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0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제12회 아시아미래포럼’ 행사에서 조지프 스티글리츠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가 ‘기후위기시대, 불평등 극복의 경제학’을 주제로 기조 발제를 하기 전 사회자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가 세션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한겨레
스티글리츠 교수가 말하는 탄소중립
“한국은 녹색 전환으로 빠르게 움직이는 게 경제 전체에 훨씬 더 많은 혜택을 줄 것이다.”
노벨경제학상(2001년)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가 10월 20일 <한겨레>가 주최한 제12회 아시아미래포럼에서 한 말이다. 대담을 나눈 정세은 충남대 교수(경제학)가 최근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 조정에 경영계가 반발하는 것에 대한 견해를 묻자 이렇게 답한 것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최근 탄소중립위원회가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기존 목표 26.3% 감축보다 13.7%포인트 높인 40%로 하자 “충분한 사회적 합의와 경제·사회적 영향분석 없이 정부와 탄소중립위원회가 일방적으로 결정해 유감스럽다”고 밝혔다. 전국경제인연합회와 대한상공회의소도 비슷한 취지의 유감을 나타냈다.
하지만 스티글리츠 교수는 국내 경영계의 반발이 다소 의외라는 듯 “한국은 혁신 분야에서 엄청난 역량을 갖고 있고 역사적으로 (그 역량을) 직접 보여준 바 있다”며 오히려 탄소중립에 적극적으로 나서라고 조언했다.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녹색 전환이 적어도 앞으로 15년에서 25년 동안 없어지는 일자리보다 훨씬 더 많은 일자리를 새로 창출할 것”이기 때문에 혁신 역량이 있는 한국은 먼저 움직이는 게 유리하다는 것이다. 그는 “기후위기가 오히려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으며 한국은 이를 이룰 수 있는 역량이 있다”고 강조했다.
재생에너지 통해 훨씬 더 많은 일자리 창출
스티글리츠 교수는 “태양광 발전 패널을 설치한다든지 경제를 재구축하는 것을 통해 더 많은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국제재생에너지기구(IRENA)는 최근 ‘2021 세계 재생가능에너지 및 일자리 연례 보고서’에서 전 세계 재생에너지 부문의 고용이 2020년 말 1200만 명을 넘어섰다고 발표했다. 2018년 처음으로 1000만 명을 넘어선 재생에너지 부문 고용은 2019년 1150만 명을 기록하는 등 계속 증가 추세에 있다. 태양광 발전 부분 고용이 2020년 400만 명으로 가장 많았고 그 다음은 바이오 에너지(352만 명), 수력(218만 명), 풍력 발전(125만 명) 순이었다.
보고서는 재생에너지 시설의 가동뿐만 아니라 유지, 보수에 앞으로 더 많은 고용이 창출될 것으로 전망했다. 재생에너지는 에너지 불평등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태양광 에너지의 경우 ‘오프그리드(off–grid, 대규모 발전소의 전력망에 연결되지 않는 소형 발전)’ 발전이 아프리카를 비롯한 저개발 국가의 에너지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력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스티글리츠 교수는 “녹색 전환의 혜택보다 비용이 지나치게 강조된 측면이 있다. 녹색 전환은 혁신을 촉진할 수 있고 기술을 수출할 수도 있다”며 “지난 15년 동안 재생에너지 가격이 더 낮아졌기 때문에 많은 원유·석탄을 수입해야 하는 나라들로서는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게 더 큰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무엇보다 정부의 역할을 강조했다. 정부가 탄소배출권 가격 인상, 인프라와 혁신을 중심으로 한 공공투자 확대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세수 확대가 필수적이다. 부자 증세, 헤지펀드의 세부담 강화, 환경세 도입, 금융거래세 강화 등이 필요하다.
“기후위기 해결 위해 한국이 리더십 발휘해야”
스티글리츠 교수는 “기후위기는 전 세계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전 지구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면서 글로벌 협력을 강조했다. 특히 개발도상국은 기후위기로 가장 큰 타격을 받게 될 처지인데도 지금 당장 가용할 수 있는 자원이 많지 않다. 기후위기의 원인을 제공한 선진국들은 탄소 배출을 제대로 줄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개도국이 기후위기를 해결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약속도 지키지 못했다.
스티글리츠 교수는 개도국 지원을 위해 글로벌 법인세 강화 등의 대대적인 조세개혁,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기구 활용, 부채 구조조정, 선진국의 백신 지식재산권 포기, 글로벌 그린 은행 활용을 꼽았다. 그는 “한국은 과거 경험을 살려 다른 개도국의 입장을 잘 이해하고 대변할 수 있다”며 우리나라가 리더십을 발휘할 것을 주문했다. 탄소중립 목표가 과하다고 볼멘소리를 하는 경영계가 스티글리츠 교수의 조언에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다.
이춘재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