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우리 정부로부터 국민포장을 수여받은 일본인 화가 도미야마 다에코
‘낮은 목소리’ 증언 도미야마 다에코의 세계
“제국주의는 늘 우리 곁에 있습니다. 끊이지 않는 전쟁, 자본의 끝없는 이윤 확대, 국가 안보라는 이름으로 사라진 개인의 공간, 그 이름은 늘 바뀌었지만 인간의 자유와 존엄을 파괴하는 성질이 변한 적이 없습니다. 도미야마 다에코는 지난 백 년을 살아오며 제국주의가 드리운 그늘 아래 살아남은 낮은 목소리를 찾아 증언하고 널리 알리는 작업을 오늘까지 하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는 작가 개인이 살아온 삶의 기록이며 현대의 연대기입니다.”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박물관 1층에 들어서자 작가를 소개하는 글이 보였다. 검은 바탕에 새겨진 ‘기억의 바다로: 도미야마 다에코의 세계’ 전시 포스터가 상징하듯이 작가의 작품은 우리 시대의 어둡고 낮은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다.
5·18민주화운동 등을 세계에 알린 일본인 화가 도미야마에게 우리 정부는 6월 10일 국민포장을 수여했다. 전시는 6월 30일까지였으나 국민포장 수훈 기념으로 8월 31일까지 연장하기로 했다. 이번 전시에는 작가의 소장품,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소장품 등 총 170여 점이 전시됐다. 앞서 작가는 2020년 11월 ‘광주의 피에타’ 등 작품 71점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 기증했다.

▶광주의 피에타, 1980, 종이에 석판화, 41×54.8cm.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소장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소녀들의 절규
제국주의 백 년을 관통하며 세계 곳곳의 목소리를 시각 이미지로 제작해 온 도미야마 다에코. 그의 증언은 이번 전시에서 다섯 개의 주제로 구현됐다. 특히 전쟁과 관련된 작품이 관객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전쟁에서 지는 쪽은 목숨을 잃고 이기면 영혼의 안식이 사라진다. 애당초 전쟁은 옳고 그름을 구별하기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누가 조금 더 살 수 있을지 정할 뿐이다.
이번 전시에서 익숙한 시인들의 이름을 발견할 수 있었다. 회색빛 형무소가 그려진 작품 앞에서 발길이 멈췄다. ‘벽안의 원한-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한 윤동주에게 바치다’는 일본의 억압과 폭력으로 조국의 해방을 보지 못하고 쓸쓸하게 옥사한 시인의 아픔을 형상화했다. 후쿠오카 형무소는 윤동주가 죽음을 맞이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식민 치하에서 순수한 영혼의 자유를 지키며 사망한 젊은 시인 윤동주에게 바쳐진 작품은 폭력적인 제국주의의 속성을 증언한다.
햇빛 한 점 들지 않는 바닷속을 그린 작품도 있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 끌려간 소녀들이다. 그들의 유골이 바다 속에서 절규하고 있었다. ‘남태평양 해저에서’라는 작품은 한 서린 목소리와 음악을 입힌 디지털 버전 ‘바다의 기억’으로 재탄생했다. 작가는 디지털 작품을 들고 세계 곳곳을 다니면서 우리나라의 상황과 역사 문제를 알리기도 했다. 관객을 기다리는 대신 직접 찾아간 것이다.

▶남태평양 해저에서, 1985, 캔버스에 유채, 162×130cm
전 생애 걸쳐 낮은 목소리 기록하고 전달
이번 전시에서 지층 아래를 살아간 사람들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땅 아래 사람들의 기억을 그린 것이다.
“빛 하나 들지 않는 지하 갱도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하루아침에 쓸모를 다합니다. 그들이 택할 수밖에 없었던 먼 유랑의 길을 작가가 마지막까지 함께 합니다.”
전시 벽면에 쓰인 글을 따라 작가가 기록한 지하 사람들의 세계를 만날 수 있었다. 작가는 빛 한 줄기 찾아 들어가지 못하는 그곳에서 삶을 떠받쳤지만 해체되는 과정에서 배제됐던 사람들의 삶을 ‘광산에서의 드로잉: 1950년대’ 작업으로 추적하고 증언했다.
작가는 생애를 통해 낮은 목소리들을 채굴하고 그들의 음성을 증폭해 전달하는 일에 매진했다. 그 시작은 현대사회가 석유시대로 전환될 무렵인 1950년대 탄광 사람들의 기록이었다. 작가는 6·25전쟁 이후 석탄 호황도 끝나가고 연이은 안전 사고 등으로 광산 폐쇄가 이어지며 브라질로 일자리를 찾아 이민을 떠나는 광부들을 따라 라틴아메리카로 갔다. 그곳에서 일어나는 저항 정신 가득한 제3세계 예술운동을 접한 작가는 군사 독재정권과 대치하고 있는 아시아 각국 상황에 시선을 돌린다.
1921년에 태어난 도미야마 작가는 2021년 11월이면 만 100세가 된다. 일본 효고현 고베에서 태어났지만 열두 살 때 가족과 함께 중국으로 이주해 랴오닝성 다롄, 헤이룽장성 하얼빈 등 만주 지방에서 소녀 시절을 보냈다. 중국에서 경험과 인간관계는 도미야마가 일본이 일으킨 침략 전쟁을 자각하고 훗날 작품 활동의 주제로 삼는 계기가 됐다. 조선, 중국, 러시아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의 존재를 알게 됐고 일본의 제국주의와 군국주의에 동화되지 않는 예리한 감수성을 가지게 됐다. 이때의 경험은 도미야마가 화가로서 사회참여적인 작품을 그리도록 이끌었다.

▶‘기억의 바다로: 도미야마 다에코의 세계’ 전시 전경
우리나라 민주화 운동에 대한 연대
1970년 서울을 방문한 그는 하얼빈 시절 연을 맺은 한국 친구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 식민지 지배, 분단, 전쟁이 한민족에게 안겨준 고통과 설움을 이해하게 된다. 작가가 보낸 어린 시절의 기억은 작품을 통해서도 볼 수 있다. ‘20세기 레퀴엠: 하얼빈역’은 어린 시절을 보낸 만주의 신화와 전설로 인간사회의 참상을 비판했다. 관객은 작가와 함께 하얼빈 역사를 둘러보게 된다. 기억의 기차는 중국을 지나 다시 한국과 칠레의 1970년대로 이어진다.
“두 시인은 같은 이유로 노래 부르기를 멈췄습니다. 극동 아시아와 남미 대륙은 두 시인의 삶을 통해 하나의 사건으로 이어지며 새로 등장한 제국주의 국가를 고발합니다.”
‘시인을 위한 기억’은 파블로 네루다와 김지하 시인을 소환한다. 작가는 ‘김지하의 시에 부쳐-묶인 손의 기도’와 ‘또 하나의 9.11. 1973년 9월 11일 칠레에서’ 시리즈로 라틴아메리카와 한국이 동일한 역사 공간에서 공진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묻는다. 한국과 라틴아메리카 사이의 지정학적 거리는 소거되며 동일한 역사적 공간에 놓인다.
도미야마의 삶과 작품 세계를 연구한 마나베 유코 도쿄대 교수에 의하면 김지하를 모티브로 한 시화집을 출판하고 슬라이드를 제작한 것 때문에 1978년부터 대전엑스포를 계기로 일본인에게 무비자 입국을 시행한 1993년까지 한국 입국을 거부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어려움 속에서도 우리나라의 민주화운동에 대한 연대를 이어갔다.

▶십자가의 죄수, 1974, 종이에 석판화, 52.5×36.5cm

▶지쿠호 탄전 4, 1974, 종이에 석판화, 43×57cm
리영희·윤이상 등과 주고받은 편지도 공개
도미야마는 1980년 5월 광주에서 학살이 벌어지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서 연작 판화 ‘쓰러진 자를 위한 기도 1980년 5월 광주’를 만들어 일본 간사이 지방과 홋카이도 삿포로를 돌며 전시했다. 희생자 앞에서 오열하는 치마 저고리 차림의 여성을 담은 유명한 석판화 ‘광주의 피에타’도 이때 제작된 작품이다. 작품들은 슬라이드 영상, 포스터, 영화 등으로 남미 등 세계 곳곳에 선보여 5·18민주화운동을 알리는 데 도움을 줬다.
그가 그린 5·18민주화운동 포스터가 독일에서 달력으로 제작됐고 그 달력이 다시 우리나라로 들어오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민주화 운동가들은 교회에서 몰래 그가 그린 달력을 돌려보곤 했다.
작가의 작품은 한때 일본에서도 환영받지 못했다. 서양화 중심의 일본 화단에서 활동이 정치적이라는 비판을 받아 1976년까지 미술 단체에서 잇달아 탈퇴했다. 언론 규제로 출연 프로그램이 방송되지 않는 등 한일 쌍방에서 활동 장소를 상실한 것이다.
그러나 작가는 20세기 전쟁의 시대에 곳곳에서 벌어진 사건의 증언으로 고난을 감당하고 받아내며 견딘다는 것의 힘을 전한다. 그의 눈과 손으로 재현된 시대의 풍경은 저항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번 전시에는 리영희 등 민주화운동가들, 이응노, 윤이상과 같은 예술가 등과 주고받은 편지 등 다양한 자료도 함께 공개됐다.
그의 시선은 1980년 5월 광주를 거치며 한국 현대사의 기원 가운데 하나인 일제의 전쟁 책임 추궁으로 이어진다. 작가는 동북아시아 지역민들의 존엄을 파괴했던 체제에 대한 주체적인 반성으로 신화적이고 수동적인 민족의식을 넘어 근대적 의지로 향해 이동한다. 도미야마는 역사적 존재라는 인류 보편성에 기반한 작업으로 우리 안의 제국주의를 해체하고 있다.
글 박유리 기자, 사진 연세대 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