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기원전 551~79)는 중국의 철학자다. 중국 한나라의 역사가 사마천은 “10여 세대를 지나왔어도 여전히 학자들이 공자를 추앙한다. 천자, 왕후부터 나라 안의 모든 학자들이 공자의 말씀을 판단 기준으로 삼고 있으니, 공자는 참으로 최고의 성인이다”라고 했다.
사마천이 그 글을 쓴 것은 공자가 세상을 떠난 지 400여 년이 가까웠을 때였다. 그때에도 공자의 말이 정치와 학문의 판단 기준이 됐다. 어찌 그때뿐이겠는가. 20세기가 시작될 때까지 무려 250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공자는 한국, 중국, 일본, 베트남 등 동아시아의 정치와 학문에서 절대적 권위를 누렸다.
공자는 일흔 살의 숙향흘과 열다섯 살의 안 씨가 들에서 관계를 맺어 태어났다고 한다. ‘들에서 관계 맺었다’는 것을 한자로 야합(野合)이라 한다. 야합이란 오늘날에도 비정상적인 관계 맺음을 비판할 때 사용하는 말이다. 공자의 부모 또한 정상적인 부부 관계가 아니었다고 할 수 있다.
공자는 세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어머니는 천한 신분이었기 때문에 모자의 삶은 매우 어려웠다. 그런데 열다섯 살 때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났다. 예민한 청소년기에 천애고아가 된 공자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공자는 그때 학문에 뜻을 두었다고 했다. 그러나 부모 없이 홀로 각고의 노력을 해야 했다. 스승을 모실 만한 처지가 아니었기에 더욱 분발해야 했다. 이 사람 저 사람 찾아 듣고 배우며 깊은 사색을 통해 자신의 학문을 세워나갔다. 마침내 서른 살이 됐을 때, 자신의 학문을 이루었다고 자부할 수 있게 되었다.
공자는 교육자였다. 공자는 중국에서 가르치는 것을 직업으로 했던 최초의 사람이었다. 당시 교육자가 되는 것은 매우 어려웠다. 당장 먹고사는 문제에 봉착하기 때문이었다. 제나라 재상 관중은 백성의 직업을 사농공상의 네 가지로 나누면서 공부하고 가르치는 사람인 사와 장사를 하는 상을 억제해야 한다고 했다. 그들이 생산적 노동에 종사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생산적 노동을 하지 않으면 먹고살기가 어려웠다.
공자는 서른 살 때부터 제자들을 받아들였고, 제자들이 내는 수업료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높은 액수의 수업료를 받은 것은 아니었다. “포(脯) 한 속(束) 이상을 가지고 와서 가르침을 청하면 가르쳐주었다”라고 했다. ‘포’는 얇게 썰어 말린 고기를 말하고, ‘한 속’이란 ‘열 개’를 말한다. ‘포 한 속’의 가격이 얼마인지 알기 어렵지만 저렴했던 것 같다. 아마도 공자는 ‘대중교육’을 최초로 실천한 스승일 것 이다.
공자의 제자는 무려 3000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중 역사에 이름을 남긴 제자가 70여 명이다. 그들은 여러 나라에서 제후를 보좌하는 직책을 맡거나 높은 벼슬아치가 되었다. 제후를 직접 가르친 제자도 있었고, 유력자들과 사귀며 가르친 제자도 있었다.
그래서 공자의 가르침은 중국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제자들에 의해 공자의 사상은 중국에서 지배적인 사상이 되었고, 이후 조선, 일본, 베트남으로 전파되어 동아시아의 대표적인 사상이 되었다. 공자의 사상을 유교라고 하는데, 여기에서 ‘유’는 지식인을 말한다. 공자를 최초이자 최고의 지식인이라고 존경해 그의 사상을 유교 또는 유학이라 했던 것이다.
<논어>는 공자의 말을 모아놓은 책이다. 중국 각지로 퍼진 제자들은 저마다 공자와 나눈 대화를 기록해 활용했을 것이다. 후대에 그것들을 모아 펴낸 책이 <논어>다. ‘논어(論語)’는 ‘말’을 의미한다. 그런데 <논어>에 기록된 공자의 말은 매우 단편적이다.
흔히 당연한 얘기를 ‘공자님 말씀’이라고 비유하듯이 <논어>에 등장하는 공자의 말은 너무나 당연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왜 공자를 그토록 위대한 사상가라 하는지 의문을 갖게 한다. 공자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연관 지어 생각해야 그 의미가 분명해진다. 이제껏 그 의미를 밝혀보고자 하는 연구가 계속돼왔다. 아마도 <논어>를 연구한 책자를 모아놓으면 <논어>의 수천 배 분량이 될 것이다.
그렇지만 <논어>는 누구나 가볍게 읽어 삶의 지혜를 얻을 수 있는 책이다. 전문적인 지식이 없더라도 누구나 평이하게 읽을 수 있는 교양서다. <논어>에 등장하는 수많은 삶의 지혜 중에서 첫머리에 나오는 말이 대단히 유명하다. “배우고 그 배운 것을 수시로 익힌다면 기쁘지 않겠느냐! 친구가 먼 곳에서 찾아온다면 즐겁지 않겠느냐! 남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더라도 성내지 않는다면 군자라 할 수 있지 않겠느냐!”
공자는 세 가지 즐거움을 말했다. 공부와 친구 그리고 과시하지 않음이다. 여기에서 공부는 물론 시험이나 전문적 지식을 위한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정신을 살찌우는 데 도움이 되는 교양을 일컬어 공부라 한 것이다.
친구의 중요성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공자가 말한 친구는 사전적 의미인 ‘오래도록 친하게 사귀어온 사람’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공자는 다른 곳에서 “세 사람이 함께 길을 가면 반드시 그 안에 나의 스승이 있다”고 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공자가 말한 친구란 주변에서 접하는 모든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과시하지 않음 또한 매우 중요하다. 자기 과시는 주변 사람들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인정을 받지 못하게 되면 공연히 마음이 상하고, 주변 사람들과 관계 또한 서먹해지기도 한다. 이런 것들을 고려하면 공자의 말이 새삼 마음에 와 닿는다.
공자가 말한 세 가지 즐거움은 일상생활에서 누릴 수 있는 행복을 위해 필요한 것들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의미하는 ‘소확행’이란 말을 생각해보게 된다. 이 말은 일본의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1986년에 발표한 한 수필집에서 기원했다고 한다. 국내에도 하루키의 독자가 적지 않다는 것을 고려하면, 소확행이란 말은 이미 상당히 오랫동안 우리 사회에 존재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최근에야 주목을 받는 이유는 사회경제적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고 한다. 경제적 저성장과 사회적 불평등의 심화 그리고 그로 인한 젊은 세대의 미래 불안 등이 소확행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배경이라는 것이다. ‘채워지기 어려운 미래의 욕망보다 당장 이룰 수 있는 현재의 행복이 더 중요한 소확행’이 관심을 끌게 됐다는 얘기다.
소확행이란 의미상 일상의 삶 속에서 행복을 찾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사실 일상의 행복은 인류가 탄생한 이래 계속 추구해왔던 것이라 할 수 있다. 물론 행복의 의미는 시대에 따라 달랐다. 따라서 말의 유행을 좇기보다 오늘날 일상의 행복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한편에서는 지금의 소확행이 소비와 연관될 수 있음을 들어 우려를 표하기도 한다. 미국의 사회학자이자 경제학자인 소스타인 베블런의 말처럼, 소비가 과시적 욕망을 부추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행복이 소비와 연관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지금과 같은 물질적 풍요시대에 상대적 박탈감은 오히려 불행의 주요 요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행복이 정신적 만족을 전제로 한다는 점이다. 아울러 혼자만의 행복은 존재하기 어렵다. 그래서 공자의 ‘세 가지 즐거움’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정신을 살찌우고 주변을 배려하며 스스로를 과시하지 않는 것. 아마도 그 즐거움이 행복의 시작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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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기│<한국 철학 콘서트>, <철학자의 조언>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