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전생은 ‘대동여지도’를 만든 김정호임이 분명하다. 첫 번째 근거는 공부는 못했지만 지리 점수만은 높았다는 점이고 두 번째 근거는 로드뷰를 클릭하며 삼천리 방방곡곡을 누비는 일이 지루하지 않다는 점이며 세 번째 근거는 김정호가 만리동에서 생을 마감했다는 점이다. “대학 시절 만리동에서 자취했던 게 과연 우연의 일치일까!” 나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던 친구가 콧방귀를 뀌었으나 이에 굴하지 않고 이어 주장했다. 나의 전생이 김정호가 아니고서야 경기도 끝자락에서 태어나 서울 만리동으로 상경해 합정동과 양재동을 거쳐 화곡동에 머물다가 가양동을 지나 이내 등촌동으로 거처를 옮기는 떠돌이 생활을 할 리 없다고 말이다.
하지만 전생에 얽매여 현생을 소홀히 할 수는 없는 법. 떠돌이 생활을 청산할 때가 다가왔음을 직감한 나는 내 집 마련에 일찍이 성공한 주변인들에게 자문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준비된 대본을 읽기라도 하듯 아파트를 사야 한다는 대답을 내놓았다. 개중에서도 내가 살고 싶은 아파트가 아니라 남이 살고 싶은 아파트를 매수해야 환금성이 높다는 조언도 잊지 않았다. 머리로는 무슨 말인지 알겠는데 아무래도 마음이 동하지 않았다. 네모난 아파트에서 반듯하게 앉아 있는 내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꽉 막혔다. 윤수일도, 로제도, 심지어는 미국 사람인 브루노 마스까지도 아파트를 외쳐대는 판국이니 대세에 합류하는 것이 맞으려나?
온종일 집에 대해 상상하고, 좌절하고, 검색하고 또 검색하기를 반복하던 중 나다운 집을 찾는 법을 알려준다는 워크숍을 발견했다. 홍보 문구 속에 ‘남’이 아닌 ‘나’라는 단어가 가득하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그곳을 찾았다. 워크숍 진행자는 특색있는 매물이라면 지역에 관계없이 소개하는 독특한 공인중개사였다. 다양한 공간을 경험하면 삶이 그만큼 확장된다고 믿는 그녀는 세상이 좋다고 하는 집이 아닌 저만의 매력을 지닌 집을 중개한단다. 그녀가 제시한 살기 좋은 동네를 만드는 요소 역시 특이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역세권·대단지·초품아(초등학교를 품은 아파트 단지)’가 아닌 ‘떡집·텃밭·동물병원’ 등이 나열돼 있었으니 말이다.
“이 중에서 내가 원하는 요소를 세 가지만 골라보세요. 원하는 것이 없다면 나만의 요소를 추가해도 좋아요.” 소음에 취약해 인적이 드문 곳에 살고 싶어 하는 사람도, 공유자전거를 애용해 대여소가 가까웠으면 좋겠다는 사람도, 술을 좋아해 술집이 많은 곳을 원한다는 사람도 있었다. 서로의 얼굴이 다른 것처럼 각자의 대답 또한 모두 달랐다. 나는 창문 너머로 나무가 보이는 집에 살고 싶다고 말했다. 그 누구도 그래서는 안된다며 반박하지 않았다. 남이 좋아하는 집에 나를 욱여넣지 않아도 괜찮다는 동의를 구한 나는 창밖으로 나무가 보이는 집의 목록을 구했다. 이제 남은 건 딱 하나, 돈만 구하면 된다. 그것도 아주 많이!

이주윤
글을 쓰고 그림도 그린다. 어쩌다 보니 맞춤법을 주제로 한 책을 여러 권 출간했다. 국어사전 속에서 온종일 헤매는 일이 싫지 않은 걸 보면 아무래도 체질인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