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위도 모른 채 뛰놀던 아이들마저 모두 집으로 돌아간 해질 녘, 귤빛 저녁노을이 오늘따라 유난히도 곱다. 한 가정의 생계와 희망이 끈이라는 줄 하나에 생명을 의지한 채 안쓰럽게 매달린 김주대 시인의 ‘저 한 줄에…’라는 시 한 구절을 <위클리 공감>에서 읽으며 나도 시인인 양 공감하는 시간이다. ‘땅에서 추방된 새는 하늘에 터널을 뚫고 벼랑 끝에 이른 삶이 허공에서 길을 찾는다’는 시인의 속마음이 어쩌면 우리 모두가 잊고 산 마음인지도 모르겠다.
섣달그믐이 가까워지는 매년 이맘때면 왜 이리도 생각이 많아지는 걸까? 까치밥이라고 달랑 하나 남은 고향집 감나무에 함께 얹힌 부모님의 넉넉한 마음처럼 달랑 한 장 남은 달력이지만 과묵하게 지나온 시간을 이제는 차분하게 뒤돌아보라는 세월의 배려일까. 거미줄처럼 얽히고설켜 길어진 생각이지만 가만히 돌아보면 우리가 사는 세상 모든 것은 하나의 보이지 않는 인생이라는 질긴 ‘끈’처럼 서로 이어지고 소통하며 맞닿아 있는지도 모른다.
무수한 끈 중 가장 소중한 것은 우리 모두가 공감하는 인연의 끈일 것이다. 이 세상에 ‘내가 왔다고’ 큰 소리로 울며 태어나던 날, 영양분과 사랑을 듬뿍 받으며 어머니와 나를 이어준 그 ‘탯줄’은 얼마나 따뜻하고 신성한 끈인가. 수학에서 점이 모여 선이 되는 것처럼 모든 물질은 진동하는 매우 작은 끈들로 이뤄졌다는 ‘끈 이론’이라는 것이 물리학에도 있나 보다. 두 종류의 끈 중 닫힌 끈은 고리 모양으로 끝점이 없으나, 열린 끈은 두 개의 끝점을 가진단다. 그러나 닫힌 끈 하나로 이론은 성립하지만 열린 끈 두 개가 모이면 닫힌 끈을 만들 수 있으니 우리네 인생처럼 자연도 이론도 결국은 서로 돕고 살아가야 하는 것만 같다.
지금이야 스위치와 리모컨이 있지만 옛날에 형광등 밑에 달린 끈을 당겨서 불을 켜던 추억도 새롭지 않은가. 간단해 보이는 쇼핑백 하나에도 끈을 끼우기 전에 끈 끼운 부분이 찢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철로 만든 부속품 아일릿과 나비 모양의 철팁을 다는 등 많은 사람의 땀과 노력이 배어 있으며, 반려동물인 고양이까지 움직이는 장난감을 좋아해 낚시놀이나 노란 고무줄과 긴 비닐 끈 등 끈을 가지고 노는 걸 보면 이 세상 모든 것은 이처럼 하나의 끈으로 결국은 소통하며 이어지는 것만 같다.
한 해가 저무는 세밑에 우리 모두가 찾고자 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우며 가장 질긴 인연의 끈은 무엇일까? 어머니의 사랑이란다. 서운해하지도 내세우지도 않으면서 오로지 주기만 하는, 내 체온보다 더 따뜻한 어머니의 사랑 ‘모정(母情)의 끈’이란다. 시리아의 목동들이 양 떼를 몰고 강을 건널 때면 가장 어린 양 한 마리를 골라 목말을 태운다고 한다. 목동의 어깨 위에 실려가는 어린양의 어미는 새끼 양을 놓치지 않으려고 주저 없이 강에 뛰어들고 다른 양들도 따라 강을 건넌다니 아무리 물을 싫어하는 양들이지만 어린양과 어미 양을 이어주는 이 끈끈한 끈이야말로 세상에서 제일 강하고 값진 사랑의 끈이 아닐까 싶다. ‘어머니의 눈물을 닦을 수 있는 것은 어머니를 울게 한 아들뿐이다’는 속담이 왜 이제야 생각날까.
박정덕 경기 안성시 비봉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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