는 비슷하지만 다른 개념이다. ‘정의’의 가치는 결과보다는 과정에 있다. 그런데 ‘윤리’란 바로 과정 자체의 이름이다. 비윤리적인 방식으로 정의를 구현하면 그것은 과연 정당화할 수 있을까? <비밀의 숲> 시즌1의 이창준은 바로 이 질문의 바로미터고 이에 대해 황시목은 ‘시대가 낳은 괴물’이라고 단칼에 평한다. 하지만 만약 그게 우리라면 이렇게 쉽게 단정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을 스스로 하게 되는 것이 바로 ‘윤리’, 관습적이면서 비가시적인 영역, 다시 말해 ‘문화적인’ 영역이다.
여기서 윤리는 ‘개인의 윤리’이자 ‘직업윤리’다. 시즌1에서 협력했던 황시목과 한여진은 검경 수사권 조정 문제를 사이에 두고 갈등한다. 그런데 이 둘은 개인의 윤리와 직업적 윤리를 일체화하는 사람들이다. 경찰과 검찰은 그래야만 하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둘의 경력이 쌓이고 인정받고 승진할수록 각자의 윤리관도 시험받는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인물이 동부지검장 강원철이다. 황시목이 매우 이상적인 캐릭터라면 강원철은 매우 현실적인 캐릭터다. 그래서 오히려 이 드라마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시즌1과 시즌2 내내 보편적인 수준에서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는 윤리의 마지노선을 상기시킨다. 우리는 황시목처럼 살 수는 없어도 강원철 혹은 한여진처럼 살아갈 수는 있다. <비밀의 숲>에서 늘 강조되는 건 밥 한 끼, 사인 한 번으로 모든 비윤리적인 일이 시작된다는 점이다. 이 드라마는 그 모호한 영역을 어떻게 경계 할 것인가 질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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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비밀의 숲>
일하는 사람들, 혹은 일이 되는 과정의 이야기
그런데 또한 <비밀의 숲>은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전 시즌을 통틀어 드라마가 매우 신경 써서 보여주는 것은 ‘일하는 과정’ 혹은 ‘일이 되는 과정’이다. 경찰관이 현장이 아니라 컴퓨터 앞에 앉아 문서를 작업하고, 관련 기관에 요청을 하고, 기다리고 확인하는 일련의 과정은 단지 그들의 업무가 과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이 드라마가 강조하는 건, 실제로 일을 되게 만드는 ‘절차’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황시목은 늘 밤늦게까지 문서 작업을 하고, 한여진은 관계기관에 요청 메일을 보내고 답 문자를 확인한다.
그런데 이 ‘절차’의 영역을 흔드는 것이 비리형 청탁, 전관예우 따위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절차에 따라 일을 되게 만드려는 사람들과 전화 한 통으로 일을 되게 만드는 사람의 갈등과 경계가 <비밀의 숲>을 가르는 경계선이다. 안개의 실체다. 물론 이것은 강원철의 발언대로 참 모호한 영역이지만 엄밀히 말해 부정은 부정이고, 이런 사소한 부정이 쌓여 큰 비리로 자라는 것이 바로 ‘비밀의 숲’이라는 상징이다. 선배라서, 아는 사람이라서, 뭔가 도움을 받아서 등의 이유로 절차가 무시될 때 정의는 공허한 미사여구가 된다. 그걸 끝내 막아내는 것이 직업윤리다.
이 점에서 강원철의 마지막 모습이 묵직하게 울린다. 그는 대기업에 흔들리는 순간 자신의 지위를 내려놓음으로써 스스로의 직업윤리를 지키지만, 동시에 자신의 전관예우를 인정하고 그 길고 긴 그림자를 성찰하기로 결정한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지만, 또한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우리는 모두 미약한 개인이다. 내게는 힘이 없고 권한이 없다. 그런데 영혼도 양심도 없는 건 아니다. 다만 침묵하는 것이 더 쉽고 안전하기 때문에 침묵하기를 선택한다. 드라마는 말한다. ‘침묵을 원하는 자, 모두가 공범이다.’
한여진과 강원철의 결정을 보면서 시민으로서 양심과 직업인으로서 양심을 새삼 깨닫는다. 우리가 매 순간 내리는 결정이 옳은 쪽에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기계적 중립성이나 정의를 지양하고 이성적 합리성과 양심적 온정의 무게중심은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비밀의 숲> 시즌2가 던지는 질문은 바로 이런 것들이다. ‘정의’와 ‘윤리’가 ‘일하는 사람들’과 결합되는 이유다. 그 둘은 결코 분리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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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우진_ 음악평론가. 미디어 환경과 문화 수용자들의 라이프스타일 변화에 특히 주목하고 있다. <청춘의 사운드> <대중음악의 이해> <아이돌: H.O.T.부터 소녀시대까지…> <한국의 인디 레이블> 등의 책을 썼고, 유료 콘텐츠 플랫폼 ‘퍼블리’에서 <음악 산업, 판이 달라진다> 리포트를 발행했다. 현재는 ‘스페이스 오디티’라는 스타트업에서 팬 문화, 콘텐츠, 미디어의 연결 구조를 고민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