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과 동시에 빠르고 화려하게 날아오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느리지만 꾸준히 성장하는 사람이 있다. 이를 두고 동기 부여 콘텐츠 제작 스타트업 ‘열정에 기름붓기(이하 열기)’는 ‘로켓 같은 사람’과 ‘열기구 같은 사람’이라고 표현한다. ‘열기구에 기름을 붓는다면’, ‘열기구 같은 사람이 더 많아진다면’. ‘열기’의 출발점은 여기에 있다. 세상 어딘가 숨어 있는 또는 아직 발견되지 않은 수많은 ‘열기구’가 더 높이 날아오를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한다. 열기구는 누구나 될 수 있다.

▶ 김광석 에디터(왼쪽),이재선 대표가 서울 마포구에 있는 ‘거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C영상미디어
‘열기’는 이재선·표시형 공동대표를 포함, 열네 명의 직원이 움직이는 회사다. 2014년 1월 말 페이스북 페이지를 필두로 현재 카카오, 인스타그램, 다음 1boon 등 8개 소셜네트워크서비스 채널에 제작 콘텐츠를 제공한다. 콘텐츠는 ‘동기 부여’라는 큰 틀 아래 카드뉴스, 동영상 등 여러 모양이다.
“콘텐츠 자체가 동기 부여 성격을 띤다면 그 형태는 제한을 두지 않아요. 자기계발서, 경제·경영서, 에세이 등 동기 부여가 가능하다고 판단한 내용을 중심으로 콘텐츠를 만들어요. 개인에게 얼마든지 적용할 수 있는 이야기라면 기업이나 마케팅 성공사례도 소재가 돼요.”
동기를 부여한다는 건 결국 대상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행위다. 열기가 메시지 전달에 앞서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무게를 두는 이유다. 열기 콘텐츠 에디터들은 콘텐츠를 만드는 동안 자신들의 마음을 채우고 비우길 반복한다. 이들은 콘텐츠를 흡수할 불특정 대상을 구체화하고 그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 일부러 우울해진다. 그 우울감에서 벗어나는 과정을 써낸 글이 주 콘텐츠가 된다.
따지고 보면 ‘동기 부여 콘텐츠’는 ‘슬기나 재능, 사상 따위를 일깨우다’라는 의미의 ‘계발’과 다르지 않다. 이미 성공한 사람의 시선에서 풀어낸 자기계발서가 누군가에겐 부정적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처럼, 열기의 이야기 또한 모두의 공감을 이끌어내긴 어렵다. 그래서 열기는 흐름을 읽는다.
“초기 1년까지는 ‘으싸으싸, 하면 돼’와 같이 대놓고 하는 전형적인 메시지가 인기였어요. 서서히 부정적인 피드백이 보이더라고요. 기조를 바꿔야겠다고 결심했고, 이후엔 수용자를 이해하는 메시지를 담았죠. 그런데 최근 1~2년 사이에 또 흐름이 달라졌어요. ‘자기다움’이 담긴 콘텐츠여야 해요. ‘당신만의 색을 확고히 한다면 기성세대의 논리와 다른 길을 걸어도 목표점에 도달할 수 있다’고 계속 보여주는 겁니다.”
사회를 움직인 콘텐츠
콘텐츠는 통했다. 열기 페이스북 페이지 기준 팔로우는 66만 명, 누적 조회수는 1억 건을 돌파했다. 온라인상 인기를 가늠할 수 있는 수치 측면에서 단연 돋보이는 성적이다.
요즘 열기는 영상 콘텐츠 기획에 보다 적극적이다. 콘텐츠를 온라인에서 바이럴(Viral,네티즌의 입소문을 타고 자연스럽게 확산되는 현상 및 마케팅 기법)되고 끝나는 것이 아닌,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연결고리로 바라보고 있어서다. 영상 속 이야기의 주인공은 사회적으로 유명하거나 알려진 사람들이 아니다. 뚜렷한 소신을 갖고 묵묵히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 자체로 수익을 가져오는 콘텐츠는 아니다. 하지만 영향력은 분명하다. 소아당뇨를 앓고 있는 자녀를 둔 김미영 씨의 사연을 소개한 동영상이 한 예다.

▶ 열정에 기름붓기가 김미영 씨 사례로 제작한 동영상 캡처 화면(위) ⓒ열기
지난 7월 19일 김미영 씨가 의료기기 규제혁신 및 산업 육성 방안 정책 발표장에서 사례 발표를 하고 있다.(아래)ⓒ연합
김미영 씨는 어린 아들을 위해 피를 뽑지 않고도 혈당을 측정하는 의료기기를 해외에서 들여왔다. 또 영어를 할 줄 모르는 환우 가족들을 대신해 기기를 구매했는데, 이 과정에서 의료기기법 위반 혐의로 식약처로부터 고발당했다. 이 사연을 담은 동영상의 파급력은 대단했다. 각종 SNS를 매개로 퍼지더니 언론이, 정부가 주목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7월 ‘의료기기 규제혁신’ 현장 방문 행사에서 이 사연을 직접 언급했다. 당시 현장에서 해당 동영상이 재생되기까지 했다. 문 대통령은 “소명이 어머니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깊은 반성을 안겨준다”며 “의료기기 산업의 낡은 관행과 불필요한 규제를 혁파하겠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우리 콘텐츠가 세상의 긍정적 변화에 영향을 준 거다. 회사가 그 일로 돈을 번 것은 아니지만 충분히 고무적이었다”고 웃어 보였다.

▶ 크리에이터 클럽 활동 모습 ⓒ열기
열기는 온라인에만 머물지 않았다. 2017년 6월 ‘크리에이터 클럽(크클)’으로 오프라인 활동을 본격화했다. 크클은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거실’이라는 이름이 붙은 서울 마포구 소재 공간에 모여 매일 밤 경험과 생각을 나누는 유료 소셜 살롱이다.
“가족 단위로 살 때를 떠올려보세요. 내 방이 있고, 밖으로 나오면 거실이 있고, 그곳에선 가족들과 대화를 나눴단 말이죠. 하지만 이제 많은 청년이 원룸에 혼자 살잖아요. 방문을 열면 거실은 커녕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옆방이에요. ‘이런 청년들에게 필요한 건 편하게 대화할 수 있는 공간과 사람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도 그중 한 명이고요.”
크클은 참여자 스스로 더 나은 방향을 찾아가도록 환경을 제공할 뿐 깊이 관여하지 않는다. 덕분에 참여자들은 정기모임 외에도 자신의 재능을 활용할 수 있는 소모임을 자발적으로 열고 있다. 회원 수는 720명. 소방관, 아티스트, 마케터, 체육인 등 규모만큼 직업군도 매우 다양하다. 열기는 이들의 이야기를 영상으로 재생산해 온라인에 노출한다. 결과적으로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를 허무는 또 다른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셈이다.
동기를 줄 수 있는 주변 사람, 다시 말해 평범해 보이지만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내는 열기구 같은 사람을 직접 찾아나서는 것도 열기의 역할이다. 이 역할에 힘을 더하겠다는 대기업도 나타났다.
“GS칼텍스에서 연락이 왔어요. 아직 성공하진 못했지만 오늘도 한 걸음 성장했고, 투자자를 찾기보단 자신의 힘으로 날고 있으며, 누군가에게 에너지를 나눠주는 사람을 찾는 일을 함께하고 싶다고 했어요. 그렇게 시작된 게 ‘프로젝트 열기구’예요.”
“기름이란 변화의 동력”
프로젝트 열기구는 특정인을 소개하는 걸 넘어 그들의 성장을 돕는 게 목표다. 첫 결과물로 ‘에이드런’과 ‘열린 옷장’을 발굴했다. 에이드런 구성원들은 미술교육 봉사활동 중 아이들과 대화에서 얻은 디자인적 영감을 상품으로 만들어 판매하고, 그 수익을 아이들에게 돌려준다. 열린 옷장은 기증 받은 정장을 청년들과 공유함으로써 취업 준비 부담을 덜어주는 비영리단체다.
김광석 에디터는 “선한 영향력을 가졌는데 기회가 없어서 덜 알려진 사람이나 기업을 만났을 때 나 역시 일할 동기, 살아갈 동기를 얻는다”고 말했다. 그는 열기에 입사하기 전 군복무 시절부터 열혈 구독자였다. 열기의 글을 읽으며 위로를 얻었고, 자신도 이곳에서 누군가의 생각에 감동을 주고 싶었다.
“보다 좋은 게, 보다 옳은 게 무엇인지 알면서도 현실 때문에 따르지 못하는 사람이 비단 저뿐만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어요. 당시 열기 홈페이지 배너에 이런 문구가 있었어요. ‘모든 것은 바뀔 수 있다. 그리고 나 역시 무언가를 바꿀 수 있다.’ 실제로 저는 그걸 경험하고 있어요. 제 글을 보고 역경을 이겨냈다는 엽서를 받으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동기, 이상, 가치, 열정 등 열기가 강조하는 키워드만 조명하면 이 스타트업이 회사라는 사실을 잠시 잊는다. 스토리텔링 콘텐츠로 돈을 벌 수 있겠느냐는 우려도 생긴다. 하지만 열기는 엄연히 수익을 내야 하고, 내고 있는 회사다. 수익 모델은 크게 세 가지다. 도서를 선정하고 그 내용으로 콘텐츠를 만들어 수익을 얻는 네이티브 애드(콘텐츠형 광고), 유료 소셜 서비스 크리에이터 클럽, 콘텐츠 커머스다. 콘텐츠 커머스는 열기의 이야기를 담은 제품을 만들어 파는 비즈니스 모델이다.
“지난해까진 여러 수익 모델을 시도했다면 올해는 모델을 구체화하고 본격화하는 단계고, 내년에는 안정화시켜야 하는 때죠.”
열정에 기름붓기는 공식 블로그를 통해 “기름 떨어지면 오세요”라고 말한다. 이재선 대표에게 그 의미를 물었다.
“이젠 ‘열정적으로 사세요’라는 일방적 조언은 해결책이 되지 않아요. 대신 매일 아침 계획을 짜고 저녁에 점검하고, 잘 안 풀리는 일이 있다면 조금 기다려보고 하는 이런 작은 습관들을 함께해보자고 북돋아야죠. 사소한 변화일지라도 그것을 일으킬 수 있는 동력, 그게 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