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운드 클라우드 누리집 메인 화면
음악 소비구조 재편
최근 백예린의 신곡 ‘그건 아마 우리의 잘못은 아닐 거야’는 발매되자마자 차트 1위를 기록했고, 잔나비의 ‘주저하는 연인들을 위해’ 역시 방탄소년단(BTS)의 ‘작은 것들을 위한 시’와 경합하며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만 그런 게 아니다. 장범준, 볼빨간사춘기 등의 노래는 발표된 지 한 달이 지나도 차트 상위권에서 내려올 생각을 않는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음악을 어떻게 듣느냐의 문제는 어떤 음악이 유행하느냐만큼 중요하다. 혹은 그보다 더 중요하다. 20세기 내내 음악 소비의 행태는 크게 ‘접촉(contact)-탐색(search)-구매(buying)’로 이어졌다. 그런데 스트리밍 환경에서는 ‘구매’ 대신 ‘청취(playing)’로 바뀌었다. 이 둘은 공통적으로 ‘지불’을 한다는 점에서 동일하지만, 사용 경험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구분될 수 있다.
백예린은 사실 지난 몇 년 동안 거의 활동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앨범을 발표하자마자 1위를 기록하고 한 달이 넘도록 상위권에서 내려오지 않는다. 백예린의 앨범에 달린 댓글을 보면 “간절하게 기다렸어요!” “버티니까 나오네요!” 같은 의견이 수두룩하다. 이들은 어디서 어떻게 어째서 백예린의 신곡을 기다린 걸까?
▶백예린 ‘아워 러브 이즈 그레이트’ 앨범 표지│JYP 엔터테인먼트
‘포털·페북→음원 사이트’ 대신 유튜브로
백예린은 주로 사운드 클라우드에서 활동했다. 사운드 클라우드는 신인이든 기성이든 새로 만든 음악을 부담 없이 올릴 수 있는 플랫폼이다. 정식 발매가 아니므로 늘 저작권 이슈가 생기지만, 상당수 음악 팬들에게는 대중적이지 않은 음원을 접할 수 있는 채널이며 기존 음악가에겐 습작처럼 만든 음악의 대중적 반응을 바로 확인할 수 있는 플랫폼이기도 하다. BTS는 멤버들의 비정규 솔로 음반을 사운드 클라우드를 통해 발표하는 게 당연하게 자리 잡아 있기도 하다.
여기서 백예린은 여러 곡의 노래를 올렸는데 그중엔 일본 팝을 리메이크한 ‘La La La Love Song’도 있다. 정식으로 발매한 음원은 아니므로 오직 사운드 클라우드에서만 들을 수 있었는데, 다수의 팬들이 이 곡을 내려받아 애니메이션 화면과 함께 유튜브에 업로드했다. 이 음원은 사운드 클라우드에서만 260만 회 플레이되었고, 유튜브에서는 여러 계정을 통해 총 100만 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백예린을 잘 모르던 사람들도 유튜브를 통해 음악을 들었다면 이 음원을 접했을 만큼 이 콘텐츠는 유튜브 내에서만큼은 히트곡이 된 셈이다.
그런데 유튜브는 차트가 없다. 다만 인기도를 기준으로 정렬해주는 채널이 있거나, 인공지능이 사용자의 패턴과 취향을 기반으로 무작위로 추천해주는 자동 플레이리스트가 있을 뿐이다. 이런 맥락에서 현재 음원 차트와 플레이리스트를 비교해볼 수 있다.
음원 차트는 판매량을 기준으로 정량적인 데이터를 측정한 결과다. 이것은 산업적 관점으로 사용자보다는 공급자를 먼저 고려한다. 빌보드 차트의 경우, 애초에 제작자들이 음반 판매량을 측정하고 그걸 기준으로 마케팅 플랜을 짜는 데 기여하고 그걸 기반으로 광고 등의 수익 모델을 위해 만들어졌다. 그런데 플레이리스트는 취향을 기준으로 하고 정성적인 데이터가 반영된 결과다. 당연히 공급자가 아니라 사용자 중심의 관점이 작동한다. 이 둘은 경쟁보다는 상호 보완적이거나 협업하는 구도가 만들어진다. 그리고 이런 환경 변화를 주도하는 건 유튜브, 애플뮤직, 스포티파이 같은 글로벌 음악 서비스들이다.
한국에서 음악 듣기는 보통 포털이나 페이스북에서 음악을 접한 뒤, 멜론 같은 음원 사이트에서 음악을 찾아 듣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런 구도가 빠른 속도로 깨지고 있는 것 같다. 사람들은 각각의 과정을 거치는 대신 유튜브에서 이 모든 과정을 경험한다. 음악가나 배급사들도 유튜브에 긴밀하게 대응하기 시작했다. 유튜브의 검색 환경과 쿼리 기반의 사용자 추천 플레이리스트가 음원 차트를 대신할 날이 조만간 오리라고 본다. 바꿔 말해, (멜론) 차트 기반의 수익구조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한국의 음원 산업은 필연적으로 균열이 생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잔나비│페포니 뮤직
미디어 활동 거의 없어도 뜨는 이유
플레이리스트는 스트리밍 환경에서 점점 더 중요해진다. 모바일 환경에서 ‘음악 듣기’는 극단적으로 개인화되는 중인데, 그러다 보니 ‘모두가 듣던 음악에서 내가 좋아하는 음악’으로, ‘차트에서 취향으로’ 음악 산업의 영향력을 측정하는 기준이 바뀐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마케팅과 홍보, 음악을 파는 방식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기존에는 차트에 들어가기 위해 매스미디어 중심으로 마케팅을 진행했는데, 이제는 그게 큰 의미가 없어졌다는 얘기다.
여기서 4차 산업혁명을 소환할 필요가 있다. 좀 더 정확하게는 미디어 플랫폼의 변화, 더 좁히면 유통구조의 변화다. 2019년은 바야흐로 음악이 유통되는 구조가 바뀌고, 사람들이 더 넓은 범위의 음악을 듣는 시대다. 페이스북의 정밀한 타기팅 솔루션은 사용자에게 더 밀접한 콘텐츠를 제공하고, 그들은 이렇게 접하게 된 웹드라마나 콘텐츠의 음악을 유튜브·멜론 같은 플랫폼에서 소비한다. 특히 유튜브의 자동 추천 플레이리스트에서는 분위기만 비슷하면 누가 언제 발표한 음악인지는 중요치 않다. 미디어 활동이 거의 없던 백예린과 잔나비가 폭발적 인기를 얻은 것도 그 덕분이었다.
음악 차트의 권위가 약해진 반면, 스트리밍 서비스의 플레이리스트가 중요해지는 상황에서 음악가로서는 차트 상위권에 진입할 확률보다 플레이리스트에 선곡될 확률이 높아진 셈이다. 여기엔 어떻게 대응하는 게 효과적일까?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마케팅이 아닌 음악 자체에 집중해야 할 것이다. 사람들이 좋아할 멜로디를 만들고 공감할 가사를 쓰는 일. 다시 말해 음악의 기본에, 음악이 주는 감각적·정서적 쾌감에 충실하기다. 플레이리스트로 재편되고 있는 음악 소비구조에서 우리는 새삼 음악의 본질을 돌아본다.
차우진_ 음악평론가. 미디어 환경과 문화 수용자들의 라이프스타일 변화에 특히 주목하고 있다. <청춘의 사운드> <대중음악의 이해> <아이돌: H.O.T.부터 소녀시대까지…> <한국의 인디 레이블> 등의 책을 썼고, 유료 콘텐츠 플랫폼 ‘퍼블리’에서 <음악 산업, 판이 달라진다> 리포트를 발행했다. 현재는 ‘스페이스 오디티’라는 스타트업에서 팬 문화, 콘텐츠, 미디어의 연결 구조를 고민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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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