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기원전 372년~289년)는 중국 전국시대의 철학자다. 그의 사상은 시대를 넘어 영향을 미쳤고, 오늘날에도 널리 인용되고 있다. 맹자의 어머니는 아들을 지극 정성으로 키운 것으로 유명하다. 그에 관한 몇 가지 일화가 전해오는데, 그중 하나가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다.
맹모삼천지교란 맹자가 제대로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이사를 세 번 했다는 말이다. 어머니는 아마도 아들이 높은 벼슬을 하기 바랐을 것이다. 그러나 맹자는 벼슬을 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그는 높은 벼슬을 한 사람 이상으로 존경받는 인물이 되었다.
맹자가 벼슬에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는 벼슬을 하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녔다. 그러나 그를 받아주는 임금은 없었다. 당시 상황에서 볼 때 맹자는 등용되기 어려웠다. <맹자>의 첫머리에 나오는 맹자와 양나라 혜왕의 대화를 보면, 당시 임금들이 무엇에 관심을 두었는지 알 수 있다. 혜왕은 맹자를 만나자 대뜸 “우리나라에 이익을 될 방책을 알려달라”고 했다.
나라의 이익이 될 방책을 찾는 일은 임금으로서 당연한 일처럼 보인다. 맹자가 살았던 시대가 특히 그러했다. 중국 역사에서 전국시대는 수많은 나라가 하루가 멀다 하고 대규모 전쟁을 벌이던 때였다. 당시 상황에 대해 맹자는 “백성은 굶주리고, 들에는 굶어 죽은 시체가 나뒹군다. 위로는 부모를 섬기기에 부족하고, 아래로는 처자를 먹여 살리기에 부족하다. 풍년에도 내내 고생하고, 흉년에는 죽음을 면하지 못한다. 신하로서 자기 임금을 시해하는 자가 있고, 자식으로서 자기 아비를 시해하는 자가 있다”고 통탄했다. 백성은 전쟁으로 고통받았고, 정치적 질서는 무너진 시대였다.
이런 시대였기에 각 나라의 임금들은 부국강병책을 제시하는 인재를 선호했다. 사마천이 <사기>에 쓴 내용을 보자. “진나라에서는 상앙을 등용해 나라를 부유하게 하고 병력을 강화했으며, 초나라와 위나라에서는 오기를 등용해 싸움에서 이겨 적국을 약화시켰다. 제나라의 위왕과 선왕이 손빈과 전기와 같은 인물을 기용해서 세력을 넓혔으므로 제후들은 동쪽으로 제나라에 조공을 바쳤다. 천하는 바야흐로 합종과 연횡에 힘을 기울이고 남을 침략하고 정벌하는 것만을 현명하다고 여기는 시대였다”고 지적했다.
양나라의 혜왕 역시 상앙, 오기, 위왕, 손빈과 같은 인물을 원했다. 그런데 “나라의 이익이 될 방책을 알려달라”는 혜왕의 말에 맹자는 정색했다. “왕이시여, 어찌 이익에 대하여 말씀하십니까? 왕께서는 오로지 인의의 덕만을 추구하시면 됩니다!”
이러한 주장을 펴는 맹자를 받아들일 임금은 없었다. 맹자는 뛰어난 교육자였다. 그는 각 나라의 임금을 만나기 위해 수십 대의 수레와 수백 명의 제자를 데리고 다녔다고 한다. 그를 따르는 제자들은 많았지만, 그를 받아들이는 임금은 없었다.
맹자는 ‘이익’을 앞세운 부국강병에 반대했다. 양나라 혜왕에게 한 말을 더 들어보자. “전차 1만 대를 가진 대국에서 그 임금을 시해하는 자는 반드시 전차 1천 대를 가진 제후 가운데서 나오는 법입니다. 만약 정의를 무시하고 이익만 앞세운다면, 자기 임금의 것을 모두 빼앗아 갖지 않고서는 만족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익’을 추구하면 임금의 생명조차 위협을 받는 혼란이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였다. 한 나라 안에서만 그러한가. 사마천이 지적한 바를 보면, 부국강병은 전쟁을 통해 다른 국가를 지배하고 정복하고자 하는 수단일 뿐이다. 맹자는 부국강병책이 소수 지배층의 이익을 위한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부국강병의 추구는 맹자가 통탄했듯이 “백성은 굶주리고, 들에는 굶어 죽은 시체가 나뒹구는” 사태를 막을 수 없다고 보았다.
그래서 맹자는 이익을 비판하고 ‘인의의 덕’을 추구하라고 했다. 맹자의 주장은 공자의 사상을 계승한 것이었다. 그는 공자의 손자인 자사의 문하에서 공부했다. 자사는 이미 세상을 떠나 직접 배울 수는 없었지만, 자사의 제자들에게서 공자의 사상을 배웠다. 그는 “인류가 있은 이래 공자와 비견될 만한 인물은 없었다”고 공자를 칭송했다.
그렇다고 맹자가 공자의 가르침을 그대로 답습한 것은 아니었다. 공자가 군자가 되기 위한 수양을 강조해 개인 윤리에 치중했다면, 맹자는 정치철학을 전면에 내세웠다. 맹자의 정치철학은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하나는 ‘인의의 덕’을 강조하는 덕치(德治)이고, 다른 하나는 백성이 근본이라는 ‘민본(民本)’이다.
맹자는 “백성이 가장 귀중하고, 사직이 그다음이고, 임금은 가장 경미한 존재다”라고 했다. 사직이란 토지와 곡식의 신에게 제사 지내는 것을 말한다. 당시는 농업사회였기에 사직의 중시는 백성을 편히 먹고살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을 의미했다. 맹자의 이 말 속에 정치가 무엇인지에 대한 대답이 들어 있다. 정치는 임금을 위한 것이 아니라 백성을 위한 것이다. 덕치와 민본은 동전의 앞뒷면 관계다.
맹자의 정치철학은 ‘성선설(性善說)’을 바탕으로 한다. 성선설이란 모든 인간의 본성은 선하다는 주장이다. 맹자는 성선설을 바탕으로 누구나 이상적 인간인 성인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임금이든 귀족이든 평민이든 본성이 같기에 성인이 될 수 있는 소중한 존재다.
그런데 의문이다. 인간의 본성이 선량하다면, 현실에서 악한 행동을 하는 사람이 많은 이유는 무엇인가? 맹자는 임금과 귀족 등 지배층의 탐욕 때문이라고 했다. 지배층이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기 때문에 세상이 혼탁해지고, 인간의 본성이 드러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지배층이 탐욕을 버리고 인의의 덕을 추구하면 세상은 평화롭고 백성의 삶은 편안해진다.
맹자는 인의가 ‘남의 불행을 차마 보지 못하는 마음’에서 발현된다고 했다. 백성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고, 백성을 위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발현되어야 인의가 실현된다는 것이다. 임금이 그런 마음으로 정치를 하면 덕치가 이루어지고 민본의 나라가 실현된다. 맹자는 그 마음이 인간의 본성이므로 덕치와 민본이 가능하다고 믿었다.
그러면 맹자의 가르침은 단지 먼 옛날의 얘기일까. 얼마 전 전국지방선거가 끝났다. 모든 후보가 국민을 위한다며 다양한 공약을 내세워 선의의 경쟁을 했다. 선거의 크기와 관계없이 출마한 모든 후보는 우리 사회의 지도적 인사들이라고 할 수 있다.
성선의 입장에서 볼 때, 국민을 위한다고 한 모든 후보의 마음을 의심할 이유는 없다. 선거가 끝났지만, 모든 후보가 변치 않고 국민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 믿지 않을 이유 또한 없다. 물론 당선자들은 배전의 노력을 할 것이라 기대할 수 있다.
국민을 위하려면 특권의식을 버리고 국민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아야 한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심각한 문제 중 하나가 소득격차, 즉 사회적 불평등이다. 그로 인해 저소득층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고소득층의 양보와 저소득층의 소득 향상이 필요하다. 특히 저소득층의 실질적 소득 향상이 절실하다. 당선자는 물론 출마했던 모든 후보가 소득격차 완화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 기대한다.
맹자가 양주라는 사람을 비판한 내용도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양주는 “내 몸의 털 하나를 뽑아 세계를 이롭게 할 수 있다 해도 하지 않겠다”고 했다. 맹자는 양주의 주장이 동물과 다름없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누구나 세상을 이롭게 하는 일에 적극 나서라는 촉구였다. 그러므로 누구나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는 호소라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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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기│<한국 철학 콘서트>, <철학자의 조언>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