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습니다. 하지만 인생은 짧지요.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지만 모든 인생을 다 살아볼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책과 영화, 강연을 통해서 간접 경험을 하지요. 하지만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 백 번 듣는 것이 한 번 보는 것만 못합니다. 그러기엔 여행만큼 좋은 게 없죠.
우리도 살 만해져서 여행을 많이 합니다. 무엇을 보고 느꼈는지 글과 사진으로 남깁니다. 다음 여행자를 위한 정보도 친절하게 공유하지요. 주로 교통편과 맛집, 저렴하고 좋은 숙소 이야기입니다. 일상이든 여행이든 생활의 기본 구성 요소는 거의 같지요. 먹고 자고 싸는 것이 바로 그것이잖아요. 그런데 여행 후기에 화장실 이야기는 거의 남기지 않습니다. 전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화장실은 다 같았기 때문일까요?
저도 여행을 꽤나 많이 다녔습니다. 그 가운데 마다가스카르 탐험, 몽골 고비사막 공룡 화석 탐사, 실크로드 탐사, 보르네오 맹글로브 숲 탐사가 기억에 가장 많이 남습니다. 원시적인 자연을 경험하고 순수한 사람을 만났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요, 이 멋진 곳에 다녀와서 사람들에게 정작 가장 많이 이야기한 주제는 화장실입니다.
가장 많이 이용한 화장실은 들판, 숲, 강이었어요.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사막과 밀림 속에는 화장실이 없기 때문이죠. 평화로운 배변이었을까요? 천만에요. 아무리 사막이라고 하더라도 사람의 눈을 피하기는 어렵습니다. 밀림 속에는 웬 벌레가 그리도 많은지요. 낯선 도시에서 새벽에 화장실을 찾지 못한 적도 있어요. 어떻게 했냐고요? 후미진 골목에서 엉덩이를 까고 볼일을 봤죠. 불안하고 무서웠습니다. 화장실이 있다고 하더라도 웅덩이를 파고 그 위에 발판을 올려놓은 정도인 경우도 많았어요.
똥을 누지 않는 사람은 없지만 소문내고 똥 누는 사람은 없잖아요. 외국에서 화장실을 찾을 때 “Where can I wash my hands?”라고 하잖아요. “손을 어디서 씻을 수 있죠?”라고 물으면 ‘아, 화장실을 찾는구나’라고 알아듣는 것이죠. 우리말도 마찬가지예요. 저는 정작 화장실(化粧室)에서 화장을 고쳐본 적이 없어요.
불가에서는 화장실을 해우소(解憂所)라고 부릅니다. ‘근심을 풀어주는 곳’이란 뜻이죠. 예전에 어른들은 ‘변소(便所)’라고 했습니다. ‘便(편)’ 자는 원래 ‘편하다’는 뜻이에요. 똥을 누고 나면 마음이 편안해지기 때문이겠죠. 화장실은 정말 귀한 곳입니다.
그런데 지구인 열 명 가운데 세 명은 제대로 된 화장실을 사용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화장실이 없으면 단순히 똥을 누는 게 불편한 일로 그치는 게 아닙니다. 화장실이 없어서 학교를 가지 못하는 여성이 많습니다. 교육을 받지 못하니 좋은 직업을 가질 수 없고, 직업이 없으니 가난해서 화장실을 짓지 못하죠.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밤까지 꾹 참았다가 캄캄함 밤에 나가서 변을 누다 변을 당하는 일도 많습니다. 야외에 똥을 누니 물이 오염되고 오염된 물을 마시니 병이 들어 죽는 일도 흔하죠. 해마다 150만 명의 아이들이 오염된 물 때문에 목숨을 잃을 정도로 심각한 상황입니다.
내년이면 사람이 달에 다녀온 지 벌써 50년이 됩니다. 그런데 아직도 똥 하나 맘대로 누지 못한다는 게 말이 되나요? 전 세계를 누비는 여행가들은 말합니다. 대한민국은 화장실 사용이 편하고 가장 깨끗하다고요. 자랑스러운 일이지만 생각해봐야 할 일도 있습니다. 수세식 화장실을 사용하기 위해 한 사람이 하루에 자그마치 50리터 이상의 수돗물을 사용하는 것은 염치없는 일이잖아요. 화장실 없는 것만큼이나 물 낭비가 큰 수세식 화장실도 문제지요. 이젠 새로운 화장실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안전하고 깨끗하면서도 양심에 어긋나지 않는 해우하면서 편한 화장실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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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모 | 서울시립과학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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