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가는 길이 그렇게 험난할 줄은 몰랐다. 인산(人山). 글을 쓰기 위해 넘어야 할 산이 많았다. 사람들 사이에서 사람을 잃지 않고, 길 위에서 길을 잃지 말아야 했다.
아파트 15층에서 타고 내려가던 엘리베이터가 3층에서 멈췄다. 좌우로 갈라지는 문 사이로 한 청년이 눈에 들어왔다. 3층에서 1층까지는 걸어서 10초 남짓한 거리. 굳이 몇 배나 되는 시간을 기다려 엘리베이터를 타겠다는 것은 말릴 수 없지만, 그마저도 탑승을 하지 않았다. 문이 열린 뒤 10초가 다 지나도록 그는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직감했다. 이게 끝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시작이라는 것을.
문이 닫히려는 순간, 그는 열림 버튼을 다급히 누르며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왔다. 물론 민망한 표정이나 미안하다는 얘기는 없었다. 다시 스마트폰에 눈길을 돌린 채, 알아서 피하라는 식으로 사람들 사이를 파고들었다.
건물을 빠져나와 길을 걷는데 어떤 미래가 오래된 과거를 향해 접근했다.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한 친구가 구 스카이씽씽 현 킥보드에 몸을 맡긴 채 무서운 기세로 전면에 등장했다. 걷기 위해 조성된 인도에서, 사람을 위해 만든 인도에서, 걷지도 않고 사람을 위하지도 않는 모습으로 속도를 올렸다. 좁은 인도 폭과 빠른 속도. 해맑은 웃음.
직감했다. 나를 치고 가겠구나.
나는 어깨를 부여잡고 걸음을 멈췄지만, 그는 길이 없는 곳에 길을 만들며 앞으로 나아갔다. 거침없이 미래를 향해 내달렸다. 오래된 예의를 미래의 이동 수단(모빌리티)에 매단 채로.
얼마 못 가 진로를 방해하는 거대 생명체와 마주쳤다. 개였다. 그냥 개가 아니라 티브이에서만 보던 썰매를 끄는 개였다. 개는 목줄을 하고 있었다. 그냥 목줄이 아니라 무한대로 늘어나는 목줄이었다. 동물권 신장을 위해 행동반경을 넓혀주는 것은 존중하지만, 그것은 인간에게 위협이 되지 않을 때를 전제로 했다. 대형견이 지구 반대편까지 늘어날 것 같은 목줄을 한 채, 거리를 활보하는 것은 충분히 공포심을 일으킬 만했다.
발이 땅에 붙어 옴짝달싹 못 하는 상황. 나이 지긋한 개 주인이 웃으며 말했다.
“우리 애기는 안 물어요!” 집채만 한 개를 ‘우리 애기’라고 했다.
직감했다. 나에게 달려들겠구나.
주인 말을 잘못 알아들었는지 갑자기 개가 이빨을 드러내며 짖기 시작했다. 하마터면 귀청이 아니라 심장이 떨어질 뻔했다. 개는 인간의 오랜 친구지만, 그 개와 나는 초면이었다.
개 주인이 별일 아니라는 듯 웃으며 말했다.
“우리 애기가 오늘 기분이 안 좋은가 보네!”
어렵게 도서관에 도착해 열람실 맨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 것도 잠시, 불안의 그림자가 나를 집어삼켰다. 책상마다 칸막이가 있는 열람실. 군데군데 자리가 많이 비어 있는데, 한 사람이 콕 집어 내 옆자리에 앉았다. 굳이 붙어 앉을 이유가 없는 상황이었지만, 자리 선택은 이용자의 권리이므로 뭐라고 할 수는 없었다. 다만 공공 도서관, 바로 옆자리에서 음식 먹기를 반복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책가방이 아니라 장바구니 같았다. 그의 가방에서 다채로운 주전부리가 줄지어 나왔다.
직감했다. 오늘 글쓰기는 틀렸구나.
포장지를 찢고, 우물거리고, 쩝쩝거리고, 물로 입을 헹군 뒤 다시 포장지를 뜯고, 우물거리고, 쩝쩝거리는 행위가 1시간가량 되풀이됐다. 그에게 도서관은 지식의 보고가 아니라 맛집이었다.
꼭 그렇게 풀코스로 먹어야만 속이 후련했냐?
도서관에서는 그렇게 소리를 지를 수도 없었다. 초기에 제지하지 못하니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흘러갔다. 자리를 옮기려고 마음먹었을 때는 이미 늦었다. 이용자들이 빠르게 들어차 빈자리가 없었다. 울며 겨자 먹기로 그 자리에 있을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완성했는지 모를 글 한 편을 들고 돌아오는 길. 동네 전파사에서 라디오 소리가 흘러나왔다.
지나쳐도 좋은 건 두 가지다. 사람에 대한 예의와 사람을 지키는 안전.
누군가 내 마음을 대신 읽어주는 듯했다. 집에 돌아와 곧장 컴퓨터를 켜고 내 글에 달린 댓글을 확인했다.
이 사람 글을 시간 들여 읽었다는 게 너무 슬프다.
오늘 나는 사람들에게 무엇이었을까. 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
우희덕_ 코미디 소설가.장편소설 <러블로그>로 제14회 세계문학상우수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