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있으면 개강이다. 심란하다. 방학 동안 계획했던 일의 절반도 못한 것 같다. 무기력에 대한 죄책감과 실망감이 차오른다. 우울하다. 이럴 때 두 가지 극복 방법이 있다. 하나는 무언가 변명거리를 찾는 거다. 그래, 이번 여름은 너무 더웠어. 더위가 나를 나태하게 만든 거야! 이런 변명은 이제 곧 개강과 함께 시작될 치열한 삶을 준비하는 데 별 도움이 안 된다. 두 번째 극복 방법을 실천해야 한다. 그것은 정리정돈이다. 내 주변의 물리적인 환경을 깔끔하고 질서 정연하게 만드는 거다. 그러면 기분이 훨씬 나아지고 앞으로 뭔가 일이 잘될 거 같은 상승효과를 낳는다.
그렇게 정리정돈을 하기 시작했다. 대상은 책장과 책상, 서랍이다. 정리를 하다 보면 우리 삶에 어마어마하게 많은 사물이 존재한다는 걸 깨닫게 된다. 조금만 방심하면 이런 것들은 집 안에 소리 없이 쌓이고 상당한 무질서를 가져온다. 이내 쓰레기들을 방치했다는 걸 깨닫고 내 삶을 반성하게 만든다. 이전에도 쓰지 않았고 앞으로도 쓸 일 없는 것들이 이토록 오랫동안 내 주변을 어수선하게 했다니. 이것이야말로 성실함을 방해했던 건 아닌지? 그렇게 버릴 것들을 가려내는 일은 머릿속에 도파민을 분출시켜 의욕을 일깨운다. 점점 더 마음이 고양된다. 이제 사회에 나갈 준비가 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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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빈 상자가 생기자 버려졌어야 할 몽당연필과 더 이상 쓸 일이 없는 연필들이 집안에 살아남았다. ⓒ김신
하지만 뭘 버리는 게 쉬운 일만은 아니다. 여기에는 쓸모와 디자인의 문제가 깊숙이 연결돼 있다. 가장 버리기 쉬운 건 각종 인쇄물이다. 신문, 잡지, 전시회 카탈로그, 도서전에서 가져온 각종 도서 목록… 인쇄물은 정보여서 좀처럼 버리기 힘들다. 언젠가 다시 보려고 남겨뒀다가 결국 보지도 않고 책상 위에 쌓인다. 앞으로 내가 이걸 볼일이 없다는 확신이 드는 순간 미련 없이 버릴 수 있다. 그다음 버리기 쉬운 것은 확실히 쓸모가 사라졌다고 확신할 수 있는 잡동사니들이다. 어디에 쓸지 알 수 없는 여분의 나사와 못들, 책장과 서랍 여기저기에 굴러다니는 배터리들, 아들이 초등학교 때 썼던 샤프심과 색연필들, 오래돼 때가 묻고 표면이 거칠어진 지우개들, 구멍이 막힌 수정액, 이제는 용량에 비해 몸집이 너무 커 보이는 1GB짜리 USB 메모리들, 귀여워서 버리지 못했던 몽당연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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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아이폰 패키지는 단단한 종이로 만들어져 버릴 수 없게 만든다.
3 양철 상자 역시 버리기 힘든 패키지 중 하나다.
4 서양의 고급 초콜릿 양철 패키지는 그 안에 담겨 있던 초콜릿보다 훨씬 수명이 길어서 이베이에서 거래되기도 한다.
5 나무로 만든 와인 패키지는 와인은 다 소비한 뒤에도 담는 용도로 그 효용을 지속할 수 있다. ⓒ김신
폐기의 판단 근거는 효용이다. 효용이란 그 사물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처지와 태도에 따른다. 나에게 쓸모 없다는 거지 그 사물 자체의 쓸모가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다. 내가 버리는 것을 누군가는 쓸모 있다고 아쉬워할 수 있다. 필기류는 많지만 좀처럼 못 버리겠다. 연필과 볼펜이 이토록 많은 것은 21세기에 들어와 이런 것들이 기업의 판촉물이나 저렴한 기념품으로 흔하게 주어지기 때문이다. 필기류만큼이나 흔해 터진 홍보물로 포스트잇도 있다. 아무리 써도 필기류나 포스트잇이 줄기는커녕 계속 늘어나는 이유는 그것이 21세기 최고의 판촉물이기 때문이다. 그 밖에 클립, 압정, 집게, 스테이플러 심과 커터날 같은 소모품들은 살아남았다.
다시 한 번 강조하면 사물의 효용이란 나의 처지와 태도에 달린 것이다. 여전히 쓸모가 남은 샤프심을 버리는 데는 미련이 없지만, 확실히 쓸모가 사라졌다고 봐야 할 포장 상자를 버려야겠다는 생각에 이르자 고통을 느낀다. 나는 유독 포장 상자에서 어떤 매력을 느낀다. 그 상자가 좀 더 단단한 재질, 그러니까 양철이나 나무, 두꺼운 종이로 만들어지면 더욱 그렇다. 왜냐하면 그 상자에서 기회와 가능성을 보기 때문이다.
일단 상자가 가진 형태, 즉 사각형이 주는 안정감이 있다. 직각으로 각진 사각형은 단단하고 튼튼하다. 역동적인 삼각형이나 원과 달리 매우 정적이어서 안정되고 편안하다. 사각형은 기본적으로 변화를 거부하고 낭비가 없는 형태다. 인류가 집을 지을 때 사각형으로 테두리를 두르는 것은 그것이 가장 경제적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집안 물건의 대부분은 사각형의 입체인 직육면체다. 특히 뭘 담는 기능을 하는 사물들이 그렇다. 냉장고와 세탁기, 각종 수납장들… 상자의 본질은 그 안에 뭘 담는 것에 있다. 상자 안이 비어 있을 때, 그것은 마치 빈 캔버스나 빈 노트, 작품이 걸리기 전 갤러리의 흰 벽처럼 어떤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빈 상자는 색으로 비유하면 흰색이다. 사각으로 둘러싸인 빈 공간과 흰색은 일종의 쓰지 않은 에너지다. 그러니 빈 상자를 버리지 못하는 거다. 그것은 기회이며 가능성이다. 그것을 버리는 것은 기회와 가능성을 포기하는 것이므로 고통을 느끼는 것이다.
스마트폰을 담았던 단단한 종이 상자, 스피커를 비롯한 각종 컴퓨터 주변기기 상자, 한때 초콜릿이나 사탕이 담겼던 양철 상자, 영양제 상자… 집 안을 둘러보니 이미 여기저기에 상자들 투성이다. 상자는 클립이나 집게, 압정, USB 메모리 같은 작고 찾기 힘든 물건들을 분류하게 해주는 최고의 도구다. 따라서 상자란 질서를 의미하기도 한다. 나는 마트에 가서 이번 분류 작업을 위해 작은 상자를 하나 샀다. 정확히 거기에 뭘 담을지 계획도 없이 충동적으로 샀다. 집에 와서 버리려고 했던 몽당 연필들, 아들이 초등학생 때 쓰다 만 연필들을 그 안에 담았다. 앞으로도 쓰지 않을, 그래서 버려져야 했을 연필들이 다시 공간을 낭비하게 된 셈이다. 나는 약간의 저장강박증이 있다. 아무튼 빈 상자는 이렇듯 대단하지 않은가? 상자는 쓰레기가 됐어야 할 물건을 구원하는 자비로움까지 갖췄다.

김신은 홍익대 예술학과에서 미술 이론을 전공하고 <월간 디자인> 기자와 편집장, 대림미술관 부관장으로 일했다. 현재 디자인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며, 저서로 <당신이 앉은 그 의자의 비밀>, <쇼핑 소년의 탄생>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