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 연남동의 한 카페. 이곳에선 “드시고 가실 건가요? 가져가실 건가요?”라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 개인 용기를 가져오지 않으면 어떤 경우든 테이크아웃이 절대 불가하기 때문이다. 일회용 컵 대신 한편을 가득 채운 유리잔이 이곳 ‘얼스어스(earth us)’의 지향점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지난 8월 1일부터 커피전문점이나 패스트푸드점에서 사용되는 일회용 컵은 테이크아웃 용도로만 가능하고, 이를 어길 경우 매장 면적에 따라 과태료가 부과된다.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 촉진에 관한 법률’, 일명 자원재활용법의 주요 내용이다. 이 정책이 시행된 지 약 두 달이 지난 지금 상당수 카페가 실천에 동참하고 있는데, 얼스어스는 그보다 훨씬 앞서 ‘다회용 컵 사용’ 원칙을 고수해오고 있다.
얼스어스는 ‘지구를 그리고 우리를 위하는 일이 곧 우리를 위한 일이다’라는 의미를 담아 ‘For earth-For us, Love earth-Love us’를 줄여 붙인 이름이다. 환경보호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일상에서 실천하는 길현희 대표의 소신이기도 하다. 여느 카페 풍경과 조금 다른 이유는 여기서 시작됐다.
빨대, 일회용 휴지, 플라스틱 컵 이들은 얼스어스에서 만큼은 결코 찾을 수 없는 세 가지다. 음료와 디저트를 판매하는 곳이라면 지극히 흔한 품목들이라지만 여기선 사용 금지 물품이다. 그렇게 생긴 빈자리는 스푼과 손수건, 다회용 컵이 채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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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매장 한편에 쌓여 있는 유리잔과 손수건 2 얼스어스의 지향점을 담은 작은 그림이 매장 안에 붙어 있다.
3 음료가 담긴 다회용 잔 옆에 손수건과 스푼이 놓여 있다. 4 길현희 대표가 매장 앞에서 웃어 보이고 있다. ⓒC영상미디어
길현희 대표는 ‘일회용품 없는 카페’라는 점을 의도적으로 내세우지 않는다. 카페 콘셉트를 모르고 오는 사람이 많을뿐더러 그 사람들에게 매장 규칙을 강요하고 싶지 않아서다. 예컨대 손님이 테이크아웃을 요청하거나, 입가에 묻은 음식물을 닦으려 휴지를 찾을 때서야 얼스어스에서는 일회용품을 일절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도록 한다.
“다른 카페에서처럼 맛있는 음식과 휴식을 즐기다 ‘아, 내가 일회용품을 안 쓰고 있구나. 그럼에도 크게 불편하지 않구나’라고 스스로 느끼셨으면 좋겠어요. 그러다 보면 일상에서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는 게 어려운 일만은 아니라는 걸 아실 테니까요.”
오랜 기간 일회용품 포장에 익숙해진 터라 얼스어스의 취지를 이해하면서도 불편함을 호소하는 사람이 아직 많다. 텀블러가 없으니 이번만 그냥 음료를 가져갈 수 있도록 해주면 안 되느냐는 요구도 있다. 이럴 때 길 대표는 단호하게 응한다. “안 됩니다. 다음에 용기를 가져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운영 원칙 공감하는 사람 늘어
길 대표는 환경을 대하는 사람들의 인식이 달라지고 있음을 느낀다. 일회용품 사용을 왜 금지하는지 설명했을 때 고개를 끄덕이며 부쩍 반가워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는 것.
“재활용 쓰레기 대란을 경험했고 법률 시행도 되고 나니 환경보호의 중요성을 체감하시는 분들이 많아진 것 같아요. 처음엔 당황했지만 이후에 자주 찾아주는 손님도 많아요. 굉장히 뿌듯하고 감사할 따름이에요.”
이날 손님 중엔 ‘맛’을 쫓아온 사람이 있는가 하면 ‘환경’을 고려해 찾은 사람도 있었다. 에코 가방을 든 채 스스로 단골이라고 소개한 안선영 씨는 그중 한 명이다.
“친구들과 프랜차이즈 커피 매장에 간 적 있어요. 저희가 먼저 머그잔에 차가운 음료를 담아달라고 했는데 종이컵에 내주더라고요. 환경적인 면에서 종이가 플라스틱보단 낫겠지만 결국 쓰레기잖아요. 그런 아쉬움이 있던 터에 얼스어스를 알게 돼 맘에 들었어요. 맛도 훌륭하지만 환경을 중시하는 가게라는 게 멋져요.”
처음 왔다는 김희림 씨는 신선하다는 반응이다. 김 씨는 “일회용품 안 쓰는 카페인지 모르고 들어왔다”며 “평소 쓰던 빨대 없이 마시고 있다는 걸 잊었는데 전혀 불편하지 않다. 빨대 대신 스푼으로 크림을 떠먹는 재미가 꽤 쏠쏠하다”고 말했다. 그는 “가게 주인 입장에선 설거지거리가 쌓여 힘들지 않겠느냐”는 걱정을 덧붙였다.
실제로 자원재활용법 시행 강화 후 매장 근로자의 업무가 늘어날 거라는 우려가 많았다. 그러나 길현희 대표의 생각은 확고했다.
“개인적으로 설거지거리는 큰 문제가 아니라고 봐요. 음식을 판매하는 곳에서 설거지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잖아요. 물론 회사나 학교 앞에 위치한 대형 카페에선 설거지거리 때문에 인건비 고민을 할 순 있을 거예요. 하지만 떠올려보세요. 실내 흡연이 가능했던 시절이 그리 오래되지 않았음에도 지금은 상상조차 할 수 없어요. 일회용품 줄이기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익숙해지면 애로사항을 해소할 대안이 나올 거고 우리 인식도 달라지겠죠.”
다회용품은 불특정 다수가 이용하니 위생문제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다. 휴지 대신 손수건을 사용하는 얼스어스도 같은 고민이었다. 때문에 길 대표는 쓰인 손수건이 쌓이지 않도록 하고 최대한 빠르게 세탁한다. 누구나 확인할 수 있는 서랍장에 켜켜이 정돈된 새하얀 손수건이 그 청결 정도를 가늠케 한다. 얼스어스 속 친환경 요소는 이 밖에도 다양하다. 화장실에는 수건이 걸려 있고 세정제가 있을 법한 자리엔 천연 비누가 놓여 있다.
길 대표는 대학 시절 5년 정도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매장에 다회용 컵이 충분했음에도 일회용 컵을 제공하는 게 당연했다. 매일 버려지는 엄청난 양의 플라스틱을 보면서 안타까움이 들어, 매장을 이용하는 손님에게 머그잔을 권하기 시작했다고. 때마침 듣게 된 그린 디자이너 윤호섭 교수의 특강은 환경보전 실천의 기폭제가 됐다.
“교수님은 환경을 위해 냉장고를 사용하지 않으신대요. 비행기가 일으키는 대기오염 때문에 해외여행도 끊으셨다고 하더라고요. 저만의 방식으로 실천할 수 있는 걸 고민했고 그게 개인 텀블러였어요.”
친환경 카페 개점은 그 연장선이었다. 수년 전부터 많은 커피점이 플라스틱 컵 위로 화려한 종이컵을 씌우기 시작했다. 이를 두고 ‘지나친 낭비’라는 지적이 일었고 길 대표 또한 부정적이었다. 그는 이러한 유행을 지양했으면 하는 바람에서 예쁜 머그잔에 예쁜 색감의 음료를 담는 영상과 사진을 개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꾸준히 게재했다. 게시물은 예상치 못한 호응을 얻었고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는 카페’의 등장으로 이어졌다.
그에게 얼스어스가 불러올 선한 영향력에 대해 물었다.
“영향력이요? 기대 안 해요. 제 가족 습관 바꾸는 것도 어려운데 어떻게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겠어요. 얼스어스 안에 있을 때라도 실천하는 것들이 환경보호에 보탬이 되길 바랄 뿐이에요. 누군가 죽으면 슬픈 건 다시 볼 수 없어서잖아요. 자원도 사람과 같아요. 물도 나무도 한 번 써버리거나 베어버리면 돌아오기 힘들어요. 일회용품 사용을 최소화해야 하는 이유로 충분하지 않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