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0 탄소중립 사회를 향해 가는 길
12월 10일 저녁, 문재인 대통령의 ‘2050 탄소중립 비전’ 연설이 TV를 통해 생중계됐다. “탄소중립은 어려운 과제이지만 피할 수 없는 과제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려우면 다른 나라들도 어렵고 다른 나라가 할 수 있으면 우리도 할 수 있습니다.”
문 대통령은 탄소중립은 생존을 위해 반드시 달성해야 할 과제임을 강조했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지구 평균기온이 1.5℃ 이상 상승하면 이상기후로 인류와 모든 생명체가 생존의 기로에 처할 것이라 경고했고, 우리는 현재 평균기온이 1℃ 상승한 지구에서 벌어지는 재난을 경험하고 있다. 문제는 고탄소 성장궤도를 달려온 한국 사회가 탄소중립을 이루는 데 주어진 시간이 30년이라는 점이다. 탄소중립 사회는 우리 사회 경제·사회 구조를 완전히 탈탄소화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2050년 탄소중립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석탄발전소, 내연기관 차량, 주유소, 연탄이 사라지고 책에서나 존재하게 된다. 가스발전소는 탄소포집저장(CCS) 기술이 장착된 곳에서나 가동할 수 있는데, 현재 탄소포집은 가능하지만 탄소를 저장할 장소가 마땅치 않다.
또 탄소중립 사회에서는 에너지의 80~90%를 태양광, 풍력, 바이오에너지 등 재생가능에너지로 생산해야 한다. 재생가능에너지의 간헐성을 극복하기 위한 디지털 기술, 송배전망 확충, 저장기술도 갖춰야 하고, 무엇보다 가격과 시장제도를 통해 에너지와 자원 사용의 효율성을 높이는 일이 필요하다. 시멘트, 철강, 석유화학정제, 조선, 자동차 등 에너지 다소비 산업의 탈탄소화는 많은 시간과 기술 투자, 자금이 투입돼야 한다.
30년 전인 1990년에 비해 우리나라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두 배 넘게 증가해 오늘날 연 7억 톤을 넘어섰는데, 앞으로 30년 뒤에는 7억 톤을 ‘0’으로 만들어야 한다. 유럽연합(EU)은 교토의정서에 따라 지난 30년 동안 쏟았던 노력과 바탕 위에서 탄소중립을 향해 가는데, 우리는 이제부터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다.
탄소중립 필요성에 대한 국민적 공감 필요
12월 7일, 정부는 ‘2050 탄소중립을 위한 추진전략’을 발표했다. 3+1 실행전략으로 경제구조의 저탄소화, 신(新)유망 저탄소 산업생태계 육성, 공정 전환을 목표로 재정·녹색금융·연구개발(R&D)·국제협력 기반을 구축한다는 것이다. 2050 탄소중립 사회를 만들기 위해 대통령 직속 ‘2050 탄소중립위원회’가 출범할 예정이다. 이날 정부는 ‘정책 캘린더’를 제시했는데, 2021년 6월까지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마련하고 산업통상자원부의 ‘에너지 탄소중립 혁신전략’, 국토교통부의 ‘건물부문 2050 탄소중립 로드맵’ 수립 등 총 20개가 넘는 부문별 탄소중립 전략을 세워 2022년부터 국가계획에 반영할 계획이다.
정부의 추진전략을 살펴보면서 2021년은 정부 모든 부처가 2050 탄소중립 로드맵을 수립하기 위해 분주한 1년이 될 텐데, 계획을 세우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세운 계획이 사회적 신뢰와 지지를 얻어 구성원들의 공통 목표가 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까지 우리가 온실가스를 줄이지 못한 것은 계획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계획은 세웠지만 실행하지 않았고, 평가하지 않았다. 2050 탄소중립 로드맵은 온실가스 감축, 불평등 해소, 탈탄소 경제사회 대전환이라는 원칙 아래 통합성과 정합성을 갖추고, 많은 구성원이 참여해 수립해야 한다. 2050년 장기계획인 만큼 관련 이해당사자는 물론 성별, 지역별, 연령별, 직업별로 다양한 국민이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2050 탄소중립위원회’를 중심으로 인력을 집중 투입해 학습하고, 토론·합의해야 하는데 그 과정이 적어도 2년은 필요하다고 본다.
2050 탄소중립을 실현하는 데 가장 시급하게 필요한 것은 탄소중립의 필요성과 시급성에 대한 전 국민적 공감과 합의(학습, 토론)를 만드는 것이다. 대통령의 선언과 정부 부처의 준비, 국회의 입법, 기업과 국민(노동자와 농어민)의 기후위기와 탄소중립에 대한 인식의 간극을 좁히는 기획이 필요하다.
12월 6일 대전에서 열린 사회혁신 한마당 ‘2022년에는 주차장 공약 없앨 수 있을까’ 시간에서 한 청년 활동가는 “이제는 기후위기를 인식하는 것을 넘어 감각해야 할 때”라는 말을 했다.
탄소중립도 마찬가지로 개념 이해를 넘어, 30년 안에 7억 톤의 온실가스 배출 상쇄를 포함해 ‘0’으로 만든다는 것의 의미를 사회 구성원들이 상상하고 체감하는 감각을 형성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2050 탄소중립 로드맵을 수립하는 방식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 계획을 잘 세우기 위한 준비가 중요한 것이다.
탄소중립 재정 구축 속도감 있게 진행해야
오히려 정부가 집중해야 할 일은 탄소중립 사회를 만드는 데 필요한 재정, 제도, 기술 기반을 갖추는 일이다. 온실가스 감축을 국정 최우선 과제로 설정하고, 온실가스 관련 통계 기반을 확충해야 한다. 국가기후환경회의가 공론화를 거쳐 중장기 과제로 제시한 2035~2040년 무공해차 판매, 2040년 이전 석탄발전 폐쇄, 환경비용과 연료비 연동 전기요금제도 등 문재인정부에서 시작한 논의를 미루지 않고 결정해야 한다. 무엇보다 기획재정부가 해야 하는 탄소중립 재정 구축이 핵심인데 기후대응기금, 탄소예산제도, 녹색금융공사 설립 등을 속도감 있게 진행해야 할 것이다.
정부는 “과제의 시급성과 사회적 수용도 등을 고려해 과제별 우선순위를 설정, 체계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반면 경제계에서는 2050 탄소중립은 지나친 목표라고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문 대통령은 “탄소중립은 우리 정부 철학이 아닌 새로운 국제질서”라고 밝혔다.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탈탄소 경제사회 대전환은 국제사회의 질서로 자리 잡았다. 우리가 너무 빠른 것이 아니라 너무 늦었다. 10년만 더 일찍 시작했더라도 감당해야 할 부담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정부도 중요한 결정을 ‘사회적 수용성’을 내세워 뒤로 미루지 않기를 당부한다. 수용성은 정부가 얼마나 적극적으로 정보를 공개하고, 국민을 설득하는지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2050년 탄소중립 목표를 위해 2020~2021년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고 결정하고, 실행에 옮겨야 한다. 하루하루가 쌓여 30년이 된다. 남아 있는 30년은 7억 톤을 ‘0’으로 줄이기에 ‘충분한’ 시간도 ‘부족한’ 시간도 아니다. 기후위기 시대 생존을 위해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는 ‘30년’이어야 한다.
자료: 정책브리핑
이유진 녹색전환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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