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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주영 대표 뒤로 ‘씨네핀하우스’에서 작업한 영화 굿즈가 가득하다.
굿즈 전성시대, 영화 굿즈계에 샛별이 떠올랐다. 한국영화 100주년 굿즈와 지금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는 <기생충> 굿즈 등 한 청년기업인이 만든 굿즈의 반응이 뜨겁다.
젊은 청년기업을 만나러 부산 양정동을 찾았다. 한적한 동네에 자리 잡은 아파트 상가에 마련된 작은 사무실이다. 경쾌한 음악 소리가 들리는 곳에는 현관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사무실 벽면에 붙어 있는 다양한 영화 굿즈들을 보고 제대로 찾아왔음을 알았다. 잠시 뒤 음료수를 사들고 환한 미소를 지으며 어주영 씨네핀하우스 대표가 들어왔다.
영화 굿즈 제작업체 운영 어주영 씨
1919~2019. 한국영화 100년의 시간이다. 그 100년의 흐름 속에 우리나라 영화 역사의 시작점을 알리는 특별한 순간들이 ‘물건’으로 담겼다. 1919년 한국 최초의 영화 <의리적 구토> 상영으로 한국영화 100년의 시작을 알린 극장 단성사. 1919년 11월 5일 창간된 한국 최초의 영화 잡지 <녹성>. 한국영화의 선구자 나운규 감독과 그가 남긴 기념비적인 작품 <아리랑>(1926). 이 위대한 유산을 담은 배지 3종은 한국영화 100주년을 기념해 나온 공식 ‘굿즈(특정 브랜드나 연예인 등이 출시하는 기획 상품)’ 중 일부다. 이 외에 100주년 굿즈는 노트, 연필, 가방 등 생활용품과 슬레이트와 카메라, 감독 의자, 메가폰, 영사기와 필름캔 등 영화 현장 장비를 디자인했다.
부산지역 영화학과 학생, 창업에서 미래를 보다
어주영 씨네핀하우스 대표는 한국영화 100주년 굿즈를 도맡아 제작했다. 어 대표가 영화 전공자라는 사실이 흥미롭다. “부산에 있는 한 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했다. 제작뿐 아니라 내 작품도 몇 편 찍어봤고 그중엔 영화제에 출품한 것도 있다. 전공과 관련된 과외 활동도 많이 했다. 현장 일은 물론 영화제 활동은 안 해본 게 없을 정도다. 그러면서 확실히 알게 됐다. 영화 현장이 내 길이 아니라는 걸.”(웃음)
대학 다니는 동안 치열하게 전공과 부딪치며 달려온 어 대표가 찾은 미래는 ‘영화 굿즈’ 산업이다. “여러 영화제에서 스태프로 일하면서 한정판 굿즈를 수집하는 취미가 생겼다. 하나둘 모으다 보니 시장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영화 굿즈를 전문으로 만드는 스튜디오가 생겨나는 걸 보았고, 내가 직접 해보고 싶어졌다. 시장 조사를 했더니 부산에는 영화 굿즈만 전문으로 만드는 업체가 단 한 곳도 없었다. 이 길이다 싶었다.” 확신에 찬 영화학과 학생은 서울로 올라가지 않고 부산에 영화 굿즈 업체를 창업했다. 졸업한 해인 2018년 5월의 일이다. 한국영화 100주년 굿즈가 영화학과 출신 청년기업의 손에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온 이유다.
영화 굿즈계의 샛별로 떠올라
창업 이듬해인 2019년 어 대표는 영화 굿즈계의 샛별로 떠올랐다. 앞서 언급한 한국영화 100주년 굿즈를 포함해 지난 1년간 작업한 물량이 무려 86건이다. 궁금증이 뒤따른다. 정부의 창업 지원을 받았을까?
“청년창업지원센터에 지원을 신청 했다. 그 외 다양한 창업 지원제도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준비를 했지만 서류 준비하는 게 만만치 않았다.” 그보다는 손수 디자인한 작업물을 누리소통망(SNS)에 올려 홍보에 나섰다. “작업한 그림을 인스타그램과 트위터, 블로그에 똑같이 올렸다. 인스타그램에 올린 게시물을 보고 첫 주문이 들어왔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라는 제목의 프랑스 영화였다. 이후 트위터나 블로그에 올린 게시글을 보고서도 연락이 왔다. 굿즈가 만들어질 때마다 SNS에 올렸다. 그러면서 또 주문이 이어졌다.”
어 대표가 제작을 의뢰하는 발주업체, 즉 영화사들이 모여 있는 서울이 아닌 고향 부산에서 창업한 건 어쩌면 탁월한 선택일지 모른다. 국내 최대 규모의 영화제가 부산에서 열리고, 영화진흥위원회나 영상물등급위원회 등 관련 기관들이 부산에 소재하고 있다. 지역 기업이자 여성 기업인 씨네핀하우스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은 부산 지역 내 기관들과 작업에서도 보인다. 부산영화제와는 2년째 작업한다. 씨네핀하우스는 영상물등급위원회의 굿즈도 제작했다. 좋은 품질과 작업 방식에 대한 신뢰가 업체 선정에 크게 작용했겠지만 지역 업체에 대한 호감도 보탬은 됐을 터다.
영화 <기생충>, 드라마 <호텔 델루나> 등 작업
영화학도에서 디자이너로 변모하는 과정은 어땠을까. “학생 영화는 미술도 직접 한다. 자연스럽게 학교 다닐 때 디자인을 배우게 됐다. 포토샵, 영상 모두 가능하다. 지금도 디자인 서적을 많이 보면서 배우고 있다.”
어 대표가 추구하는 디자인 방향도 궁금하다. “영화에서 제일 좋았던 ‘키 이미지’를 떠올리게 만드는 게 목표다.” 어 대표가 ‘좋아하는 영화를 손에 만져지는 매체로 소유할 수 있는 점’을 영화 굿즈의 매력으로 꼽은 것과 일맥상통한다. 그렇기에 어 대표는 영화와 드라마를 보고 굿즈를 제작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영화의 감동을 오래 기억할 수 있는 굿즈를 만들려고 영화 속에 등장하는 소재와 소품을 이용해 제작하기 때문이다.
예외는 있다. 개봉 전에 만들어 홍보 마케팅 수단으로 굿즈가 활용되고 있는 탓이다. 최근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관왕을 거머쥔 <기생충>의 작업 과정을 물었다. “미공개 스틸컷을 많이 보내줬다. 핵심 포인트를 잡아 여러 시안을 작업해서 보냈고, 그중 다섯 개가 추려졌다. 혹여 영화를 못 보고 작업한 경우엔 개봉하자마자 쏜살같이 극장으로 달려간다. 굿즈에 담은 장면이 뭔지 확인하러.” 정확한 작업 물량은 영업 비밀에 부쳤다. “영화마다 다르다. 상업영화나 관객이 많이 들 것으로 예상하는 영화는 많이, 작은 영화는 적게 주문이 들어온다. 대략 상영관 수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작업하면서 가장 걸리는 문제는 저작권이다. “한국영화 100주년 기념 굿즈로 결국은 불발됐지만 ‘연대기 북’을 만들고 싶었다. 100년 영화사에서 기억에 남을 만한 영화 100편의 스틸북이다. 그런데 100편의 스틸 저작권을 해결하는 게 어려웠다. 영화 굿즈는 인물을 사용하면 초상권과도 연결되고, 제작자와 감독 등의 허락도 필요하다. 개봉 예정 영화들은 마케팅의 하나로 활용되기 때문에 그런 면에서 조금 수월한 편이다.”
영화 굿즈에도 트렌드가 있을까. 어 대표는 “인물 중심에서 소품이나 소재 중심으로 이동하는 추세”라고 전한다. 2019년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을 비롯해 지금까지 해외에 신드롬을 일으키는 <기생충>의 배지 5종이 대표적이다. 기생충 로고와 영화 속 주요 소품인 인디언 모자, 산수경석, 케이크, 자화상을 굿즈로 디자인했다. <기생충> 제작진이 굿즈에 매료돼 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영화 외 굿즈 작업도 여럿 하고 있다. 넷플릭스 화제작 <기묘한 이야기 3>와 드라마 <호텔 델루나> 굿즈를 제작했는데 팬들의 반응이 좋았다. 최근엔 시즌 2로 돌아온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2>와 웨스틴 조선호텔 서울과도 작업했다. “<호텔 델루나>는 마지막 2, 3편 방영을 앞두고 작업 의뢰가 들어왔다. 물량도 최고로 많았다. 무엇보다 팬들의 반응을 보면서 그들이 원하는 작업물을 만들 수 있어 좋았다. 개봉 전에 내 느낌만으로 작업하는 영화와는 다른 체험이었다.” 드라마나 기업체들의 굿즈 열기도 점점 커지는 추세다.
일자리 늘리기에도 관심 기울일 계획
어 대표와 공동 창업자인 최지은 실장의 협업은 대단하다. 기획과 디자인 작업은 어 대표가 맡고, 상담 등 나머지를 최 실장이 도맡는다. 회사가 성장하면서 작업의 효율성도 크게 향상되었다. “요즘엔 시안 잡는 데 일주일, 제작하는 데 10일 정도 걸린다. 창업 초창기를 생각하면 엄청 빨라졌다. 그땐 제작 기간만 한 달 반이 걸리기도 했다. 이 공장, 저 공장 맡길 때였다. 이제는 우리 일만 전담하는 공장이 생겼다.”
어 대표는 2020년 목표를 정했다. “디자이너를 직원으로 채용해 일자리 늘리기에도 관심을 기울일 계획이다. 그리고 앞으로 회사를 종합 디자인 스튜디오로 키우고 싶다. 중심은 당연히 영화 굿즈다. 재밌는 콘텐츠를 곁에서 오래 기억에 남게 도와주는 역할이고 싶다.”
어주영 대표가 자랑하는 굿즈 베스트3
#하나. 한국영화 100주년 굿즈
키워드 역사, 기념, 소장, 실용성 구성 총 10종 생활용품 100주년 노트, 콘티 노트, 연필, 가방, 영화 장비 배지 3종(슬레이트와 카메라, 감독 의자와 메가폰, 영사기와 필름캔) 영화사 배지 3종(활동사진 잡지 <녹성>, 단성사, 나운규 감독과 <아리랑>)
“100주년 굿즈는 ‘100년에 한 번’ 만들 수 있다는 막중한 책임감을 안고 작업했다. ‘200주년이 되면 100주년 기록을 찾아보지 않을까?’라는 생각과 ‘100주년 굿즈를 오마주하면 어쩌지’ 하는 혼자만의 상상도 하면서. 그래서 한국 영화사의 의미 있는 한 부분을 언급하고, ‘100’이라는 기념비적 숫자를 강조하고, 굿즈로서 실용성과 소장가치를 담기 위해 구성과 디자인 모두 철저히 설계했다.”
#둘. 영화 <기생충> 굿즈
키워드 한국영화, 봉준호 감독, 스틸컷, 컬렉션구성 배지 5종, 기생충 로고/ 인디언 모자/ 산수경석/ 케이크/ 자화상
“<기생충> 크랭크인 소식을 들은 날, 우리가 <기생충> 굿즈 만들면 좋겠다며 최지은 실장과 우스갯소리를 나눈 적이 있다. 홍보사로부터 굿즈 의뢰가 들어온 날, 통화가 끝나자마자 그 자리에서 맨발로 춤을 추었다. 작업할 기회가 많지 않은 한국영화 굿즈인 데다 봉준호 감독님 작품이라, 내 영화를 찍는다(?)는 마음가짐으로 임했다. 5개 배지를 나란히 뒀을 때 시리즈처럼 보일 수 있게 배경지 형식을 통일했다.”
#셋. CGV아트하우스
히치콕 특별전2 굿즈
키워드 히치콕 감독, 판매, 키 이미지 구성 배지 6종, 틴 케이스, 성냥, 스티커 5종
“작은 배지 안에 히치콕 감독의 영화 한 장면을 세밀하게 표현하는 게 임무였다. 구매하는 분들 반응이 궁금해 숍에 슬쩍 가보기도 했다. 배지는 기존 4종에서 6종으로 추가되고, 영화 커뮤니티에 구매후기가 올라오는 등 반응이 좋았다. 즉각적인 구매 반응을 볼 수 있어 떨렸던 작업이다.”
글·사진 심은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