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욕이 없고 밥맛도 없다. 이따금씩 머리가 멍하다. 흥미·재미·의미를 잃고 무기력·죄의식·공허감에 시달린다. 우울증의 대표적 증상이다. 누구나 걸릴 수 있어 ‘마음의 감기’라 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국내 우울증 환자는 100만 명이 넘는다. 심하면 죽음에 이르기도 한다. 우울증 환자의 10%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조기진단이 필수인데 말처럼 쉽지 않다. 우울하긴 한데 병원을 찾을 정도인지 감이 안 잡혀서다.
이제 카카오톡만 있으면 누구나 휴대전화로 쉽게 우울증 자가검진을 할 수 있다. 보건복지부의 ‘마음건강 챗봇서비스’를 통해서다.
우선 카카오톡에서 ‘국립정신건강센터’ 채널을 추가해야 한다. 이후 성별, 연령대, 사는 지역을 입력하면 자가검진이 시작된다. 챗봇은 9개 질문을 던진다. 의욕 및 집중력 저하, 수면장애, 극단적인 생각 등의 여부를 묻는다. 결과는 ▲우울증상 없음(0~4점) ▲가벼운 우울증(5~9점) ▲중간 정도 우울증(10~19점) ▲심한 우울증(20~27점) 등 4단계로 나뉜다.
직접 진단해보니 ‘5점’이 나왔다. ‘잠들기 어렵거나 자꾸 깨어남, 혹은 너무 많이 잠’ 항목에서 2점, ‘신문을 읽거나 TV를 볼 때 집중하기 어려움’에서 2점, ‘피곤함, 기력이 저하됨’에서 1점을 합산한 결과다.
챗봇은 ‘가벼운 우울증’이라며 ‘주기적인 정신건강 검진’을 추천했다. 그러면서 앞서 입력한 주소지와 가까운 정신건강 관련기관 정보를 알려줬다. 총 8군데의 주소와 전화번호가 떴다. 여기서 더 구체적인 정보가 필요하다면 국가정신건강정보포털(mentalhealth.go.kr)로 이동하면 된다. 별도 이용료는 없다.
챗봇 9단계 질문에서 20점 이상을 받으면 ‘심한 우울증’이다. 22점이 나왔다는 워킹맘 정은혜(42) 씨는 “최근 몇 주간 줄곧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나는 가치가 없는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심각성이 어느 정도인지 모르던 중 자가검진을 알게 됐다”면서 “챗봇이 안내해준 인근 병원을 찾아 정식 상담을 받을 생각이다. 자가검진 절차가 까다로웠다면 진료의 첫발을 떼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했다.
국가가 국민의 정신건강 책임
이 서비스는 2023년 12월 발표된 ‘정신건강정책 혁신방안’과 올해 3월 민생토론회(청년의 힘으로 도약하는 대한민국)에서 나온 ‘국민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마음건강 서비스 제안’에 따른 후속조치다.
국립정신건강센터와 ㈜카카오헬스케어가 협업해 만들었다. 카카오헬스케어는 사회공헌 차원에서 서비스 기반인 ‘챗봇 시스템’을 구축했고 국립정신건강센터는 서비스의 구체적인 내용, 이용계약 등 전반적인 사업 준비를 맡았다.
우울증 검진도구는 국가건강검진에서 사용 중인 것과 동일한 ‘PHQ-9’다. 저작권자인 한창수 고려대학교 구로병원 교수의 협조로 활용된다. 복지부는 향후 수요를 고려해 불안증, 조기정신증 등 다른 질환과 관련된 검진도구도 순차적으로 추가할 예정이다.
8월 9일 열린 마음건강 챗봇서비스 개회식에서 박민수 복지부 2차관은 “우리가 고혈압 관리를 위해 혈압을 체크하고 당뇨 관리를 위해 혈당을 수시로 점검하듯 마음건강도 일상적인 점검을 통해 관리하고 증진할 수 있다”면서 “정부는 국민들이 마음건강 상태를 스스로 검진하고 돌볼 수 있는 서비스를 마련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곽영숙 국립정신건강센터장은 “이 서비스는 정보기술(IT)시대에 맞게 소셜미디어를 활용해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정신건강 서비스”라면서 “국립정신건강센터는 대국민 정신건강 인식개선과 정신질환 예방을 위해 보다 다양한 방식의 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나가겠다”고 했다.
국가가 국민의 정신건강을 책임지겠다는 의미다. 정부는 앞서 6월 26일 대통령 직속 정신건강정책혁신위원회를 출범하기도 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우리가 세계 10위권 경제 강국, 글로벌 문화 강국으로 도약했다고 해도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행복하다 생각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며 “앞으로 위원회를 중심으로 국민 행복을 위한, 마음건강을 위한 정책을 수립하고 관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석열정부 임기 내 위원회의 추진 계획은 ▲우울증 자가진단서비스 ▲100만 명 심리상담 ▲청년 정신건강검진 격년 단위 실시(현행 10년 주기) ▲위험징후 발견 시 전문의 진료 및 첫 진료비 지원 ▲청년마음건강센터 서비스·심리상담 연계 ▲학생 대상 검사도구 개발 적용 및 근로자 지원 프로그램 확산 ▲교원, 감정노동자 등 고위험자 대상 맞춤형 검사 치료 ▲직업 트라우마센터 10곳 확충 ▲자살예방상담전화 109센터 추가 건립 등이 있다.
윤 대통령은 “정신건강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을 바꾸는 게 중요하다. 월드뱅크 발표에 따르면 정신질환치료에 가장 큰 장애물이 바로 사회적 낙인”이라며 “정신질환은 일반질환과 마찬가지로 치료할 수 있고 치료하면 낫는다, 위험하지 않다는 인식이 우리 사회에 뿌리내리도록 해야 된다”면서 “정부는 정신건강정책 대전환을 이룰 수 있도록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박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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