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어린이들에게 가장 좋아하는 ‘명절’을 꼽으라고 하면 12월 25일 크리스마스를 택하는 아이들이 많지 않을까. 원래는 아기 예수가 태어난 기독교 명절이지만 이미 그 의미를 뛰어넘어 세계적 축제가 됐다. 한 해를 정리하는 연말의 흥겨운 분위기, 거리마다 울려퍼지는 캐럴과 화려한 장식들, 산타클로스와 루돌프의 동화 같은 이야기, 그리고 마음을 설레게 하는 크리스마스트리까지 모두 함께한다.
올해도 어김없이 12월 25일이 다가오자 내가 살고 있는 아랍에미리트(UAE)의 두바이 역시 크리스마스 열기로 분주해졌다. 이슬람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크리스마스를 하나의 축제처럼 기꺼이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조금은 신기하다. 어떤 이들은 “상업적 목적 때문”이라고 쏘아붙이지만 그래도 이게 어디인가. 어떤 이유에서든 축제는 사람들을 즐겁게 해준다.
세계에서 가장 큰 쇼핑몰로 유명한 두바이몰에는 벌써부터 커다란 크리스마스트리가 자리를 잡았다. 높고 웅장한 트리 앞에는 어느새 사람들이 줄지어 서서 사진을 찍으며 연말의 순간을 남긴다. 어딜 가든 반짝이는 장식과 따뜻한 불빛이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킨다. 며칠 전 방문했던 한 호텔 로비에서는 산타 복장을 한 할아버지가 아이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 랜덤으로 작은 선물을 나눠주는 이벤트가 열리기도 했다.
거리 곳곳에서는 캐럴이 흘러나온다. 익숙한 멜로디를 따라 흥얼거리다 보니 ‘정말 한 해가 다 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 두바이의 정체성이 조용히 모습을 드러냈다. 캐럴이 잠시 멈춘 틈에 어디선가 이슬람의 기도 소리, 아잔이 울려퍼졌다. 하루에 다섯 번, 정해진 시간에 울리는 이 기도 소리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이어진다.
크리스마스트리를 마주하며 아잔 소리를 듣는 기분은 어색하면서도 따뜻했다. 서로 다른 문화와 종교의 상징이 같은 공간에서 어우러지는 모습은 조화와 관용의 철학을 보여주는 듯했다. 이슬람 국가에서 울려퍼지는 캐럴과 화려한 크리스마스트리, 그리고 그 속에서 묵묵히 들려오는 무슬림들의 기도 소리까지.
이 풍경을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올해 참으로 많은 일들이 벌어졌다. 어떤 일은 아직도 진행 중이고 어떤 일은 끝난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시작도 하지 않은 채 남아 있기도 하다. 결말이 보이지 않는 드라마처럼 절정만 가득한 이야기가 우리를 지치게도 하지만 모든 끝은 새로운 시작으로 이어진다.
올해 크리스마스를 맞아 기도해본다. 이슬람 국가 두바이에서 만난 사막의 크리스마스처럼 다름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따뜻한 조화가 우리 삶에 가득하기를. 한 해 동안 고생 많았던 우리 모두에게 작은 위로와 온유가 찾아오기를. 그리고 새해에는 더 큰 사랑과 행복이 함께하기를.

원요환
프로N잡러 중동 파일럿. 국내 경제지 기자 출신으로 지금은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민항기 조종사로 일하고 있다. 이외에도 작가, 리포터, 콘텐츠PD 등으로 활동 중이다.