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저는 결혼 10년 차인 맞벌이 여성입니다. 평소에는 남편과 집안일을 나눠서 하고 있지만 이상하게 명절만 되면 모든 가사노동이 제게 집중됩니다. 이번 명절에도 어김없이 시댁 식구들이 집에 와서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일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작년부터는 차례를 우리 집에서 지내게 됐는데 추석 전날부터 시댁 식구들이 몰려와 아침부터 식사 준비를 하고 설거지를 하면서 연휴를 보내야 했습니다. 남편은 좀 도와달라는 말을 못 들은 척하며 시댁 식구들과 함께 저를 도우미 부리듯 했습니다. 시댁 식구들이 집으로 돌아간 연휴 마지막 날에는 제가 몸살이 나서 친정에는 가보지도 못하고 하루 종일 누워 있어야 했습니다. 그런 저를 보고도 남편은 따듯한 말 한마디 해주지 않았고 죽 한 그릇 사다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친구와 약속이 있다며 아침에 집을 나가서 늦은 저녁에야 들어왔습니다. 모처럼 만의 연휴인데 쉬는 날도 없이 계속 일만 하다가 친정에도 가지 못하는 제 신세가 처량하게 느껴집니다. 내년에도 그다음 해에도 이런 일을 반복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숨이 막혀옵니다.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마음 같아선 이혼하고 혼자 살고 싶습니다.
(박혜수·가명, 42)
A. 통계청에 따르면 설, 추석 등 명절 기간 부부갈등으로 인한 이혼율이 평상시 대비 10% 정도 늘어난다고 합니다. 명절을 전후해서 정신과 내원율이나 자살률 또한 높아지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습니다. 통계가 의미하는 건 혜수 님처럼 명절 동안 극심한 스트레스를 느끼며 괴로워하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겠지요. 이런 스트레스 상태를 명절증후군이라고 합니다. 오래간만에 가족들이 모여 돌아가신 집안 어른을 추모하며 화목한 시간을 보내야 할 추석 명절이 오히려 명절증후군이라는 고통을 안겨주는 건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혼까지 생각하고 있는 혜수 님의 상황도 그렇고요.
다리가 아플 때는 의자를 사지 말라는 격언이 있습니다. 마음이 지치고 힘든 상황에서는 감정적으로 흔들리기 쉽고 좋은 선택을 하기 어렵다는 말이지요. 좋은 의자를 사기 위해서는 다리가 아프지 않을 때까지 치료하며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혜수 님에게도 지친 마음을 돌보는 치유의 시간이 선행돼야 합니다. 그리고 그 시간을 통해 아픈 마음을 치유하는 자기 긍정의 힘을 키워야 합니다. 자기 긍정을 통한 자기 효능감 향상은 어려운 문제에 직면했을 때 스스로 더 나은 해결책을 찾고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자존감을 높여줍니다. 건강한 자존감이 있어야 일시적인 감정으로 상황을 부정하거나 회피하지 않는 지혜로운 판단을 할 수 있습니다.
자기 긍정의 힘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되는 다양한 방법 중 혜수 님에게는 긍정 확언을 권유해주고 싶습니다. 긍정 확언은 자신에게 긍정적인 내용의 확언을 되풀이해서 말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확언을 통해 부정적인 마음을 치유하고 긍정적인 생각과 균형 잡힌 판단을 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방법은 간단합니다. 하루에 한 번, 아침이나 저녁에 거울 속에 비친 자기 눈을 보며 5분에서 10분 정도 미리 준비한 확언을 소리 내 읽거나 아니면 눈을 감고 가볍게 명상하면서 조용한 목소리로 암송하면 됩니다. ‘나는 소중한 사람입니다’, ‘나는 나의 인생을 잘 설계하고 실천할 수 있습니다’ 같은 긍정적인 내용의 확언을 10개 정도 준비해두고 계획한 시간 동안 반복하면 됩니다.
내 마음이 어느 정도 안정된 후에는 남편과의 대화를 시도해야 합니다. 대화할 때는 서둘러 내 감정을 표현하는 것보다 먼저 남편의 이야기를 경청해보세요. 혹시 내가 알지 못했던 어떤 사연이 있는지, 본인도 노력하고 있지만 쉽게 치유되지 않고 바뀌지 않는 상처가 있는지 마음을 열고 이해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그다음에 상대에게 내가 원하는 내용을 잘 정리해서, 알아듣기 쉽게 차분히, 이성적으로 전달해야 합니다. 혜수 님이 그동안 무엇 때문에 힘들었는지, 그래서 앞으로는 어떻게 했으면 좋겠다는 분명한 의사표시를 하는 거죠. 명절날 시댁이나 친정 식구가 왔을 때 가사 분담에 대한 논의나 평소 공동생활을 하면서 아쉬웠던 점들, 개인적으로 더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휴식 시간이나 자기 돌봄의 필요성을 구체적으로 전달해야 합니다.
그런데 내가 아무리 평온한 마음으로 이성적인 대화를 시도해도 상대가 내 마음을 받아주지 않으면 생각했던 방향과는 다르게 상황이 흘러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대화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때는 상대에 대한 실망과 연민, 분노와 공감이 반복되는 혼돈의 시간이 길게 이어질 수도 있다는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합니다. 서로 대화가 잘되지 않더라도 충분한 유예기간을 두고 서로의 입장에 대해 숙고하며 각자의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갖는 게 좋습니다. 그 과정이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서로의 마음이 정리될 때까지 기다려줘야 합니다.
이런 노력에도 상대가 마음의 문을 열지 않고 자기 입장과 편의만 고집한다면 남편과 잠시 떨어져 독립된 생활을 설계하는 것도 고려해봐야 합니다. 특히 경제적인 자립과 양육에 대한 부분을 잘 고려해서 지금보다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는 어떤 준비와 노력을 해야 하는지 신중히 판단해야 합니다. 그런 판단을 통해 혜수 님이 지금 겪고 있는 문제들을 현명하게 잘 극복해나가길 바라겠습니다. 그래서 다음 명절에는 여유로움이 함께했으면 좋겠습니다.
신기율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하는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마인드풀링(Mindfluing) 대표이자 ‘신기율의 마음찻집’ 유튜브를 운영하며 한부모가정 모임인 ‘그루맘’ 교육센터장이다.
*독자 여러분의 상담 신청을 받습니다. 신청은 giyultv@gmail.com으로 보내면 됩니다. 채택된 사연은 ‘신기율의 마음 상담소’ 지면을 통해 상담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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