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살이 어언 ‘1N’년. 대학교 앞 원룸에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총 일곱 차례 이사를 다녔다. 비록 내 소유는 아니지만 공간이 넓어지며 살림살이가 하나씩 늘어나는 재미가 쏠쏠했다. 물론 넓어진 공간과 오랜 세월이 맞물리며 보증금도 올랐다. 문제는 오른 보증금만큼 내 걱정도 커진 것. 임대계약을 할 때마다 ‘행여나 이 돈을 못 받으면 어떡하지’란 생각이 머릿속을 스친다. 다행히도 설마 하는 상황이 벌어진 적은 없지만 ‘빌라왕’이나 ‘깡통전세’ 이야기를 들을 때면 내 보증금은 괜찮을지 불쑥 불안해진다. 비단 나만 갖는 생각은 아닐 거다.
실제로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따르면 2018년 792억 원이던 보증 사고액수는 2022년 7월 기준 4279억 원까지 늘었다. 전·월세 계약이 끝나고도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피해가 급증한 건데 특히 임대차계약 경험이 적은 2030세대의 피해가 약 67.8%를 차지할 만큼 컸다.
악의적 전세 사기도 수법과 유형이 다양해졌다. 보증금 반환 능력이 없음에도 갭투자한 임대인, 매매 가격보다 전세 가격을 높게 설정한 깡통전세, 세금 체납 사실을 숨기고 계약을 체결한 임대인, 임대인을 사칭하며 무권한자가 체결한 계약 등등.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등기부등본 변동 생기면 카카오톡 알림이!
정부가 2월 2일 출시한 ‘안심전세앱’은 이와 같이 전세 사기의 주요 원인으로 꼽히는 임대인과 임차인 간 정보 비대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개발됐다. 2022년 발표한 ‘전세 사기 피해 방지 방안’의 일환이다. 안심전세앱의 가장 큰 장점은 시세 정보 파악이 어려웠던 다세대·연립주택이나 50세대 미만 소형 아파트의 시세를 확인할 수 있는 점이다. 인근 부동산이나 포털사이트 시세 정보에서도 거래 중인 매매가 없으면 볼 수 없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서 확인하는 방법도 있지만 스마트폰 앱으로 보니 더 쉽다. 시세를 확인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메인 화면의 ‘안심전세 진단-상담’을 누르면 ‘시세조회&위험성 진단’ 메뉴가 나온다. 여기서 계약하려는 주택 주소만 입력하면 끝.
내가 살고 있는 주소를 입력하니 매매 시세가 나왔다. 전세가율은 74.1%라는데 나의 실제 계약 보증금은 이보다 낮아 내심 뿌듯했다. 위반 건축물이나 무허가 건축물로 등록된 경우 위험 주택 경고가 뜨니 경각심을 가질 수 있을 듯했다. 시세와 관련해 전문가 의견이 필요한 경우 공인중개사, 감정평가사와 연결도 된다. 참고로 시세 조회는 수도권만 가능하다. 오는 7월 2.0 버전으로 업그레이드한 후 광역시와 오피스텔까지 조회할 수 있게 된단다.
간단한 자가진단 기능도 있다. 휴대전화 인증을 통해 로그인하면 준비 완료다. 근저당 설정 금액과 날짜를 입력하면 시세 기준으로 안전한 주택인지 확인할 수 있다. 혹시라도 보증금 피해가 생길 경우 회수 가능한 적정 보증금 범위는 얼마인지도 가늠이 된다.
개인적으로 마음에 든 건 부동산 등기부등본 결제 기능이었다. 등기부등본이야 가까운 주민센터나 대법원 인터넷등기소에서 쉽게 발급받을 수 있지만 안심전세앱에는 유용한 기능이 담겨 있다. 등기부등본에 변동이 생기면 카카오톡으로 알려주는 것.(집 주인 아저씨를 믿지만) 임대인이 나도 모르게 주택을 담보로 대출을 받거나 임대인이 바뀔 경우 스마트폰으로 알려준다는 의미다. 비용은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1000원이지만 1회 발급으로 2년 6개월 동안 알림이 유지된다니 든든하다.
계약 과정에서 놓친 건 없을까?
전세 계약 셀프테스트도 유용하다. 전세 계약 전·중·후로 나눠 진행할 수 있다. 전세 계약 전이라면 주택 상태, 전세가율, 선순위 권리 관계 등을, 전세 계약 후라면 주택임대차 신고, 전입신고, 전세보증금 반환보증 가입 등을 확인했는지 점검토록 만들었다. 전세 계약 과정에서 놓쳐서는 안되는 부분도 꼼꼼하게 되짚어준다. 테스트가 끝나고 다시 한 번 확인사항을 정리해주는데 이것만 잘 저장해둬도 전세 계약 때마다 어렵게 느낀 사항을 일목요연하게 파악하겠다 싶었다.
반면 아쉬운 서비스도 있다. 임대인 정보 조회 기능이다. 악성 임대인 등록 여부, 보증금리 이력 등을 확인할 수 있는데 전세 계약 전에 이 절차만 거쳐도 전세 사기 피해를 현저히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다만 현재 버전에서는 임대인이 직접 주민등록번호와 휴대전화 인증 절차를 해야 한다. 추후 2.0 버전에서는 임차인이 정보 조회를 요구할 때 임대인 휴대전화 알림 형식으로 인증할 수 있게 바뀐다고 한다. 나아가 관련 법안이 통과되면 임대인 동의 없이도 악성 임대인 명단을 조회할 수 있는 기능이 추가될 예정이다.
HUG에 따르면 안심전세앱을 통해 시세 조회를 한 건수는 2월 8일 오후 2시 기준 약 8만 7000건에 달했다. 출시일을 감안하면 하루 1만 3000여 건의 조회가 이뤄지는 셈이다. 내 소중한 보증금을 지키고 싶은 마음에 꼼꼼하게 확인하는 임차 수요가 많다는 뜻일 거다. 사고 이력이 있는 임대인이나 과도한 시세 부풀리기를 마주해도 임차인이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이 제한적이었으니. 전세 사기 피해 방지 방안으로 개발된 만큼 안심전세앱이 실질적인 보호 장치가 되길.
선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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