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약 27만 쌍의 부부가 탄생했다. 이때 약 100만 벌의 합성섬유 의류가 만들어졌다. 한 번의 결혼식에 사용되는 꽃은 1000송이 정도다. 이 꽃은 식이 끝나면 버려진다. 뿌려지는 청첩장과 남는 음식물도 만만치 않다. 친환경 결혼식을 꾸리는 ‘대지를 위한 바느질’에 따르면 한 해 결혼식으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493만 톤이다. 배출된 이산화탄소를 상쇄하려면 4억 3000만 그루의 나무가 필요하다. ‘대지를 위한 바느질’의 이경재 대표는 ‘나만 잘사는 결혼식이 아니라 지구도 살리는 결혼식이 없을까’를 고민했다.
“보통 드레스는 단가를 낮추기 위해 합성섬유로 만들어요. 대여를 하더라도 합성섬유 드레스는 서너 번 입으면 버려야 하는데 썩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죠. 디자인을 공부하던 대학원에서 ‘옥수수 원료’를 이용해 섬유를 만들 수 있다는 걸 배웠어요. 여기에 한지, 쐐기풀 등을 이용해 친환경 섬유를 뽑아낼 수 있었죠.”
‘대지를 위한 바느질’은 2008년 설립했다. 지난 10년 사이, 혼인율은 줄었지만 ‘작은 결혼식’의 비중은 높아졌다. 환경을 생각하는 ‘에코 웨딩’에 관심을 갖는 이들도 늘었다. 이효리·이상순, 이나영·원빈, 구혜선·안재현 부부 등 유명인이 새로운 웨딩 트렌드를 만들었고, ‘남 보기에 좋은 결혼식보다 우리에게 뜻 깊은 결혼식’을 꿈꾸는 이들이 많아졌다. 허례허식을 버린 자리는 지속 가능한 아이디어로 채워졌다.
옥수수 전분으로 만든 드레스는 일반인은 구분이 어려울 정도로 실크와 비슷하다. 가격은 천연실크의 60% 정도다. 원료는 재생할 수 있고 땅에 묻으면 생분해된다. 한지의 재료인 닥나무에서 뽑아낸 실은 가볍다. 이 실로 섬유를 만들면 면보다 땀을 잘 흡수해 쾌적하고 세탁도 쉽다. 쐐기풀 섬유는 해충에 강하다. 면화는 해충에 약해 살충제를 써야 하는 소재지만, 쐐기풀은 농약이나 비료 없이 잘 자라고 다른 섬유와도 잘 섞인다. 이 천연섬유들은 표백과 형광 처리 과정이 없어 원단 생산부터 가공까지 환경을 망가뜨리지 않는다. 결혼식이 끝나면 원피스나 생활 정장으로 바꿔 입을 수도 있다. 무엇보다 자연에서 태어난 옷은 땅에 묻으면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 양분이 된다.
* 친환경 웨딩 문의 : 대지를 위한 바느질(www.sewingfortheso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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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에코 웨딩'으로 작은 결혼식을 치른 신혼부부 2 친환경 웨딩을 디자인하는 이경재 대표 ⓒ대지를 위한 바느질 3 친환경 재생 용지로 제작한 콩기름 청첩장 ⓒ이베카
뿌리 자르지 않은 부케, 재생 가능한 청첩장
드레스와 턱시도만 입는다고 결혼이 되는 건 아니다. 결혼을 알리는 청첩장과 식장을 꾸밀 꽃송이도 필요하다. 이렇게 소모되는 꽃의 양은 연간 450만 송이, 청첩장은 1억 5000만 장 정도다. 화환은 정중히 거절한다고 해도 서로의 체면상 보내는 경우가 많다. 식에 쓰이는 꽃은 뿌리가 잘려 있기 때문에 끝나면 폐기된다. 친환경 결혼식에서는 부케와 부토니에르의 뿌리를 자르지 않는다. 예식을 마친 뒤 화분에 옮겨심기 위해서다. 꽃길이나 화환도 화분으로 대신한다. 예식 후에도 간직할 수 있어 신랑신부에게는 추억을 되새기는 의미가 있고, 하객들에게는 뜻 깊은 답례품이 된다.
비영리단체 ‘그린웨딩포럼’과 ‘생명의숲’은 결혼식 준비 과정에서 부득이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를 상쇄하기 위해 신랑신부가 함께 나무를 기부하고 숲을 가꾸는 ‘러브그린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캠페인에 참여한 신랑신부는 매년 봄, 나무심기 행사에 참여한다. 에코 웨딩이 환경 친화적인 삶으로 이어지는 모습이다. 에코 웨딩의 바람이 먼저 불기 시작한 유럽에서 비슷한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런던을 대표하는 공원 하이드파크에는 결혼식을 치른 부부가 기부한 나무로 조성된 숲이 있다. 2011년 영국의 축제였던 윌리엄 왕세손과 케이트 미들턴 왕세손빈의 결혼식도 에코 웨딩으로 치러졌다. 케이트 미들턴은 친환경 드레스를 입었고, 예식에 쓰인 장식품과 식기는 모두 재활용이 가능한 소재로 준비했다.
청첩장도 환경 친화적으로 만들 수 있다. 되도록 모바일 청첩장을 이용하는 게 좋지만, 부득이 종이 청첩장이 필요한 경우 비목재 재생용지에 콩기름으로 인쇄한 청첩장이 대안일 수 있다. 실제로 청첩장은 일반 카드보다 후가공이 많고 손이 많이 가는데 결혼식이 끝나면 효용을 다하는 폐기물이 되고 만다. 친환경 청첩장을 만드는 ‘이베카’에서는 종이 사용량이나 인쇄 과정을 줄이기 위해 봉투 없는 청첩장, 책갈피로 활용 가능한 청첩장 등을 고안했다. ‘대지를 위한 바느질’에서는 예식 후에는 종이 액자로 재활용할 수 있도록 3×5인치(7.6×12.7cm)로 제작하거나 손수건을 만들어주기도 한다.
* 친환경 청첩장 문의 : 이베카(www.ibek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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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천연 섬유로 만든 웨딩드레스 ⓒ대지를 위한 바느질 2 현지인에게 수익이 돌아가는 공정 여행 ⓒ트래블러스맵
음식 남기지 않는 에코 결혼식
피로연 역시 결혼식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대부분은 뷔페로 이루어지는데 식수 인원이 정해져 있는 만큼 음식은 대량으로 만들어지고 또 버려진다. 이때 대안이 되는 에코 웨딩이 ‘소풍 결혼식’이다. 서울시는 에너지와 자원을 절약하는 ‘공원에서의 작은 결혼식’을 월드컵공원, 남산공원, 양재시민의 숲에서 진행하고 있다.
‘공원에서의 작은 결혼식’은 1일 최대 2예식으로 시간에 쫓기지 않는 결혼식이 가능하다. 대관료는 무료이지만 지켜야 하는 규칙이 있다. 하객 수는 200명 이내, 청첩장은 재생용지를 사용해야 하고, 일회용품 사용을 제한한다. 중요한 건 음식이다. 피로연 음식은 비가열 음식인 도시락이나 샌드위치로 준비한다. 인원에 맞춰 준비하기 때문에 남는 음식물이 거의 없다. 소풍 결혼식을 선택한 부부는 이렇게 절약한 비용을 기부한다. 지난해 소풍 결혼식을 올린 부부들은 결혼식에 사용된 꽃을 나누고 쌀화환을 기부하거나 식장 내 모금함을 설치해 축의금을 기부했다. 2017년 4월 월드컵공원에서 소풍 결혼식을 올린 오상택·신효주 부부는 청첩장 제작비용의 10%와 결혼식 당일 모금한 돈을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해 기부했다. ‘사람을 위한 세상을 위해 노력하며 살아가는 부부가 되겠다’는 혼인서약의 첫 번째 실천이었다. 2017년 소풍 결혼식을 올린 열쌍이 지불한 평균 예식비용은 650만 원, 식장 대관료와 음식, 식장 꾸밈비와 헤어메이크업을 포함한 금액이다. 웨딩 컨설팅 회사인 듀오 웨드의 자료를 보면 일반 결혼식의 경우 평균 비용이 1905만 원가량 든다. 60% 이상을 절약한 셈이다.
‘작은 결혼 정보센터’를 이용하면 소풍 결혼식뿐 아니라 숲속 결혼식, 캠핑 결혼식도 안내를 받을 수 있다. 실내 예식장의 샹들리에 대신 나무와 나무 사이를 연결한 가렌더, 두꺼운 책자 대신 나뭇잎으로 만든 방명록 등을 만들 수 있다. 캠핑 결혼식은 저녁에도 가능하다. 별빛을 볼 수 있는 결혼식으로 석양이 질 무렵부터 진행한다. 부케는 숲에서 구할 수 있는 솔잎, 솔방울 등으로 만들고 신부 대기실은 캠핑카로 꾸민다. 경기 가평의 유명산자연휴양림, 경남 남해의 남해편백자연휴양림, 경북 영덕의 칠보산자연휴양림에서는 숲속 수련장을 예식장으로 쓸 수 있다.
* 작은 결혼 정보센터 : smallwedding.or.kr
다이아몬드보다 영원한 타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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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지 대신 새긴 커플 타투 ⓒ#tattooring
‘다이아몬드는 영원하다’는 말의 이면에는 ‘블러드 다이아몬드’의 진실이 있다. 이 고가의 보석에는 원주민 노동자의 피땀이 담겨 있다. 산림 파괴와 원주민 착취, 돈세탁이나 내전자금의 보급로로 사용되는 다이아몬드 대신 두 사람에게 의미 있는 예물을 주고받는 이들이 있다. 장롱에 모셔놓다 애물단지가 될 예물보다 평소에 편하고 부담 없이 낄 수 있는 예물을 준비하는 것이다. 재료는 다양하다. 연애 때 끼던 커플링을 리폼하거나 매듭, 은, 나무, 스테인리스, 티타늄 등 저렴하면서도 단단한 제품으로 예물을 만든다. 최근에는 타투도 인기다.
사랑의 서약을 약지에 새겨 변치 않는 약속을 남긴다. 인스타그램에 ‘#tattooring’을 검색하면 금속 반지 대신 타투 반지를 나누어 낀 커플의 모습을 볼 수 있다. 2013년 제주도에서 에코 웨딩으로 결혼식을 올려 작은 결혼식의 불을 지핀 이효리·이상순 부부도 보석 대신 약지에 같은 타투를 새겨 넣었다.
신혼여행은 공정 여행으로
유럽에서 유행하는 윤리적 결혼식의 기준은 대중교통이 가능한 장소에서 결혼하기, 재활용이 가능한 물품 사용하기, 로컬 푸드를 사용해 생태에 기여하기 등이 있다. 여기에 패키지여행을 지양하는 공정 여행에 대한 감수성도 깨어나고 있다. 일례로 ‘물의 낙원’이라 불리는 몰디브는 신혼여행지의 대명사다. 하지만 현지인은 하루 1달러 이하로 생활하는 극빈층이 42%에 달한다. 관광업에 종사하는 이들이 전체 인구의 83%인데 리조트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은 3~4평(9~13㎡) 남짓한 방에서 6~10명이 함께 산다. ‘관광 식민지’라 불리는 이유다. 패키지여행의 그늘은 또 있다. 매년 190만 명이 방문하는 발리 리조트는 온수와 폐수로 연안어업이 황폐해졌다. 필리핀의 보라카이, 태국의 마야 베이도 쓰레기 대란으로 폐쇄 조치에 들어갔다.
‘허니문이 붙으면 바가지 쓰는 걸 각오해야 한다’는 불문율이 있을 정도로 신혼여행에는 거품이 많다. 여행업체는 ‘일생에 한 번뿐인 여행이니 이때라도 호사를 누려봐라’라는 심리를 부추긴다. 웨딩 전문기업 아이니웨딩의 조사에 따르면 2017년 신혼부부들이 가장 선호하는 신혼여행지는 하와이였고, 평균 비용은 1인당 250만 원이었다. 가장 비싼 곳은 타히티로 두 사람이 다녀올 경우 1000만 원 정도가 들었다.
하지만 ‘일생의 한 번뿐인’ 여행을 착하게 다녀오는 방법도 있다. 공정 여행 사회적 기업인 ‘트래블러스맵’은 지역경제를 살리는 여행, 자연을 보호하는 여행, 문화를 존중하는 여행을 추구한다. 이들은 대중교통을 이용해 현지인을 만나고 에코투어 가이드와 연계해 국립공원을 방문하며, 재래시장에서 장을 보는 여행을 디자인해준다. 지역민이 운영하는 숙박시설과 식당을 이용하기 때문에 여행의 수익이 현지인에게 돌아가는 구조다. 이들이 지역사회로 환원하는 관광 소비는 95% 정도, 일반 패키지 상품의 환원비율인 20%를 훨씬 웃돈다. 트래블러스맵의 변형석 대표는 “일반 패키지 상품의 만족도는 60% 후반대지만, 공정 여행의 만족도는 80%를 넘는다”고 말한다. 윤리적 소비는 가치관과 삶의 태도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실제로 에코 웨딩으로 결혼식을 진행한 신혼부부의 발걸음이 공정 여행으로 향하는 경우가 많다. ‘대지를 위한 바느질’의 이경재 대표가 펴낸 책 <잇츠 마이 웨딩>을 보면 친환경 결혼식을 올린 이후 탄소 배출량을 최소한으로 줄이는 여행을 다녀온 신혼부부 여덟 쌍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정욱·남지민 부부는 신혼여행지로 ‘라오스 자원봉사’를 선택했다. 이들은 신랑과 신부가 평등한 관계를 맺듯 “여행객과 여행지의 사람이 평등한 관계를 맺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 공정 여행 문의 : 트래블러스맵(www.travelersmap.co.kr)
유슬기│위클리 공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