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림워커 서정은(34) 대표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19세에 창업했다. 온라인쇼핑몰을 시작으로 주로 의류 브랜드 사업을 해오고 있다. 사업의 목표는 자신만의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다.
“온라인에서 단지 싸게 만들고 싸게 파는 것은 브랜드가 아니에요. 브랜드는 나름의 ‘가치’가 있어야 해요.”
10대부터 사업을 하면서 나만의 브랜드가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생각을 굳혔다. 그가 정의하는 브랜드는 ‘가치 있고, 그 가치에서 메시지가 나오는 것’이다. 그는 ‘세상에 하고 싶은 말’, 그것이 바로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고통받는 거위를 보고 시작
무엇을 이야기할까. 아주 우연한 기회에 세상에 하고 싶은 이야기가 떠올랐다. 작년에 우연히 보게 된 유튜브 영상에서였다.
“산 채로 거위 털을 뽑더라고요. 거위가 비명을 지르는데 아랑곳하지 않고 마구 털을 뽑는 모습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어요.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아직도 저런 가학적인 방법을 쓰나 싶었어요. 패션업계 종사자로서 다른 방법은 없는지 내가 해야 할 일을 고민하게 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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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리구스 패딩을 소개하는 서정은 대표(가운데)와 직원들 ⓒC영상미디어
패션업계에서 추운 겨울 ‘구스다운’은 필수 아이템이다. 거위의 목과 가슴에 있는 부드러운 솜털, 즉 다운(down)은 가볍고 따뜻해서 겨울 옷과 이불 등에 많이 사용된다. 지난해 겨울, 평창동계올림픽을 준비하면서 한정판 패딩이 나오자, 손님들이 대거 몰려들어 백화점 문 앞에 줄을 서가며 구입해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추위를 막아주는 고마운 다운재킷이지만, 만들어지는 과정은 그리 아름답지 않은 셈이다.
식용이나 산란용으로 사육되는 오리와 거위는 보통 생후 10주부터 솜털을 뜯기기 시작한다. 한 번에 끝나는 것이 아니다. 자라면 뽑고, 또 자라면 뽑는 과정이 6주 간격으로 계속된다.
거위와 오리는 일생 동안 최소 다섯 번에서 심하면 열다섯 번이나 털을 뽑힌다. 한 마리에서 나오는 깃털과 솜털은 최대 140kg으로 보통의 패딩 하나를 만들려면 15~20마리의 털이 필요하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서 대표는 또 다른 방법을 모색한 끝에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유행이 지나 버려지는 많은 옷들에서 털을 재활용하면 좋지 않을까.’
평소 ‘메시지가 있는 브랜드’를 만들고 싶었던 서 대표는 버려진 다운 의류나 침구류에서 털을 재활용해서 다운재킷을 만들었다. 그리고 ‘베리구스’라는 브랜드 이름을 붙였다.
“매우 좋으면 ‘베리 굿(very good)’. 좋은 물건이면 ‘베리 굿즈(very goods)’. 거위를 살리는 좋은 털로 옷을 만들었으니 ‘베리구스(very goose)’라고 이름 붙였죠.”
요즈음 동물 보호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다. 물론 서 대표 자신도 고기를 먹는 평범한 사람이긴 하지만 불필요하게 동물을 학대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이러한 생각을 세상에 전하고 싶어 한다. 요약하면 베리구스라는 브랜드의 사회적 가치는 ‘매년 변하는 유행에 따라 무의미하게 사라지는 오리, 거위의 털을 줄여보자’는 것이다.

▶ 1, 2 버려진 패딩은 수거업체 창고에 쌓인다. 이 중 구스패딩을 따로 수집해 업사이클링 작업을 시작했다.
3, 4 헌옷에서 구스 털을 뽑는 모습. 직원과 아르바이트 학생 10여 명이 수작업으로 버려진 패딩에서 구스 털을 뽑아낸다. 구스 털은 세척과 향균 과정을 거쳐 재활용된다. ⓒ드림워커
아이디어는 좋을 수 있지만 막상 실행하는 데는 어려움이 따랐다. 소위 업사이클링(up-cycling, 재활용품으로 가치를 높인 제품을 만드는 것)이라고 불리는 방식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버려지는 패딩을 모아야 했다. 이 일은 쉽지가 않았다. 버려진 옷은 수거 업체의 손을 거쳐 한곳에 모아진다. 여기서 쓸 만한 것은 선별해 제3국으로 수출한다. 따라서 헌옷 수거업체에 버려진 거위·오리털 제품을 모아달라고 수차례 부탁했지만 대부분 거절당했다. 결국 추가 비용을 들여서 전국에서 2000kg의 패딩을 수거했다.
일단 헌 패딩을 모으는 일은 이뤄졌지만, 그 이후가 더욱 문제였다. 패딩에서 털을 뽑아내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서 대표는 당시 사진을 보여주며 일일이 수작업으로 진행한 털 재생 과정을 설명했다.
“저와 직원뿐 아니라 아르바이트 학생까지 동원해 10여 명이 수작업으로 옷에서 털을 분리해내는 작업을 했어요. 사실 패딩은 털의 뭉침을 막으려고 칸칸이 막아놓아 그것을 일일이 해체하는 게 쉽지가 않더라고요. 직원들이 손에 물집 잡혀가며 고생했는데, 인건비 등을 생각하면 새 털을 사는 것이 저렴할 것 같았어요.”
그의 이야기에 따르면, 중국을 통해 구입할 수 있는 솜털의 가격은 겨울에는 kg당 6만 원, 여름은 반 가격인 3만 원이다.
현실은 이러했지만 서 대표는 사업가로서 다른 생각으로 어려움을 견뎌냈다. 그는 “시험적으로 올해 545벌의 베리구스 패딩을 만들었다”며 “고생한 만큼 사회적 가치를 가진 제품이라 여기고 대중의 반응을 지켜보고 있다”고 했다. 또 “일부러 검은색만으로 가장 기본적인 형태로 디자인했는데, 이것은 디자인 등 다른 요소가 구매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경우 구스 업사이클링 제품이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고 덧붙였다.
다만 사회적 가치를 가진 브랜드이지만 패션 사업은 사회운동이 아니라는 점도 강조한다.
“가치가 있고 의미가 있으니 구입하라고 하면 안 될 것 같아요. 옷이라는 것이 예쁘고 패셔너블해야 판매가 되는 거죠. 일단 사서 입어보고, 이런 좋은 의미도 있었구나 하고 소비자가 그 가치에 공감하며 스스로 만족해 하는 제품이었으면 좋겠어요.”
수작업으로 업사이클링 재생
일단 베리구스 브랜드를 론칭했으니 소비자의 반응이 궁금했다. 그렇다고 무조건 판매할 수 없었다. 서 대표는 “온라인을 통해 판매하면 금세 완판이 되겠지만 그것보다 사회적 이슈를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했다. 소비자의 반응을 통해 무엇보다 이런 제품에 얼마나 많은 관심을 가지며 그런 사람들이 좋아하는 스타일은 무엇인지 소비자와의 간격을 좁히기 위해 고민하는 단계가 있어야 한다는 설명이었다.
사실 베리구스 브랜드의 시작은 패딩을 만들어 파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털을 브랜드화하는 것이었다.
“애당초 베리구스는 충전제 자체, 그러니까 거위나 오리털을 브랜드로 만드는 것이었어요.”
재활용한 털을 모아서 이를 유통시키는 사업을 생각한 것이다. “사람들이 재활용 털로 만든 옷을 좋아하게 되면, 굳이 저희가 만들지 않아도 털 재활용이 크게 확산될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공정무역 원두커피처럼 좋은 사회적 의미를 가진 업사이클링 아이템을 널리 퍼트리고 싶었다”고 했다.
그러나 털 업사이클링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었고, 노하우가 필요했다. 의욕만 가지고는 어림없는 일이었다. 수작업으로 진행된 베리구스의 경우 옷마다 천차만별인 털의 상황도 문제였지만 털을 세척하고 항균 작업까지 마치는 데도 큰 어려움이 있었다. 장기적으로 이를 찾는 사람이 많아지면 자동화 방식까지 연구해야 한다.
이미 해외에서는 버려진 천막을 잘라서 가방을 만들거나, 안 입는 옷을 제3세계 국가에 보내는 방식으로 의류를 재활용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나아가 기존 방식으로 옷을 만들더라도 최대한 원단의 낭비를 없애는 방식으로 재단하는 브랜드도 있다.
누구나 이러한 운동에 찬성하겠지만, 꾸준한 구매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제품 자체의 경쟁력이 중요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구매력을 이끄는 브랜드, 디자인 등의 패션 아이템이다. ‘지속가능한 브랜드 제품’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특히 브랜드가 중요하다. 그래야 꾸준한 판매로 이어진다. 서 대표는 베리구스 브랜드를 만드는 과정을 영화를 찍는 것에 비유한다.
“배우들이 다양한 표현을 하는데, 무언가 메시지가 있어야 하는 것처럼 패션 브랜드 역시 하고 싶은 말이 있어야 해요. 베리구스는 업사이클의 필요성을 이야기하고 있죠. 무엇인가 가치를 창조한다는 점에서 영화와 브랜드를 만드는 작업은 같다고 생각해요. 다른 것이 하나가 있는데, 영화는 엔딩이 있을 수밖에 없지만 브랜드는 지속가능해야 한다는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